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5대 국회위원 선거 실시     2019.12.19.목요일,맑음

4.19혁명으로 제1공화국이 붕괴되고 허정 과도 정부는

1960년7월29일에 민의원,참의원 선거를 실시한다고 공고하였다.

6월 28일부터 7월 2일까지의 기간동안 입후보 등록을 받은 결과,

의원정수 233명에 1,562명이 입후보하여 평균 6.7: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입후보를 보면

무소속 입후보자가 전체의 64.5%인 1,009명,

제2공화국 수립에 주도적인 정치세력이었던 민주당이 19.5%인 305명의 입후보자,

혁신우파노선의 성격을 띤 전 진보당의 박기출, 김달호, 윤길중과 전 근로인민당의 김성숙, 유병묵 그리고 전 민주혁신당의 서상일, 이동화 등 3파 합작으로 조직된 사회대중당은 혁신정당으로서는 가장 강력한 정당이었으며  8.2%인 129명의 입후보자,

15개의 정당,사회단체들 중 55명의 입후보자를 낸 자유당과


혁신좌파노선의 성격을 띤 한국사회당은 전 민족주의민주사회당의 전진한, 김무진, 전 민주혁신당의 김성수, 안정용, 김 철 그리고 사회당의 성낙훈, 박재하, 박부산, 양우조 등으로 조직되어 두 당은 혁신정당의 주류를 이루었으며 19명의 입후보자

13명의 입후보자를 낸 혁신동지연맹,

12명의 입후보자를 낸 한국독립당을 제외한 나머지 정당,사회단체들은 모두 10명 미만의

   입후보자를 내는 데 불과했다.

이러한 혁신정당들과 민주당을 비롯한 보수정당들간의 대결이 제5대 국회의원선거의 양상이었다.


제5대 국회의원선거는 1천 159만 3천 432명의 유권자 중 84.3%인 977만 8천 921명이

참여하여 이전의 국회의원선거에 비해 매우 낮은 투표율을 보였다.
서울이 가장 낮은 75.4%의 투표율을 보였고,

경남이 83.7%로 두 번째로 낮은 투표율을 보였다.

가장 높은 투표율을 보인 지역은 강원도로 88.9%였고,

그 다음으로 제주도가 88.6%의 투표율을 보였다. 전

반적으로 제5대 국회의원선거의 투표율은 제1공화국 시기와는 달리 서울의 75.4%를 제외하고는 80%대의 낮은 투표율을 보였는데, 이같은 상황은 동원된 투표참여가 아닌 자발적 투표참여로 인한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

전반적인 선거양상은 민주당과 자유당을 주축으로 하는 보수세력과 사회대중당과 한국사회당 등을 중심으로 하는 혁신세력 및 무소속의 대결로 이루어지는 3파전의 성격을 띠고 있었으나, 실제 선거전은 민주당 내의 신 · 구파간의 권력투쟁전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더욱이 정당간의 정책적인 근본적 차이가 별로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보수당인 민주당과 자유당이 혁신계 못지 않은 개혁정책을 내세웠기 때문에 제5대 국회의원선거는 정당간의 정책대결보다는 정파간의 세력투쟁 및 조직싸움이었다.



선거의 결과

무소속이 46.8%의 득표율을 얻었고,

민주당이 41.7%의 득표율을

다른 정당,· 사회단체들을 11.5%

   사회대중당이 6.0%의 지지를 얻었고,

   한국사회당이 0.6%,

   통일당이 0.2%,

   자유당이 2.7%

제5대 국회의원선거는 단순한 의례적인 정치행사의 성격만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은 독재와 부패를 청산하려는 국민의 결의와 요망에 따라 선택된 기회였기 때문에

민주당에 대한 지지도가 높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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