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 정보부장 김재규             2019.12.27.금요일,맑음

김재규는(생졸;1926년3월6일~1980년5월24일)

본관 김녕()으로 경상북도 선산군(현 구미시 선산읍)에서 출생하였다.

1943년, 안동 농림 학교를 졸업하고,

1945년, 경북 대학교 농과 대학 중등 교원양성소에 입학하여 수료하였다.

   김천중·고교에서 교직생활을 하였고,

국군 창설 때 조선국방 경비사관학교(현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여 

1946년12월,제2기생으로 졸업하였다.

1954년, 제5사단 제36연대장,

1957년, 육군대학부총장,

1963년, 제6사단장,

1966년, 제6관구 사령관과 방첩대장, 1

1969년, 육군보안사령관,

1971년, 제3군단장 등을 거친 뒤 중장으로 예편하였다.

1961년,5·16군사정변 직후 군정하에서는 호남 비료 사장을 역임하였다.

1973년, 유신 정우회 소속으로 제9대 국회의원이 되어 정치에 입문하였다.

1974부터 1976년까지 제13대 건설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1960년 말과 1970년 초부터 박정희 대통령은 베트남에서의 철수 문제 등이 한국경제에

   미칠 영향, 특히 외화와 건설 기술 획득의 어려움에 직면해 본격적으로 한국 기업의 중동

   진출을 위한 결정을 내렸고, 김재규가 건설부 장관으로 입각한 시기, 한국기업의 중동진출

   과정에 기여하였다.

1976년12월, 중앙정보부장에 임명되었고,

   박정희 대통령의 측근에서 정보수집과 사태수습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나 1979년의 YH 무역 여공농성사건,신민당 총재 김영삼의 의원직 박탈사건,부산.마산 항쟁 등의 정국 불안사건 등을 접하면서, 박정희 대통령 경호실장 차지철과의 갈등,

그리고 정권의 정당성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되었고,

1979년 중앙정보부 직속부하인 박선호·박흥주 등과 모의하여 이른바 ‘10·26사태’인 대통령

   시해 사건을 행하게 되었다.

1979년10월28일, 합동 수사본부장 전두환에 의해 체포되었고,

   이 사건에 대한 재판과정에서 여러 가지 설과 주장들이 제기되었으나,

   내란 목적 살인 및 내란 미수죄로 사형선 고를 받고,

1980년5월24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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