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 제6대 단종 이야기       작성일자; 2010.04.29.목요일,맑음

단종; 문종의 첫째 아들

생졸; 1441~1457.17세

제위기간; 1452~1455. 3년

능; 장릉은 비운의 왕으로 알려진 제6대 단종의 능이다.

   조선 왕릉은 현재 북한에 있는 2기를 제외하고 대부분 도성인 서울을 중심으로 반경 4~40km에 조영 되었다.

   장릉은 유일하게 강원도 영월군에 있다.

가계도;

   부; 제5대 왕 문종

   모; 현덕왕후 권씨

     누나; 경혜공주

     단종; 

       정순왕후 송씨; 생졸(1440년-1521),단종의 정비 여량부원군 송현수의 딸로  본관은 여산이다.

 

단종은 문종과 현덕왕후 권 씨의 아들로 태어난 다음 날 어머니를 여의었다.

10세 때인 1450년, 아버지인 문종의 즉위로 왕세자로 책봉되었는데 문종이 왕이 된 지 2년 3개월 만에 사망하는 바람에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한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왕이 된다.

 

정순왕후 송씨는 김종서의 사후 1454년에 간택령에 따라 왕비 교서를 받고 즉위하였다.

 남편 단종이 강등되면서 군부인으로 격하되었다가 관비가 되었다.

 한때  신숙주가 그를 자신의 종으로 달라고 했다가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후 세조는 그를 노비이지만 아무도 범하지 못하도록 정업원으로 보냈다.

  이후 남편 노산군의 명복을 빌다가 사망하였다.

  중종 때부터 복위가 거론되다가 송시열,김수항의 거듭된 건의로 1698년(숙종 24년)에 단종과 함께 복위되어 왕후로

  추봉되었다.

  전라북도 출신이다.

   세종의 왕자 영응대군의 부인 대방군부인 송씨는 그녀의 고모이자 시숙모이다.

 

1448년(세종 30), 8세 때 왕세손에 책봉되고,

1450년(문종1년), 문종이 즉위하자 왕세자에 책봉되었다.

1452년(단종1년)5월, 문종이 재위 2년 만에 죽자 12세에 왕위에 올랐다.

  문종은 자신이 병약하여 황보인,김종서 등에게 나이 어린 세자의 보필을 부탁했고,

  집현전 학사인 성삼문·박팽년·신숙주 등에게도 좌우에서 힘을 모아 도와주라는 유언을 했다.

1453년(단종2년), 숙부 수양대군이 권람,한명회등과 함께 황보인,김종서 등을 제거하고 정권 장악하자

    단종은 단지 이름뿐인 왕이 되었다.

    짧은 재위 기간 중에도 양성지에게 '조선도도''팔도각도'를 편찬하게 하고,

1454년에는 '황극치평도'를 간행하게 했다.

  '고려사를 인쇄,반포했으며,그 해 12월에는 각 도에 둔전을 설치하도록 명령했다.

1455년,단종은 한명회·권람 등의 강요에 더이상 견디지 못하여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되었다.

1456년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응부·유성원 등이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모두 처형된 뒤,

1457년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되었다.

1457년  9월 경상도 순흥에 유배되었던 숙부 금성대군이 다시 단종의 복위를 계획하다가 발각되자,

    노산군에서 서인으로 강봉되었으며 10월에는 마침내 죽음을 당했다.

1681년 숙종7녀에는 노산대군으로 추봉되고,

1698년 복위되어 묘호를 단종으로 추증하고,능호를 장릉이라 했다.

 

영도교

영도교는 단종이 영월로 유배를 갈때 단종비 정순왕후와 마지막 이별을한 다리라 하여 영영 돌아오지 못한 다리라는

뜻에서 영도교라고도하고,영원히 이별한 다리라 하여 영리교 라고도 한다고 한다.

단종은 한사코 따라나서는 정순왕후를 간신히 떼어 놓으며 이다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돌아 섰다고 한다.

그때 단종의 나이는 17살이었으며,정순왕후 송씨의 나이는 겨우 18살이었다.

영도교에서 단종과 이별한 정순왕후는 지금 숭인공원에 있는 청룡사에 들어가 따르던 상궁과 하인등 6분이 함께

스님이 되어 82세까지 살다가 돌아가셨는데 후손이 없어 단종 누나 정혜 공주의 시가인 정씨 문중의 선산에 묻혔다고 한다.

그곳이 바로 남양주에 있는 사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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