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8 대구 학생 의거          2019.11.15.금요일,맑음

1960.2.28, 2.28 대구 학생 의거는 이승만 정권 시절 3.15 대선을 앞두고 이승만 정부와 자유당의 독재에 항거하여 대구시에서 일어난 학생 의거로,

2·28 의거는 이후 3.15 마산 의거와 4.19 혁명의 도하선이 되었다.


민주당 정.부통령 후보인 장면 박사의 유세일 당일은 일요일이었으나,

학생들이 민주당 유세장에 못나가도록 당국이 등교 지시를 내린 것이 2·28 대구 학생의거의 발단이 되었다.


경북 고등학교는 3월에 있을 중간고사를 앞당겨 친다는 이유로 일요일인 이날 등교 지시를 내린다.

대구시의 다른 7개교 역시 영화 관람과 같은 황당한 이유로 일요 등교를 지시한다.

1960년2월27일 오후, 대구 동인동 경북 고등학교 학생부 위원장인 이대우 집에

   경북 고등학교,대구 고등학교,경북대학 사범대학 부설 고등학교 학생 8명은 부당한 일요 등교 지시에

   항의를 하기 위해 시위를 조직하여 결의문도 작성했다.

1960년2월28일 오후 1시,800여명의 학생이 반월당을 거쳐 경북 도청으로 가는 길에 다른 학교 학생들이

   합류하며 시위대는 도중에 유세장으로 가던 장면 박사를 만났을 땐 '만세'를 부르기도 했다.

   당시 경상북도지사는 학생들에게 "이놈들은 전부 공산당"이라고 말한 반면,시민들은 구타당하는 학생을

   경찰에게 달려들어 말리고 박수를 쳤고,치맛자락에 모자를 감춰 학생을 숨겨주는 부인이 대부분이었다.

   1,200여명의 학생이 시위에 참여를 했고 그 중 120여명이 경찰에 체포된다.

   하지만 경찰은 시위가 번질 것을 우려해 주동자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학생을 석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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