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장엽 망명            2019.12.28.토요일,맑음

황장엽(생졸;1923년2월17일-2010년10월10일)은 북한의 정치인.주체 사상 이론가이자

노동당 비서, 최고인민회의 의장 등을 지낸 북한 최고위층 인사로

1997년2월12일에 한국으로 망명하였다.


북한 평안남도 평양의 강동군에서 태어난 평양공립상업학교,일본 주오대,김일성 종합대를 거쳐 모스크바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1954년, 김일성 종합 대학 교수가 되었다.
1958년, 노동당(조선노동당) 서기실 이론 서기,

1959년,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을 맡았으며 김일성의 눈에 들어 철학담당 비서로 활약.

1962년, 북한 최고 인민회의(국회에 해당)의 대의원으로 정계에 발을 디뎠고,

1964년, 김일성을 보좌하는 내각 참사관으로 일하였다.
1965년, 43세의 나이에 김일성 종합대학 총장에 임명되었고,

1970년, 노동당 중앙위원이 되었다.

1972년부터 1983년까지 11년간 최고 인민회의 의장직을 수행하며 최고위층에 올랐다.

1979년, 노동당 과학 교육담당 비서 및 주체사상 연구소장,

1980년, 노동당 비서,

1984년,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

1986년, 조국평화 통일위원회 부위원장,

1987년, 조선 사회과학자 협회 위원장,

1993년, 최고 인민회의 외교 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았다.

황장엽은 북한의 통치 이데올로기 중 하나인 주체 사상의 최고 이론가로서 주체 사상을

해외에 전파하는 외교업무를 병행하였으며,

김일성의 비공식 방중을 단독 수행하는 등 굳건한 입지를 구축하였다.

또 김정일이 백두산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는 백두산 출생설을 퍼뜨리며 김정일 후계자 구도 구축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하고,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 등의 호칭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북한 권력 서열 13위에 오를 정도로 핵심적 권력층에 있었던 그는

김정일과의 갈등으로 망명을 결심하였고,

1997년,

베이징 주재 한국총영사관을 통해 한국으로 망명하였다.

망명 후 탈북자동지회, 북한민주화위원회 등 탈북자 단체에서 활동하며 강연과 방송 등을

통하여 북한의 체제와 권력을 비판하였다

2010년10월10일, 오전 9시30분,

서울 강남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황장엽씨가 욕탕에서 발견된 것으로 미뤄 심장마비로 인한 자연사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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