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6 사태           2019.12.27.금요일,맑음

1979년10월26일,역사의 한획을 그은 사건으로 대통령 박정희가 현직 중앙 정보 부장인

김재규에 의해 총탄에 맞아 암살당한 사건이다.

10·26사태의 진상은 현재까지 흑막에 가려져 있으나,당시 군수사부의 발표에 의하면

박정희의 신임을 받던 중앙 정보부장 김재규는 무능을 이유로 박정희로부터 몇 차례 힐책을 받은 데다 대통령에게 올리는 보고나 건의가 차지철 경호실장에 의해 번번이 제동이 걸리는 등 박정희와 차지철에게 불만이 쌓여 있던 중,

10월26일, 궁정동 중앙 정보부 밀실에서 박정희와 만찬을 함께 할 기회가 생기자 이 기회에 암살하기로 결심,계획을 실행할 준비를 하는 한편,암살 직후 쿠데타를 일으킬 목적으로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과 중앙 정보부 차장보 김정섭을 궁정동 별관에 대기시켰다.

5시40분경, 김계원 대통령 비서실장이 먼저 도착하자 김재규는 그에게 차지철 살해를 암시했고,평소 차지철에게 반감을 품고 있던 김계원은 동조하듯 이를 묵인했다.


6시5분경, 만찬이 시작되었고 식사 중 박정희가 부마 사태를 중앙정보부의 정보 부재 탓으로 돌려 김재규를 힐난한 데 이어 차지철이 과격한 어조로 그를 공박하자 흥분한 김재규는

밖으로 나와 2층 집무실에서 권총을 갖고 만찬회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직속 부하 박흥주와 박선호에게 '총소리가 나면 경호원을 사살할 것'을 지시,

7시35분경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확인한 그는 차지철과 박정희에게 각각 2발씩을 쏘아 두 사람을 절명 시킴으로써 18년간의 1인 독재정권과 유신체제는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사건 직후 전두환 보안 사령관은 김재규를 대통령 살해범으로 체포하고 최규화 대통령 권한대행은 10월27일,새벽 4시를 기해 전국에 비상 계엄을 선포했다.

이 사건으로 김재규,김계원,박흥주,박선호에게 사형이 선고 되었고 김계원을 제외한 나머지 전원에게 사형이 집행되었다.


10.26 사태의 발생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규명되지 않은 채 박정희와 차지철에 대한 김재규의 사감 때문이라는 설이다,

김재규 자신의 말대로 부마 사태의 참혹한 현장을 보고 박정권의 정당성에 회의를 품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사건 전날인 10월25일, 아시아 협회 주최의 만찬회에서 당시 주한 미군 사령관 존 베시 육군참모총장이 한 발언 등을 근거로 미국이 개입했을 것이라는 설 등 논란이 구구하나,

이는 민중 항쟁이 격화되면서 위기에 직면한 정치 권력의 내분이 빚어낸 결과로 YH사건,

김영삼 총재 제명 파동,부마 민중 운동으로 이어진 역사 흐름의 필연적 귀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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