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제우,최시형,손병희         2019.09.12.목요일,비

□ 최제우; 1824(순조24년)-1864(고종1년)3월10일

본관은 경주며,아버지는 최옥,어머니는 한씨다.

생7대조는 최진립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혁혁한 공을 세워 병조판서의 벼슬과 정무공 시호가 내려진

무관이었으나,6대조 부터는 벼슬길에 오르지 못한 몰락 양반 출신이었다.


최제우는 조선 동학의 교조이다.

동학은 서양에서 전래한 종교인 '서학'에 대하여 천도교를 이르는 이름이다.

최제우는 세상이 어지럽고 인심이 각박하게 된 것은 세상 사람들이 천명을 돌보지 않기 때문임을 깨닫고

한울님의 뜻을 알아내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1860년 종교 체험 후,1861년 포교를 시작하자 많은 신도가 추종하기 시작했다.
교세는 계속 신장되어 1863년에는 신도가 3,000여 명,접소는 13개소에 달했다.

정부가 동학의 교세 확장을 경계하여 관헌의 지목을 받게 되자 곧 탄압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그해 7월, 최시형을 북접 주인으로 정하고 해월이라는 도호를 내린 뒤,

 8월14일 도통을 전수하여 제2대 교주로 삼았다.

이듬해 3월, 사도난정의 죄목으로 효수형에 처해졌다.


□ 최시형; 1827(순조27)-1898(광무2년)

최제우에 이은 동학의 제2대 교주로써 본관은 경주며,

최제우가 동학을 포교하기 시작한 1861년 동학에 입교하여,

1863년 최제우로부터 동학의 도통을 이어받았다.

1880년에 '동경대전', 1881년에는 '용담유사'를 간행했다.

1884년 육임제를 정하여 교단을 정비했으며 교세를 확장했다.

1892년 교조신원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신도들에 대한 탄압을 중지할 것을 요구해 했으며,

1894년 일어난 갑오농민전쟁에 동학교도들과 함께 참여했다.

1898년 원주 송골에서 체포되어 교수형을 당했다.


□ 손병희; 1861-1922

근대화론과 개화 사상에 입각해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고 스스로 대도주가 되었다.

동학교도의 자제들을 일본에 유학시켜 근대적 교육을 받게 했으며 사립학교를 원조했다.

한일합병 이후,재정난에 빠진 동덕 여자의숙을 원조하고 보성 학원과 동덕 여학교를 인수하는 등

교육사업에 매진했다.
1차대전 종전 후 윌슨의 민족 자결 주의의 영향으로 3·1운동을 준비하게 됐을 때 3가지 원칙을 천명했다.

독립운동을 대중화시킬 것과 일원화할 것, 비폭력으로 할 것 등이었다.

폭력적 민중 시위의 경우 일제의 가혹한 탄압과 서구 문명국의 동정을 얻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는 평화적인 만세 시위 방침을 받아들이고 3·1운동에 참여한 뒤 일본 경찰에 자진 출두하여 검거되었다. 형집행 정지를 언도받고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받던 중 1922년 병세가 악화되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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