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 제5대 문종      작성일자; 2010.04.18.일요일,맑음

 

제5대 문종;이 향(제3대 태종 셋째 아들)

생졸; 1414(태종 14)-1452(문종 2).39세

재위기간; 1450-1452.2년

 가계도; 3명의 부인에게서 1남 2녀

  부;제3대 태종 셋째 아들

  모;원경왕후 민씨

  왕후; 현덕왕후 권씨

     단종; 이홍위 제6대왕 

     경혜공주

   귀인 홍씨

   사측 양씨;경숙옹주

 

세종의 첫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소헌왕후 심씨며 비는 권전의 딸 현덕왕후다.

1421년,세종 3년에 세자로 책봉되어 일찍기 학문을 좋아하고 인품이 관후했다.

세종은 자신이 각종 질환을 앓게 되자 세자인 문종이 섭정하는 데 필요한 체제를 마련했다.

1445년부터 시작된 세자 문종의 섭정은 세종이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문종은 세종 즉위 3년에 왕세자에 책봉되어 29년 동안 왕세자에 머물렀다.

그는 어릴 때부터 학문을 좋아해 학자를 가까이 했으며 측우기 제작에 직접 참여 했을 정도로 천문.역수 및 산술에도

뛰어났고 서예 에도 능했다.

성격이 유순하고 자상하여 누구에게나 호평을 받았으며 거동이 침착하고 판단이 신중하여 남에게 비난받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착하고 어질기만 하여 문약함을 벗어나지 못했다.

1442년부터 1450년까지 8년간의 섭정을 통해 정치 실물를 익혔고, 여러 가지 치적을 남기기도 했다.

때문에 세종 후반기의 정치적 치적은 세자 향의 업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관의 언론이 활성화되었고 6품 이하의 신하에 대해서는 윤대를 허락해 벼슬이 낮은 신하들의 말에 대해서도 경청했다.

이렇듯 유연함과 강인함을 곁들인 정책을 실시하였으나 건강 악화로 제위 2년3개월만에 39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문종은 첫번째 빈궁으로 김씨,두번째로 봉씨가 있었으나 둘 다 과실이 있어 폐위되었다.

순빈 봉씨가 폐출되자 권전의 딸이 세자빈으로 정해졌는데 그녀가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 권씨이다.

현덕왕후는 1441년 세자빈 시절에 단종을 낳고 3일만에 죽었는데,

그녀의 원혼이 수양대군이 왕권을 찬탈한 후에 궁중에 나타나 그의 가족들을 괴롭혔다는 얘기가 전한다.

그래서 세조의 큰아들 의경 세자가 그녀의 원혼에 시달려 죽었으며,

세조 역시 꿈에서 그녀가 뱉은 침 때문에 피부병에 걸려 고생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세조는 현덕왕후의 무덤을 파해 쳐 관을 파내기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문종은 즉위 후 당시 언관(대간)의 언론이 정치 전반에 걸쳐 활발히 전개 되었음에도 자주 구언을 했고,

언로를 넓혀 조신 6품 이상에게는 모두 윤대(임금을 만나 직무에 대해 아뢰던 일)를 허락했다.

또한 세자 때부터 군정에도 관심이 많아,

1451년, 3군에 속한 12사를 5사로 줄인 반면 병력을 증대시키고 각 병종을 5사에 배분하는 등 군제를 정비했다.

서적 편찬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 즉위년에 '동국병감'이 출간되었고, 1

449년에 김종서,정인지 등에 개찬을 명한 '고려사'가 1451년 완성을 보았다.

1452년에는 편년체로 서술된 '고려사절요'도 완성되었다.

 문종은 유학·천문·역법·산술 등에 정통했고, 글씨에도 뛰어났다.

그러나 몸이 허약해 재위 2년 4개월 만에 죽어 나이 어린 세자 단종이 즉위하게 되었다.

능은 경기도 양주에 있는 현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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