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6 군사 정변         2019.12.20.금요일,흐림

1961년5월16일,

박정희의 주도로 육군사관학교 8기생 출신 군인들이 제2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한 군사 정변이다.

1961년,

5·16 군사 정변은 당시의 정치·사회적 문제와 군 내부의 문제라는 두 가지 배경을 갖는다.

1.정치권은 집권당인 민주당이 신,구파 간의 갈등으로 분열되어 있었고,

   다양한 사회 세력들은 정치적 요구를 주장하여 정국은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2.혁신계 정치 세력의 부상과 학생 세력의 진출은 민족 자주화운동,통일 촉진운동으로 전개

   되어 반공 분단 국가의 근본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1950년,6 ·25전쟁 이후 한국사회에서의 사회적 지위 신장과 더불어 권력에 대한 욕구가

충만되어 있던 군부 내에서는 육사 8기생을 중심으로 고급 장성의 부정 부패와 승진의 적체 현상을 공격하는 ‘하극상 사건’이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소장 박정희와 중령 김종필을 중심으로 한 육사 8기생들은

1960년9월에 쿠데타를 모의하였다.

1961년5월16일 새벽,

제2군 부사령관인 소장 박정희와 육사8기생 주도 세력은 한강을 건너 서울의 주요기관을

점령하였다.

'군사 혁명 위원회.를 조직하여 전권을 장악하면서 군사 혁명의 성공과 6개항의 ‘혁명공약’을 발표하였다.

그 6개항이란

1.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고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할 것,

2. 미국을 위시한 자유우방과의 유대를 공고히 할 것,

3.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청렴한 기풍을 진작시킬 것,

4.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자주경제의 재건에 총력을 경주할 것,

5. 국토통일을 위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을 배양할 것,

6. 양심적인 정치인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군은 본연의 임무로 복귀한다는 것이었다.

 

1961년의 5.16 군사 정변은 초기에 미8군 사령관(C.B.매그루더),야전 군사령관 이한림 등의 반대로 잠시 난관에 부딪히지만,미국 정부의 지지 표명,장면 내각의 총사퇴,대통령 윤보선의 묵인 등에 의하여 성공하였다.

'군사혁명위원회'는 ‘국가재건 최고회의’로 재편하여 1963년까지 3년간의 군정 통치에 착수하였다.

군정 기간 중 군사 혁명세력은

 ‘특수범죄(반혁명, 반국가행위)처벌법’, ‘정치활동정화법’ 등 법적 조치를 통하여 정치적

반대세력과 군부 내의 반대파까지 제거하였으며,

핵심 권력 기구로서 ‘중앙 정보부’를 설치하고 ‘민주 공화당’을 조직 한 후 대통령제 복귀와 기본권 제한,국회에 대한 견제를 골자로 하는 헌법 개정을 시행하였다.

 

1963년 말,

대통령선거,국회의원 선거를 승리로 이끌고 제3공화국은 정식 출범하였다.

반공 분단국가의 위기상황에서 권력을 지향한 군부 세력이 불법적으로 합법적인 정부를

전복하여 권력을 장악한 사건이다.

이후 국가 주도의 급속한 경제 발전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하나,군사 문화의 사회 확산, 군의 탈법적 정치 개입의 선례를 남겼으며,민주적 정권 교체의 지연,산업화의 지역.계층간

불균형 등의 부정적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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