◑ 제19대 대통령 문재인                    2020.02.27.목요일,맑음

제19대 대통령 문재인(생졸; 1952년1월24일~)은

경남 거제에서 아버지 문용형과 어머니 강한옥 사이에서 2녀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문용형은 함경남도 흥남의 남평문씨 집성촌인 솔안마을 출신으로 함흥농고 졸업 후 일제시대 흥남시청에서 농업과장으로 근무 중 피난하여 거제에 정착한 후,

거제도 포로 수용소의 노무자로, 어머니는 계란 행상을 하다 부산으로 이사했다.

1965년에 남항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68년, 중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경남 고등학교에 수석 입학했다.

고등학교 시절 방황하다 대학 시험에 실폐한 문재인은

1971년,재수를 하던 중 경희대 총장이던 조영식이 문재인에게 '4년 전액 장학금'을 약속하며 경희대 입학을 권유하여 1972년 경희대학교 법대에 수석으로 입학하였다.

1975년4월11일,

경희대 총학생회 총무부장으로서 학생회장을 대신해 박정희 유신체제에 항거하다 구속되어

서대문 구치소에 수감되었고,

1975년6월, 집회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선고받고 대학에서도 제적당했다.

1975년8월, 출소 후 군에 강제 징집되어 육군 특전사를 제대한 후 

1980년5월17일,

경희대학교에 복학해 복학생 대표로 전두환 신군부 세력에 항거하다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하루 전에 시행된 '5.17 비상 계엄 전국 확대조치'로 시행 당일 밤

긴급 체포되었고 청량리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옥중에서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조영식 경희대 총장의 신원보증으로 석방되었다.

사법연수원에 들어가 동기였던 박원순,고승덕,조영래 사이에서 수석을 하였다.

1982년,

최우수 성적으로 수료했으나 학생운동 전력으로 판사 임용이 거부되자,

부산으로 내려가 노무현을 만나 노무현 변호사(대통령)와 함께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며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부산에서 노무현과 인연을 맺은 것을 계기로 30년 가까이 가장 친한 친구이자 최측근으로

활동했다.

노무현이 정계에 입문하여 청문회 스타가 된 뒤에도 인권 변호사로 일했으며,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동의대학교 사건 등 굵직한 시국 사건을 변론했다.


1982년,최우수 성적으로 수료했으나 학생운동 전력으로 판사 임용이 거부되자,

부산으로 내려가 노무현을 만나 노무현 변호사(대통령)와 함께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며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1996년8월에 발생한 페스카마호 사건에서 선원들의 변호를 맡았다.

1988년에는 김영삼으로부터 노무현,김광일과 함께 국회위원 영입 제안을 받았지만,

문재인은 3명 중 유일하게 정치 입문을 거절했다.

정계 입문을 결심한 노무현과 김광일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2003년부터 2004년2월까지,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노무현 정부의 초대 대통령 민정수석을 역임했다.

2004년2월,

초대 민정수석에서 1년만에 건강상 문제로 물러나 히말리아 트래킹 중 노무현의 탄해소추 소식을 접하고 귀국하여 변호인단을 꾸려 간사를 맡았다.

2004년 5월부터 2005년1월까지,

다시 청와대로 들어와 대통령 비서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

2005년1월부터 2006년5월까지,

대통령 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2007년3월12일에서 2008년2월24일까지,

마지막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다.

청와대에서 이정호 시민사회수석,이호철 국정상황실장 등과 함께 PK인맥을 대표했는데,

 '왕수석'으로 불리며,

한나라당로 부터 왕수석인 문재인 수석의 월권과 청와대의 시스템 경시로 인해 국정 원칙이 파괴됐다는 비난을 받으며 2인자로 주목받기도 했다.

또한,이해찬 국무총리가 부적절한 관계에 있는 인사들과 내기 골프를 쳤다는 소식을 듣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해임을 촉구하기도 했다.

2009년5월, 고 노무현 전대통령 국민장 운영위원장 겸 상임집행위원장,

2010년8월부터 2012년5월까지 노무현 재단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2012년4월11일,

제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2년11월18일, 민주통합당의 대표 권한대행이 되었다.

2012년11월23일,

손학규,김두관,정세균 등과 경선에서 민주통합당 제18대 대선 후보로 확정되었다.

안철수와 단일화을 추진하였으나 안철수가 대선 후보직을 사퇴하고,진보정의당의 심상정도

대선 후보직을 사퇴하였다.

윤여준,문구현,박찬동,김현철,김덕룡,문정수,강삼재의 지지를 받으며,

문재인은 대선에 출마하면서 김대중 정부의 6.15 공동선언,노무현 정부의  10.4 공동선언에 기초해 대북 포용 정책을 계승,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2012년12월19일,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2014년3월,

새로 창당된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문재인과 손학규를 공동 선대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2014년12월19일, 통합진보당이 헌재 판결로 해산되자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2014년12월29일에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당권 도전을 선언했다.

당 대표가 되면 2016년에 치러질 차기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2015년2월8일,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에서 박지원 후보를 누르고 당대표에 선출 되었고,

새정치민주연합이 더불어민주당으로 개편된 후에도 계속 대표를 지냈다.

2015년5월 말부터,메르스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2015년6월4일, 박근혜 대통령의 메르스 대처에 대해 세월호 참사 때와 마찬가지로 무능하고 부실하기 짝이 없다고 비판했다.

2016년1월19일,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를 사퇴한다고 말하자 김종인 시기의 문제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2016년4월13일,

대표직을 물러나 제20대 총선에 불출마하여 소속 후보들을 지원유세를 다녔다.

2016년10월 말부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알려지면서 박근혜 정부에 거국 중립내각을 요청했다.

2016년11월26일, 박근혜 탄핵 촛불 집회가 열렸다.

2016년12월9일, 국회에서 박근혜의 탄핵안이 가결되고 

2016년11월, 박근혜 탄핵 시기 더불어 민주당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

2017년3월10일, 헌재가 박근혜를 대통령직에서 파면시키고 조기 대선이 결정되어

2017년4월3일,

이재명,최성,안희정과 경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선 후보로 선출되어 재도전으로

2017년5월9일,

자유 한국당 홍준표,국민의당 안철수,바른정당 유승민,정의당 심상정 후보와 함께

궐위선거로 치러진 대선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되어 치러진 궐위선거이기 때문에

2017년5월10일,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구성하지 않고 바로 제19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식은 취임 선서로만 진행되었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따른 보궐선거여서 공식 취임식을 치를 여유가 없어,

취임 행사를 간소화할 수밖에 없었던것이다.

2017년5월10일,

대통령으로 취임한 문재인은 "국민 통합"을 강조했으며,


대통령 권한대행인 황교안 국무총리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의 사표가 수리되었다.

또한 박근혜 정권 시기 논란이 되었던 국정교과서에 대한 폐지를 지시하였고,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중단되어왔던 '임을 향한  행진곡에 대한 제창' 또한 지시하였다.

국무총리 후보자로 전남 도지사 이낙연을 지명했고

비서실장으로 임종석,국정원장으로 서훈이,경호실장으로 주영훈이 내정되었다.

2017년5월10일,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사드배치 문제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보수 정권의 가장 큰 실수라며 사드 배치문제로 긴장된 한·중관계를 개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2017년6월30일,

문재인 대통령은

사드 배치는 한미동맹에 기초한 합의이고 한국 국민과 주한미군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며,사드 배치 여부를 결정하는 건 한국의 주권적 사안이라며 중국이 부당하게 간섭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1기 내각에 지명한 장관 및 후보자의 절반 이상이 대통령 공약이었던,

고위공직자 불가 5대 비리 의혹이 있는 등 인사 문제가 계속해서 불거지자,

이에 반발하는 야당들의 국회 보이콧으로 인해 국회가 장기간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인사 파동 과정에서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와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가 각종 결격 사유로 인한 논란으로 자진사퇴 하였다.


2017년, 정부는 8.2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2017년8월17일,

2017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2017년11월15일 포항 지진이 발생하면서,

1주일 연기하는 결정을 내렸다.

한편, 암호화폐인 '비트코인' 열풍이 일자 정부에서는 거래소 폐쇄 등의 초강경 규제,대책을

마련하자 비트코인 투자자들은 박상기 법무부 장관,최흥식 금융감독원장 해임을 청원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였다.

2018년4월27일,

1차 남북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판문점 선언이 발표되었다.

2018년5월26일,판문점에서 2차 남북 정상회담이 이루어졌으며,

2018년6월12일, 북.미정상회담이 싱가포르에서 열렸다.

2018년6월13일,

제7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힘이 실리게 되었다.

2018년8월 30일,

장관급 인사 5명과 차관급 인사 4명에 대한 개각을 단행하였다.

2018년9월11일,

판문점 선언 비준동의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었고,

통일부는 비준동의안과 함께 비용추계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2018년9월18일~ 20일까지 3일간

북한의 평양에서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역대 대통령들 중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3번째로 평양을 방문하였다.

2018년9월1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가까운 시일 안에 서울을 방문하겠다고 하였다.

2018년9월2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백두산 천지를 방문하였다.

2018년9월21일, 정부는 주택 가격 안정을 위해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2019년9월6일,

조국 전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여 청문회가 진행되었고,

2019년9월9일,문제인 대통령은 조국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였다.

되었으나,서초동 조국 수호 촛불 시위,광호문 조국 사퇴 촛불 시위 등 많은 국민의 갈등속에

2019년10월14일, 장관직 지명 후 35일만에 사퇴하고 말았다. 

2019년11월25일부터 11월27까지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와 한·메콩강 정상회의를 잇달아 개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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