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9 민주화 선언         2019.12.27.금요일,맑음

1987년6월29일,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 민주정의당(약칭 민정당) 대표 위원이

국민들의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여 발표한 시국 수습을 위한 특별 선언이다.


1985년, 2.12총선 이후 선출된 제5공화국 대통령 전두환에게 직선제 개헌을 주장하였다.

1987년4월13일,전두환 대통령은 일체의 개헌논의를 금지하는 호헌조치를 발표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이 알려지면서 정국은 대결

   국면으로 치달았다.

1987년6월10일, 노태우가 민정당의 대통령 후보로 공식 지명되는 와중에 전국 도시에서

   대규모 가두집회가 열리고 시위가 연일 계속되었다.

1987년6월26일,전국 37개 도시에서 100만여 명이 밤늦게까지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경찰력이 마비되자 정부는 위수령 발동과 군 투입을 검토하였으나 직선제 개헌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하여 6·29선언이 발표되었다.


신군부는 1988년에 개최될 올림픽의 중요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위수령이 발동될 징후를 알아차렸던 미국은 한국정부에 압력을 가하여 이를 저지시켰으며, 야당과 신속히 타협하도록 촉구하였다.

따라서 6·29선언의 생성 과정에서 미국의 압력이 일정하게 작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노태우 대표는 자신의 제안이 관철되지 않으면 민정당 대통령 후보와 당 대표 위원직을 

사퇴한다는 단서를 첨가하였다.

그러자 민정당은 6·29선언을 당의 공식 입장으로 추인하였으며,전두환 당시 대통령도 특별담화를 통해 대폭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6·29 선언은 정부와 집권당의

공식 입장이 되었고,결국 4·13호헌조치는 철회되었다.


이 결과 1987년10월27일, 국민 투표로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졌고,

1987년12월16일, 대통령 선거에서 민정당 후보 노태우가 김영삼,김대중,김종필 후보 등에 맞서 36.6%의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다.


6·29 선언은 집권층의 공개적 민주화 선언으로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것이며,

민중항쟁에 의한 타협이었다.


선언 직후에는 노태우가 독자적으로 6·29선언을 발의하였다 하였으나,

전두환이 노태우에게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이라고 지시하였다는 설이 힘을 얻고 있다.

전두환은 김대중이 해금된 상태에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면

1여2야의 3파전 혹은 1여3야의 4파전에서 승산이 있다고 설득하였다는 것이다.


6.29 선언은 전두환이 주도하고 노태우가 발표한 것이라는 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당시 노태우 후보는 6·29 선언을 ‘6·29 항복 선언’이라고 규정했다.

6·29 선언은 군사 독재를 청산하는 한 전기가 마련되었고,

민주화 투쟁의 한 값진 산물로 볼 수가 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