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라우치 암살 미수 사건                2019.10.25.금요일,맑음

1910년12월27일,안명근이 초대 조선 총독 데라우치를 사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다.


1910년10월1일부터 위압을 떨치기 시작한 조선 총독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105인 사건'을 일으켜 민족

지도자 윤치호·양기탁,이승훈 등을 전국에 수배, 일제히 검거하였다.

주동적 임무를 띤 안명근은 종형 안중근의 쾌거를 본받아 치밀하게 거사를 준비하였다.

일본 경찰의 안씨 일족에 대한 감시가 혹심해서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였으나, 

총독 등 일제의 침략 수뇌부를 폭살 제거할 계획을 수립하고 군자금을 모집하기로 한 뒤 서간도에 잠시 이주하였다.그 일대에 무관학교를 건립하여 무장 독립군을 양성할 원대한 계획도 병행시켰다.

이를 실현키 위해 국내에 온 안명근 배경진·박만준·한순직 등과 군관학교 설립의 구체적인 의견을 교환했다.

군관학교의 자금 조달을 황해도 신천 출신 이원식과 송화 출신 신석효에게 받고,신천 출신의 민병찬,민영설에게 군자금을 요구했으나 이들은 불응하였을 뿐 아니라 재령의 일본 헌병대에 밀고하여 안명근은 전국에 지명 수배되었다.

국내에 은신 중이던 안명근은

1910년12월27일, 일제의 대륙 침략의 관문인 압록강 철교의 준공식에 데라우치가 참석할 것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이 기회를 이용해 안명근은 평양역 근처에 대기하면서 데라우치를 암살할 계획을 준비하던 중

   일본 경찰에 잡히고 말았다.일본 경찰은 당시 안명근이 소지하고 있던 거금을 데라우치 사살 자금으로,

   소지하고 있던 권총 등 무기는 거사용이라 하여, 이른바 암살 기도범으로 입건하였다.

   고문에 못이겨 자백하고 말았고 일제는 이 사건을 계기로 안명근이 신민회 회원임을 알아차렸다.

1911년1월, 전국 경찰에 명해 윤치호·양기탁·이승훈·유동열·김구·김홍량·최명식·도인권·안태국 등 신민회

   민족 지도자 600인을 검거하였다.

   그 중 105인을 기소, 105인 사건을 야기하였다.

   안명근의 데라우치 사살 미수 의거로 인해 신민회 사건과 105인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난 셈이다.

   안명근은 법정에서 정정당당하게 투쟁하다가 무기 징역을 언도 받고 10년간 복역한 뒤 풀려났다.


',·´″″°³ 역사.인물.사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안악 사건/191025   (0) 2019.10.25
⊙ 안명근/191025  (0) 2019.10.25
⊙ 신채호/191025  (0) 2019.10.25
⊙ 이승훈/190924   (0) 2019.09.24
⊙ 도산 안창호/190919   (0) 2019.09.1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