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정               2019.12.19.목요일,맑음

허정(생졸; 1896년-1988년)은 부산에서 출생하여 서울특별시장,외무부 장관,대통령 권한

대행,국민의 당 대표 최고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896년,

부산에서 출생하여 보성 전문학교 법과를 졸업하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 시위에 참여하였고, 이어 중국에 망명하여 상해 임시 정부에 가담하였다.

1920년,

프랑스에서 재프랑스 한국인 거류민 회장이 되었고,

다시 미국으로 이주하여 뉴욕 한국학생 회장으로 일하였다.

뉴욕에서 공부하면서 이승만의 독립운동을 직접 도왔다.

1922년,

북미한인교민총단장이 되었으며,

1923년,

 미국 교민의 독립 정신을 고취하기 위해서 창간된 '삼일신보'의 사장이 되었다.

1945년,

미군정에 의해 서울시 고문관으로 활동했으며,

12월 임정 한민당 등의 ‘국민대회준비회’의 중앙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46년2월,

대한민국 민주의원 비서국에서 임영신,장준하 등과 비서국원으로 있었으며,

1947년9월,

미국의 한국 문제 UN 상정을 지지하기 위한 한국 민주당의 신임 상임위원 인선에서 장덕수,

김준연,백관수,함상훈,서상일등과 신임 상임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48년,

제헌의원선거 때 부산을구에서 한민당 후보로 당선되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교통부장관이 되었으며,

1950년-1952년에는 사회부 장관으로 재임했고,

1951년-1952년에는 국무총리서리,

1957년-1959년에는 서울 특별시장을 지냈으며,

1959년, 한일 회담 수석대표로 발탁되었다.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한 뒤 외무부 장관을 겸직하면서,과도 정부의 수반

(대통령권한대행)이 되었다.

하야한 이승만을 하와이로 망명하게 하였으며, 선거를 치루어 새로 발족한 내각에 권한을

인계하였다.

1963년,

‘국민의 당’을 창당하여 대표 최고위원이 되어 대통령 후보로 내정되었으나 윤보선과 야당 후보 단일화를 이루어 양보하였다.

1963년,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보선이 패배한 뒤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으나

1965년6월,

민중당이 창당되어 대표 최고 위원에 박순천, 고문에 윤보선이 선출되었고,김도연을 대신해

   허정이 서민호와 함께 최고 위원이 되었다.

1969년부터 1984년까지 통일원고문,

1980년까지 국정 자문위원으로 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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