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영경 2018.12.14.금요일, 맑음
우이정 유영경; 조선 중기의 상신(相臣).
생졸; 1550년(명종5년)∼1608(선조41).59세
같은 북인인 홍여순을 탄핵하면서 북인은 대북,소북으로 붕당된다.
남이공,유이분과 함께 소북의 영수가 된다.
유영경은 임진왜란때 의병을 모집하여 해주에서 일본군을 물리친 공으로 호조참의에 오른다.
동인이 남인,북인으로 나누어지자 이발과 함께 북인에 가담하여 이조판서에 이어 우의정에 이른다.
영의정에 오른 뒤 남이공과 불화하여 소북으로 분파된다.
유영경은 선조 말년에 영창대군을 옹립 하려 했으나 광해군이 즉위한 1608년 사사 되었다.
1572년(선조 5) 춘당대문과에 급제했다.
1592년 임진왜란때 사간으로서 의병을 모집했고,
다음해 황해도 순찰사가 되어 해주에서 일본군을 물리친 공으로 호조참의에 올랐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지중추부사로서 가족을 먼저 피난시켰다는 혐의로 파직되었다가
이듬해 병조참판이 되었다.
동서분쟁 과정에서 유성룡과 함께 동인에 속했고,
동인이 다시 남인,북인으로 나뉘자 이발과함께 북인에 가담했다.
1599년에는 남이공,김신국과 함께 같은 북인인 홍여순을 탄핵하면서 대북,소북으로 갈리자,
남이공,유이분 등과 함께 영수가 되었다.
1602년 이조판서에 이어 우의정에 올랐다.
1604년 영의정이 된 뒤 남이공과 불화하여 소북으로 분파했다.
선조 말엽 권력을 잡고 이미 세자로 지명된 광해군 대신 선조가 총애한 영창대군을 옹립하려 했다.
광해군이 즉위한 후 대북 이이첨,정인홍의 탄핵을 받고 경흥에 유배되었다가 사사되었다.
유생의 명단인 '청금록'에서 이름이 삭제되기도 하였다.
1623년 인조 반정으로 관작이 복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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