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왕 제10대 연산군 이야기       2013.03.08.금요일,맑음

연산군; 이 융,성종의 맏아들

생졸;1476 ~1506. 31세

재위기간; 14941506년.12년

가계도

  부; 조선왕 9대 성종

  ; 폐비 윤씨

  처; 폐비 신씨

          폐세자 이황; 중종 반정으로 사사됨

          창녕대군; 중종 반정으로 사사됨

          휘순공주;

        숙의 이씨; 안평군

                       돈수

        장녹수; 영수(옹주)

 

성종의 큰아들인 연산군은 사화를 일삼는 폭군으로 점철 되어있다.

재위 중 무오·갑자 사화를 일으켜 사림파를 비롯한 문신들을 대거 처형하고 언관 제도를 크게 축소했으며, 당시 사대부들의 윤리관에 어긋나는 행동을 거듭하다가 중종 반정으로 폐위되었다.

연산군과 성종의 부자 관계 측면에서 보면 연산군은 아버지 성종을 아주 미워했다.

왕위에 오른 후 아버지 성종이 살아 생전 아꼈던 사슴을 죽인 이야기나 심지어는 성종의 초상화에 활을

쏘았다는 이야기까지 있을 정도다.

 

연산군의 폭정을 강조하기 위해 조작된 이야기라는 설도 있지만 연산군이 아무리 아버지 성종을 미워했다 해도 어차피 부자지간이라 그 아버지를 닮을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연산군은 아버지의 장점 보다 단점을 많이 닮았다는 것이다.

 

아들 연산군이 아버지 성종의 장점인 군왕으로서 열심히 일하는 것은 안 배우고 업무 끝난 후 스트레스

풀며 신나게 노는 것만 보고 배웠다는 것이다.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어머니 폐비 윤씨의 비극적인 최후를

알게 됨으로서 연산군은 폭군의 길을 걷게 된다.

 

149412월 성종이 죽자 왕위에 올라 국가 개혁에 힘썼으나 사림파 제거를 노린 훈구파의 정치적인 공작과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게 되면서 형성된 성격상의 문제가 겹쳐 2차례에 걸쳐 대규모의 사화를 일으켰다. 2차례에 걸친 사화로 연산군에 대한 반감은 사림파 뿐만 아니라 훈구 세력들 간에도 커지게 되었다.

 

성희안·박원종 등이 군사를 일으켜 성종의 둘째 아들 진성대군(중종)을 왕으로 세움에 동시에 군으로 강등된 뒤 강화도 교동으로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훈구·사림 세력 간의 다툼으로 무오사화가 일어났으며,

임금 자신이 방탕하여 주연과 놀이에 빠졌고,정치가 극도로 문란하였다.

 

중종 반정-

연산군 12년,1506

연산군의 비위를 상하게 하여 관직에서 쫓겨났던 성희안,박원종,유순성은 연산군을 내쫓고

진성 대군을 새 임금으로 세운 사건이다.조선조 11대왕인 중종 이다.

연산군이 여러 번의 사화를 일으켜 선비들을 죽이고 나라를 어지럽혀 백성들의 원망이 높아지자

훈련원에 장사들을 모은 후 먼저 왕의 외척인 신수근 형제를 죽이고,

궁중으로 들어가 대비의 명을 받아 연산군을 폐하고 진성 대군을 왕으로 세웠다.

이 왕이 곧 중종이며,이로써 연산군은 강화도의 교동으로 쫓겨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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