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색을 멀리한 송반 작성일시; 2008.04.10.목요일,맑음
태종 때 송반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여색을 멀리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그는 건장한 데다 미남이었다.
그가 굳이 여색을 밝히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인네들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많은 사람임에도
여자들을 멀리해 오히려 그의 인품을 높이 샀다.
그런데 충청도 진천 출신으로 영의정을 지낸 바 있는 유정현 대감은 송반을 자식처럼 아끼면서 자신의 집에 기거토록 했다.
유대감에게는 송반 또래의 아들이 있었는데 장가간 지 얼마되지 않아 요절을 하였다.
유대감에게는 이제 일곱 살 난 둘째 아들이 있었는데 이 아들을 가르칠 사범이 필요하던 차였다.
마침 송반에 대한 얘기를 전해들은 유정승은 특별 과외 선생격으로 송반을 집으로 들였던 것이다.
송반은 정승의 둘째 아들을 친동생처럼 보살펴 주며 글을 가르쳤고 정승께도 마치 친부모처럼 섬기며 생활하였다.
유정승은 그를 아들처럼 아끼고 사랑했다.
마치 죽었던 큰 아들이 살아온 것 같은 착각을 할 때도 있을 정도였다.송반은 아주 사랑스럽고 소중한 사람이었다.
세월은 빨라 송반이 대감의 집에 온 지도 일 년이 다 지날 무렵이었다.
때는 꽃피는 춘삼월 파릇한 새싹이 돋고 온갖 꽃들이 앞 다투어 꽃망울을 터뜨렸다.
이 파릇한 봄날에 아무리 여색을 멀리한다는 송반인들 심중을 굳게 한다는 것은 의지일 뿐이지 목석이 아닌 바에야
송반인들 무얼할 수가있을까?
그도 인간인 것을.....어느 날 저녁 송반은 마음도 달랠 겸 집 뒷산인 낙산에 올랐다.
십만 인구가 산다는 장안을 둘러도 보았다. 집집마다 살구꽃이 활짝 피었다.
그런데 이 어찌된 일인지 송반이 서 있는 맞은편 멀리 한 여인이 서 있는데 꽃인지 사람인지 분간을 할 수 없이 화사하였다.
그 여인은 몸도 움직이지 않고 곳곳하게 서서 송반만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감히 어느 집 여인이 저리 무례하게 낯 선 남정네를 눈 한 번 깜짝 않고 바라보고 있단 말인가?
미인임에는 틀림없지만 참으로 괴이한 일이로다.
자세히 보니 그 여인이 서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자신이 기거하고 있는 유정현 대감의 집이었다.
바로 유대감의 며느리 였던 것이다.
그 여인도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었다.
남편의 요절 이후 자식 없이 청상과부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비록 한 집에 머물러 있었지만 송반은 그녀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남녀가 유별하고 수절을 하고 있는 여인이니 감히 서로 얼굴을 마주볼 수 조차 없는 일이었고 가까이에도 접근하지 않았다.
송반은 재빨리 눈길을 돌려 버렸다.
그리고 낙산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대감집 며느리는 그게 아니었었던가 보았다.
송반에게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송반은 피곤하기도 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소리가 나서 눈을 떠보니 며느리의 여종인 옥란이 문을 열고는 무언가를 내미는 게 아닌가
"이 밤중에 무슨 일이오?"
여종은 마님이 갖다 드리라고 했다면서 똘똘 말은 한지를 내밀고 총총히 뒤돌아섰다 열린 문으로 새는 달빛을 등 삼아
한지를 풀어보니 7언 절구의 시(詩)가 가슴 떨리게 하였다.
송반은 참으로 좋은 사람이었다.
주인집 과부 며느리의 이 같은 마음이 부도덕해 나무라거나 기꺼이 받아들이기 보다는
'젊은 여인이 혼자 살다보니 괴롭고 힘든 것은 당연한 일 얼마나 외로웠으면 이렇게 시를 적어 보냈을까'이해하려 애썼다.
하지만 결코 여자를 찾아가지는 않았다.
예기치 않았던 사건으로 인해 불편해진 마음을 달래며 어느날 밤 잠을 청하려는데
옥란이가 또 송반을 찾아와 편지를 또 전해주었다.
"여인의 마음을 그리도 헤아리지 못하시는지요? 제 청을 받아들이지 않으신다면 내 오늘밤 자결을 할 것이옵니다"
기가 막힐 일이었다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 송반은 의복을 갖추고 여인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녀에게 이야기하였다.
유정승께서 자기에게 베푼 정과 사랑을 생각하면 절대 그럴 수 없으며 도의에 벗어나는 일은 할 수 없으니 마음을 진정하고
노여움을 풀라며 달랬다.
그때였다.
밖에서는 새벽잠 없는 노인 유정승이 마당을 거닐다가 며느리의 방에서 흘러 나오는 소릴 듣고 며느리 방문 앞으로 가
귀를 기울였다.
밖에서 보아 하니 방 안에 두 남녀가 분명히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 기울여 들어보니 송반과 며느리가 아닌가 유정승은 급히 단도를 들고 와 문을 열고 내리칠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젊은 남자가 하는 말이 들려왔다.
오히려 여인의 마음을 갈아 앉히려고 예의를 지켜 말하는 소리가 역력했다.
역시 자신이 생각하는 송반은 여자를 함부로 탐하거나 도리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는 사람임에 틀림 없었다.
유정승은 감탄하였다.
그리고 이튿날 대감은 두 사람을 불렀다.
먼저 송반에게 간곡히 부탁을 하였다.
죽은 아들 대신 자신의 아들이 되어 달라고 한 것이다.
청상 과부인 자기 며느리를 아내로 받아들여 함께 살자는 얘기였다.
송반은 그의 간곡한 마음을 받아들여 그 여인과 혼인하였다.
유정승은 세상에 다시없는 시아버지요 부형이었다.
자칫 당장 쫓겨날 만한 일을 저지른 셈인데도 그 며느리를 감싸고 여색을 멀리했던 송반을
다시 그의 아들로 태어나게 한 셈이었다.
훗날 송반은 대도호 부사를 거쳐 병조 판서에 올랐다.
그 후에도 그가 지닌 인품 만큼이나 빛나는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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