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대 대통령 김영삼                     작성일자;  2019.12.27.금요일,맑음

 

제14대 전대통령인 김영삼(생졸;1927년12월20일-2015년11월22일)은

경남 통영군 장목면 거제도에서 아버지 김홍조와 어머니 박부련 사이에서 1남 5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그는 거제도에서 멸치어장을 소유하던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 박부련은 1960년.무장공비 2명에 의해 살해되었고,아버지는 최남순과 재혼했으나 일찍 세상을 떠나

1985년, 74세에 13살 연하였던 이수남과 재혼하였다.

 

8세 되던해 장목 소학교를 졸업 후 1940년,통영 중학교를 입학 후 1945년11월,경남 중학교로 전학하였다. 

1947년,경남중학교를 졸업한 후 1948년9월에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하여 1951년9월에 졸업하였다.

6.25 발발 후 1.4후퇴 무렵 서둘러 남하하여 1951년2월,학도의용군에 입대했다. 신분은 학도병이었다.

국방부 정훈국장으로 있던 이선근의 추천으로 정훈병으로 8개월간 국방부 정훈국 대북방송 담당원으로

배치되었고,국회 부의장 장택상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1951년,장택상의 비서관이 되었다.  

1951년3월,경향고무를 경영하던 손상호의 딸 손명순과 마산 문창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2남 3녀를

두었다.차남 김현철 역시 후에 정치인이 된다.

1954년5월20일,제3대 국회위원 선거에 출마를 결심하고 자유당 본부에서 이기붕을 만났다.

자유당 후보로 경남의 거제도 지역구에서 출마하였고

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만 25세에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한다.

 

9선 국회의원을 지내며 유신 정권의 야당 지도자로서

민주당 원내총무,민정당 대변인, 신민당 원내총무로 활동하며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다.

1979년10월의 YH무역 농성사건 이후 미국에 박정희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것을 주장하였다.

유신정권은 이 발언을 문제삼아 의원직 제명 파동을 일으켜 부마 항쟁을 촉발했다.

1983년에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일을 기해 23일 동안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6월민주 항쟁 이후 통일 민주당 총재로 민주화추진 협의회를 구성해 민주진영을 구축했다.

1986년에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 서명운동을 전개하였다.

1990년,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이 3당 합당을 하여

민주 자유당 대표최고위원으로 추대 되었다.

1993년,제14대 대통령에 취임하며 32년만에 군사 정권의 마침표를 찍고 문민 정부를 열었다. 

치적으로 금융실명제(1993년)를 도입하고 차명 부정 계좌를 단속 및 처벌하였으며,

지방자치제를 전면 실시했다.

'역사 바로 세우기' 정책의 일환으로 옛 조선총독부 건물들을 철거하였고,

군군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를 척결했다.

또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을 수사하여 처벌하였고,

5.16 군사반란 및 5.18 민주화 운동 진압의 책임을 물어 군사 정권 관계자들을 사법처리하였다.

1997년의 외환위기로 IMF 구제 금유을 요청하였다.

 

2015년11 22일 0시 22분,서울대 병원에서 급성 패혈증과 심부전증 치료를 받던 중 서거하였다.

장례는 대한민국 최초로 5일 기간의  국가장으로 거행되었으며,

장지는 동작구의 국립서울 현충원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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