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일신협약(정미7조약)               2019.09.19.목요일,맑음

1907년7월24일,일본이 한국을 강점하기 위한 예비 조처로서 체결한 7개 항목의 조약으로

정미 7조약이라고도 부른다.


1905년11월17일의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내정을 간섭해 오던 일본은,

1907년7월22일,헤이그 특사 파견 사건을 계기로 한층 더 강한 침략 행위를 강행할 방법을 강구하였다.

일본은 외무대신 하야시와 통감 이토 히로부미(이등방문)로 하여금 우선 사건의 책임을 고종에게 물어

고종을 퇴위 시키기로 결정했다.

이와 동시에 순종이 즉위한 4일 후인 1907년7월24일,대한제국의 국권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는 내용의

원안을 제시하였다.


이완용 내각은 즉시 각의를 열고 일본측 원안을 그대로 채택,

순종의 재가를 얻은 뒤 이완용이 전권 위원이 되어 7월24일 밤, 통감 이토의 사택에서 7개 조항의 신협약을 체결,조인하였다.


이 밖에 각 조항의 시행 규칙에 관하여 협정된 비밀 조치서가 작성되었는데,

가장 중요한 항목인 한국 군대의 해산을 비롯하여,사법권의 위임,일본인 차관의 채용,경찰권의 위임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이 조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조. 한국 정부는 시정 개선에 관하여 통감의 지도를 받을 것.

   제2조. 한국 정부의 법령 제정 및 중요한 행정상의 처분은 미리 통감의 승인을 거칠 것.

   제3조. 한국의 사법 사무는 보통 행정 사무와 이를 구분할 것.

   제4조. 한국 고등 관리의 임면은 통감의 동의로써 이를 행할 것.

   제5조' 한국 정부는 통감이 추천하는 일본인을 한국 관리에 고용할 것.

   제6조. 한국 정부는 통감의 동의없이 외국인을 한국 관리에 임명하지 말 것.

   제7조. 1904년8월22일 조인한 한일 외국인 고문용빙에 관한 협정서 제1항을 폐지할 것.

     이 조약의 7개조를 보면,을사 조약보다 강력한 통감의 권한과 일본인 관리 채용 등을 한국의 내정에

     관한 모든 국권을 일본에게 넘긴 것을 알 수 있다.

     제7조에서 외국인 재정 고문의 용빙을 폐지한다고 한 것은, 사법권과 관리 임용권까지 빼앗았기 때문에

     이 조항이 무의미하게 되어 폐지한 것이다.

'한일신협약'의 체결로 한국은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군대가 해산됨에 따라 각지에서 무장 항일 운동이 전개되었다.

일제는 한국의 사법권.행정권 및 관리 임면권을 빼앗고 외국인 고문 폐지 등을 강압적으로 실시하여,

이후 1910년 강제로 병합할 때까지 한국에서 이른바 차관 정치를 실시하였다.

이 결과 1909년 현재 한국 정부에 채용, 배치된 일본인 관리의 수는 2,000여 명으로 모든 행정 관청이

일제의 손아귀에 들어간 꼴이 되었다.

이것은 침략 정책을 단계적으로 강행하는 한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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