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7대 국회위원 선거 실시              2019.12.24.화요일,맑음

1967년6월8일에 실시된 제7대 국회위원 선거는

소선구제를 통한 직접선거로 131명을 선출하였다.

정당별 득표율에 따라 선출한 44명의 전국구를 포함하여위원수는 모두 175명이다.

그리고,선거 기간 동안 많은 부정 행위가 저질러져서 '6.8' 부정 선거로도 불린다.


1967년5월3일, 제6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가 또다시 당선되고,

1968년5월8일,정부는 제7대 국회의원선거를 6월8일에 실시한다고 결정,공고함으로써

   선거전이 시작되었다.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여당인 민주공화당과 제1야당인 신민당을 비롯하여 모두 11개의 정당이 참여하였고,지역구 의원정수 131명에 입후보 자수는 총 702명으로 평균 5.4:1의

경쟁률을 보였다.

이는 제6대 국회의원선거보다 감소한 수치였다.


민주공화당과 신민당은 131개 전지역구에 후보자를 공천하였으나

민주당 76개 공천율58.0%,자유당 72개 공천율 55.0%,한국독립당 70개 공천율 53.4%,

민중당 66개 공천율 50.4% 지역구에만 후보자를 공천하여 절반이 넘는 수준의 공천율을

각각 보였다. 그러나 나머지 5개 정당은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는 공천율을 보였고,

자민당의 경우는 모두 9명의 후보자를 공천하여 6.9%의 가장 낮은 공천율을 기록하였다.

선거결과 정당별 당선자는

민주공화당이 의원정수의 73.7%에 해당하는 129명(지역구 102명,전국구 27명).

신민당은 45명(지역구 28명, 전국구 17명).

대중당이 1명.

나머지 8개 정당은 단 1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하였다.


제7대 국회의원 선거의 양상은 대통령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민주공화당이 그 여세를 몰아 원내 안정세력 확보에 전력하였고 이에 대하여 야당, 특히 신민당은 원내견제세력의 구축을 유권자에게 호소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초반부터 과열되기 시작한 선거는 선거법의 허점을 악용하여 자행된 부정,부패,불법의 타락선거로 지목되었다. 그것은 원내안정세력 확보를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 여당과

이에 맞서 개헌선저지와 박정희 정권의 계속 집권을 억제하려는 야당의 필사적인 투쟁으로 인한 과열에서 빚어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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