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공화국 출범                 2019.12.20.금교일,맑음

제2공화국 체제는 1960년6월15일 부터 1961년5월16일 까지

1960년 4·19혁명으로 제1공화국이 붕괴된 후

허정 과도 정부인 4월27일에서 6월14일까지 권한 대행 체제를 거쳐 3차 개정인 내각제 개헌(1960년6월15일) 에 의해 탄생한 내각제 중심의 체제며 11개월간 존속했던 단명한 공화

헌정 체제이다.

대한민국 역사상 유일한 의원 내각제 기반의 헌정 체제이기도하다.

 

4·19 이후 정권을 인계 받은 보수 야당인 민주당은,

사사오입 개헌 파동 이후 자유당 정권을 반대하는 모든 세력이 이념과 지지 기반의 차이를 넘어서 결성된 우산 정당이었다.

1960년,4.19 혁명으로 이승만이 하야 후,

국회는 의원 내각제와 양원제를 권력 구조의 핵으로 헌법을 개정하여 총선거가 실시되어

민주당의 장면 내각이 들어섰다. 국무총리는 장면,대통령은 윤보선이었다.


민주당 정권은 자유주의 정치 이념을 기반으로 경제 개발 계획을 통한 산업입국을 꾀했으나,

장면의 민주당 신파와 윤보선의 민주당 구파 사이의 정치적 갈등으로 이러한 계획을 구체화할 정치적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4.19 혁명을 계기로 분출된 각계 각층의 요구에도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였다.

장면 정권은 군사 반란의 조짐을 보고 받고도 미국에 기댄 안이한 판단으로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아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군사 반란 세력에 속수무책으로 정권을 탈취당하였고,

결국 제2공화국은  1961년,5.16 군사 쿠테타에 의해 붕괴되었다.










자유당이라는 공동의 적이 사라지고 민주당을 구성했던 분파들은 적대적인 경쟁자의 관계로 돌아섰으며 그 결과 권력을 인계 받은 장면 정권은 약체 정권을 면할 수 없었다.

내각 책임제하에서 총리로 선출된 장면이 이끄는 민주당 정부는

경제 발전과 사회 개혁을 시도했으나 변동기에 분출한 국민적 요구를 충족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지지 기반의 취약성으로 인해 장면 정권은 진보와 보수중 어느 세력도 만족 시켜

줄 수 없었다.

과거와의 단절을 주장하는 급진 개혁 세력들은 부정 선거,권력 남용,부정 축재자 처벌에서 정부가 너무 미온적이라 비난했고,

혁신세력의 상승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위험시하던 반공 우익 세력은 혁신 세력에 대한

제재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장면 정권을 공격했다.

1961년5월16일,

장면 정부는 좌우의 협공을 받다가  박정희 소장과 그의 지지자들이 일으킨 5.16 군사정변에 의해 붕괴되었고,제2공화국은 수립 9개월 만에 붕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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