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왕 제27대 순종 이야기     2019.09.19목요일,비

순종; 이척

생졸; 1874년2월8일(고종11년)-1926년4월25일

재위기간; 1907년7월20일-1910년, 3년

능;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유릉

가계도; 

부; 제26대 고종 황제

모; 명성왕후 민씨(명성황후)

   순종; 제27대 조선의 마즈막 황제

      순명효 황후; 후사 없음

      순정효 황후; 후사 없음

 

순종은 1874년(고종11년)에 고종과 명성황후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종의 비인 명성황후는 4남1녀를 두었으나 순종을 제외하고는 모두 일찍 죽었다.

순종은 1875년(고종12년), 2살 때 세자에 책봉되었고,

1882년(고종19년), 9살 때 민태호의 딸 순명효 황후와 혼인했다.

1897년(고종34년), 34살 때 '대한제국'이 선포되자 황태자에 책봉되었다.

1904년(고종41년), 비인 순명효 황후는 34세의 일기로 후사 없이 죽었으며,

순명후 황후가 죽자 1906년(순종43년), 13세 때 황후로 책봉된 순정효 황후(사망 1966년) 역시 후사가

없이 죽었다.

 

조선 제27대왕이자 조선의 마지막 왕(2대 황제)인 고종은

34세 때인 1907년(재위44년),'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일제는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뒤를 이어 순종이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했다.

즉위 후(1907년), 일제는 통치권을 강제로 통감부에 빼앗고 '한일신협약'을 체결했다.

재위 기간인 3년 동안 '한일신협약','기유각서','한일 합병 조약 '등을 체결했다.

일제는 조선을 완전한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1910년 '한일합병조약'으로 대한제국은 붕괴 되었으며,

순종은 황제에서 왕으로 강등되어 창덕궁에서 거처하다 1926년 죽었다.   


일본은 '강화도 조약'으로 조선의 문호를 열게 하고 내정에 간섭하며 호시탐탐 조선의 주권을 위협했다.

일본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했다.

그러던 중, 고종은' 헤이그에 밀사 사건'이 발생후 그 책임으로 고종이 퇴위할 것을 종용했다.

고종이 이를 거부하자, 일본은 고종도 황태자도 참석하지 않은 양위식을 일본이 멋대로 거행해 대한제국의

황제가 된 순종은 이름만 황제일 뿐 아무런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일본이 조선을 강제로 합병해 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후 순종은 윤택영의 딸을 순정효황후로 맞이했으나 역시 후사를 보지 못했다.

순종 즉위 직후,일본은 순종의 의지와는 달리 이완용 등의 친일 대신과 '한일신협약'을 체결해 대한제국의 법령 제정권,관리 임명권,행정권 등을 빼앗아갔다.

그리고,1910년8월에 '한일합병 조약'이 체결됨으로써 조선의 모든 통치권이 일본에 넘어가게 되었다.

순종은 즉위 3년 만에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났고 대한제국은 주권을 상실했다.

이로서 태조 이성계가 1392년에 조선을 건국한 지 519년 만에 조선 왕조가 망하고 만 것이다.

순종은 일본에 의해 '이왕(李王)'의 신분으로 격하된 채 창덕궁에 기거하다가 1926년4월25일에 죽었다.
 나라를 잃은 왕의 마지막 모습은 이렇듯 비참했다.

순종은 살아 있는 내내 병약했고 판단력도 흐렸다.

일설에는 고종을 독살하려고 누군가 커피에 다량의 아편을 탔는데 황태자였던 순종이 이를 모르고 마신

후로 몸과 정신이 온전치 못했다고 한다.

그래도 국민들은 이런 왕을 끝내 마음속에서 지우지 못했다.

순종의 장례식 날, 수많은 국민들이 장례 행렬을 따르며 애통해했다.

또한 울분을 쏟아내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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