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와 위화도 회군        작성일자; 2007.07.20.금요일,맑음

 

 

고려 우왕대에 집권 했던 이인임의 보수 귀족 세력은

1388년에 관료들의 원성을 샀고 결국 최영·이성계 등의 무장세력에 의해 제거되었다.

이후 최영과 이성계는 각각 시중·수시중에 올라 정치를 주도했다.

그런데 중국을 통일한 명나라가 한때 철령 이북이 원나라의 영토였다는 이유로 무리하게 반환을 요구하여 서로 대립했다.

이에 최영은 명과의 실력 대결을 주창하여 우선 전진 기지를 확보하기 위해 요동을 점령함으로써 명의 압력을 배제하고자 했다.

 

1388년 최영·이성계 등의 무장 세력은 귀족 세력을 제거하고 정치를 주도했는데,

명나라의 철령 이북의 반환요구를 둘러싸고 반목하였다.

최영은 요동정벌로 명의 압력을 배제하고자 했고 이성계는 4불가론을 내세워 이에 반대하였다.

4불가론은 군량미,군사 규모에서 명과 차이가 크다는 점,

농번기의 전쟁은 농민의 호응을 받기가 어렵다는 점,

왜구의 침입이 증대할 것이라는 점,

장마철은 시기상으로 전투에 불리하여 군사들이 희생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최영과 우왕은 요동 공격을 감행했고,

이성계는 1388년 5월 위화도에 이르렀을 때 회군을 단행하여

최영, 우왕을 몰아내고 창왕,공양왕을 추대하였다.

이 사건은 이성계 파가 권력을 장악하고 조선국의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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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조 이자춘       작성일자; 2007.06.12.화요일,맑음

 

생졸;1315년~1361년1월

본관; 전주 

능; 함경남도 함흥시에 위치한 정릉릉,의혜왕후의 화릉도 같은 묘역에 위치해 있다.

 

이자춘은 원나라의 지방 관직인 천호로 있다가 1356년 고려가 쌍성 총관부를 탈환할 때 고려에 귀순하여

고려의 병마사,평정사 등을 역임하였다.

사후 문하시중에 추증되었고 조선 건국 후 아들 이성계에 의해 환왕으로 추존되었다.

 

이자춘은 형인 이자흥 마저 연이어 사망하자 어린 조카인 이교주를 대신하여 원나라의 천호를 세습받아

재직하였고,원나라의 후원에 힘입어 이복 동생의 외척, 조씨 가문과의 대결에서 승리하여 습직했으나,

그 후 원나라의 정책에 의하여 타격을 받게 됨에 따라 점차 원나라에 대하여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

이자춘은 원나라의 다루가치(원의 관직)를 지냈다.

그러나 고려 공민왕이 쌍성 총성총관부를 공격할 때 이에 동조하여 왕의 신임을 얻었다.

이때 원,명나라 교체기에 원나라의 세력이 약화된 것을 기회로 반원 정책을 추진하던 고려 공민왕은

동북면쌍성총관부와 연결되어 있는 친원 사대파인 기씨 세력을 제거하기 위하여 이 지역에 유이민을 기반으로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이자춘를 끌어들일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이를 알아차린 이자춘은 1335년,고려에 투항하여 소부윤의 관직에 제수되었다.

 

이듬해 유친우와 더불어 동북면을 협공하게 하여 쉽게 이 지역을 점령하여 원의 간섭기 이래 빼앗겼던 동북 영토를

99년 만에 회수하였다.

이로써 그는 그동안 뿌리깊게 대립하였던 친원 세력인 조소생을 제거하였다.

이때의 전공으로 저택이 하사 되었고 오랫동안 그의 기반이었던 동북면 떠나 개경에 머물게 되었다.

이후 개경에 머무른 지 1년 만에 그가 동북면으로 돌아 가려하자 고려의 조정을 배반할 것임을 들어 그의

동북면 귀환을 대신들이 반대하였으나,공민왕은 그가 아니면 동북면을 안정시킬 수 없다고 판단하여 

병마사로 임명하여,그는 다시 영흥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4년 뒤인 1361년에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사후 문하시중에 증직 되었고,

조선 건국 후 아들인 태조에 의해 환왕으로 추촌되었다.

 

 

 

 

 

 제1,2차 왕자의난      작성일자; 2007.07.19.목요일,맑음

 

조선은 개국한지 10년도 되지 않아 두차례의 왕자의 난을 겪게된다.

1398년의 제1차와 1400년의 제2차 왕자의 난이다.

개국 공신과 왕자들을 하루 아침에 적과 동지로 갈라 놓았고,

군권과 신권이 국정 주도권을 놓고 충돌하고,

왕자들의 왕위 계승권을 서로 차지하기 위한 골육상쟁의 혈전을 벌였다.

 

 그 첫번째가 1398년8월25일에 일어난 제1차 왕자의 난이다.   

태조 이성계의  다섯번째 아들인 이방원을 비롯한 왕자들이 사병을 동원하여    정도전,남은,심효생 등 반대파 세력을 불의에 습격하여 살해하고,   세자 방석과 방번(계비 신덕왕후 강씨 소생의 두 아들)을 죽인 사건이다.    이 사건을 '제1차 왕자의 난' '방원의 난' 혹은 '무인정사' '정도전의 난'이라고도 한다.진법 훈련 강화를 내세우며 병권 집중 운동을 벌여오던 정도전은  왕족 들이 거느리고 있던 사병을 해체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정도전,남은,심효생 등이 태조의 병세가 위독하다고 속이고 왕자들을 궁중으로 불러 들인    한씨 소생의 왕자들을 살육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밀모설이다.    방원은 방간(4째) 등 형제들과 함께 사병을 동원해 정도전 일파를 습격해 살해하고,    세자 방석은 폐위하여 귀양 보냈다가 방석의 방번과 함께 죽여버렸다.    이방원은 정도전에게 병권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를 제거했지만,   자신이 권력을 잡자 세력 강화를 위해서 왕족 들의 사병을 혁파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훗날 이것이 '제2차 왕자의 난'을 유발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그 두번째가 1400년 정종 2년에 일어난 제2차 왕자의 난이다. 1398년에 일어난 1차 왕자의 난은 정도전 일파 타파와 왕자를 살해하는 왕권 다툼의 사건이라고 본다면, 2차 또한 왕권 다툼의 난이다.제2차 왕자의 난을 '방간의 난,'박포의 난'이라고도 한다. 제1차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실권을 잡은 이 방원은사병을 거느린 형제가 여럿 있고 그들의 세력 또한 적지 않았으므로 이방원으로서도 이들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어 항상 그들을 견제하여왔다.자신이 권력을 잡자 세력 강화를 위해서 왕족 들의 사병을 없앨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1차 왕자의 난 때 공을 세운 형제인 이방간(이성계 4째) 역시 세력은 이방원에는 못미치지만 항상 왕위를 계승하려는 야심과 호기가 있었으므로 시기심과 불만에 가득 차 있었다.

이러한 때 마침 지중추부사인 박포의 밀고가 있었다.

박포는 제1차 왕자의 난 때 정도전 등이 이방원을 제거하려 한다고 밀고하는 등 난의 성공에 공이 많았다. 그러나 일등공신에 오르지 못해 불평하다가 죽주(지금의 영동)로 귀양갔다.

이에 불만을 품고 있던 중 이방간이 이방원에 대해 불평하자 박포는 이방원이 장차 이방간을 죽이려 한다고 거짓 밀고하여 이방간의 거병을 선동했다.

이방간의 사병과 이방원의 사병이 개성 시내에서 치열한 시가전을 벌였으나 두 사람은 체포되어,

이방간은 유배되고,박포는 사형당했다.

이로써 이방원을 반대하는 세력은 거의 소멸되었고 이방원의 왕세제 책립은 굳건하게되었다.

 

2차 왕자의 난이 평정된 후 이방원의 심복인 하륜의 주청으로 정종은 태조의 허락을 얻어

1400년2월 이방원을 왕세제로 책봉하였고,

이어 11월 왕위를 이방원에게 물려주니 그가 제3대 태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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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 정도전(鄭道傳)        작성일자; 2007.07.19.목요일,맑음

 

정도전; 고려 말과 조선 초의 문신으로 유학자인 동시에 혁명가다. 

생졸; 1342(충혜왕)∼1398(태조7년).57세

출생지; 충북 단양

호; 삼봉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건립한 정도전은

1342년,고려 시대 형부상서를 지낸 아버지 정윤경과 영주 우씨인 어머니 사이에서  맏아들로

  충북 단양에서 출생하여,1347년에서 1348년까지 경북 영주에서 1년간 잠시 유년기를 보낸 뒤

  양주 삼각산에서 성장하였다고 전해진다.

  유년기 시절 풍기 진중길의 사위 최림을 통해 기초 학문을 배우고,

  정도전 아버지 정운경이 중앙으로 관직을 옮김에 따라 개경으로 이주 한 후 이제현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그는 아버지 정운경과 이색의 아버지 이곡과는 두터운 친교가 있었기 때문에 이곡의 아들 이색을 만나

  가깝게 지낼 수 있었으며,

1360년, 진사시에 급제한 후 성균관 입학하여 대사성인 성균박사 이색을 만나 성리학에 대해 연구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성리학적 이념과 사상을 심층 이해하게 되었고 그 외에도 맹자의 성선설과 역성 혁명론에

  주목하였다. 그러나, 부패한 사회의 현실을 보면서 맹자의 성선설에는 다소 회의적인 견해를 품게 되었다.

  이때 그와 함께 공부했던 이들로는 포은 정몽주,박의중,윤소중,이존오,김구용,김제안,박의중,설장수,

  박상충,및 5년 연하의 이숭인과 하륜,10년 연하의 권근 등이 있었는데 모두 당대 최고의 문인들이었다.

  정도전은 성균관에서 경사(經史)를 강론하였는데 특히 문장과 성리학에 능하였다.

 

대사성인 이색은 백이정,이제현,권보,안향 등의 학통을 계승했는데,

이제현은 백이정의 문인이자 권보의 사위로 28살 때 원나라에 가서 공부하고 돌아와 성리학을 이루었다.

그의 학문은 이색으로 이어졌다.

정몽주,이숭인,권근 등 고려 말의 대표적 성리학자들은 대부분 이색의 문하에서 배출된 인물들이다.

당시 그는 권문세족들의 전횡 못지않게 불교는 국가 경제를 저해하고 민생을 황폐하게 하는 해악으로

보게 되었다.

이는 사원경제의 팽창과 타락, 백성이 불교에 귀의함으로 인한 조세수입의 궁핍과 부역의 징발 부재로 나타난

국가 경영 존립의 위기에서 출발한 것이다.

 따라서 개인의 삶조차 기약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사후 세계를 논한다는 것은 공허한 생각이라는

 공자의 의견에 강하게 동조하게 된다.

이후 불교가 국가에 미치는 해악에 대한 비판을 강력히 주장하였으며 만년에 '불씨잡변'으로 집성하게 되었다.

특히 정도전은 동문수학한 동료들 중 정몽주와 마음이 맞아 그가 말한 부패한 사회를 개혁하고 권문세족으로

부터 농민들을 해방시켜야 된다는 사상에 정몽주는 깊이 감격하고 공조하였다.

이후 정몽주와는 오랜 친구로 청소년기때부터 권문세족과 외척의 발호로 부패한 고려 사회를 성리학적

이상향으로 개혁해야 된다는 사상을 품고 사상적,정치적 동지로서 협력하였으나 뒤에 조선 개국과 관련하여

정적으로 정몽주와는 첨예하게 대립하게 되었다.

아버지인 정운경 슬하에서 성장한 정도전은 외가와 관련된 신분에 얽힌 문제 때문에 세인의 따가운 눈총이

항상 따라 다니고 있었다.

고려 공양왕 때 부터 정도전의 출신을 부정하고,파계가 밝지 못하다면서 김진양,이확,이래,이감,권홍,유기

등이 정도전의 처벌을 주장하였다.

정도전 뿐만 아니라,조준,남은,윤소종,남재,조박 등 이성계 일파를 한꺼번에 공격했는데,

정도전에 대해서만 집안을 문제 삼았다.

조선 왕조에 들어와서도 정도전의 외가 쪽에 대해서는 계속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정도전의 외할아버지인 우연의 장인 김전은 일찍이 중이 되었다.

김전은 수이라는 종의 아내와 딸 하나를 낳았는데,이 여자가 정도전의 외할머니다.

우현보의 자손은 김전과 인척으로서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정도전이 처음에 벼슬길에 오를 때 대간에서 신분증을 지연시키자, 정도전은 우현보의 자손이 소문을

퍼뜨려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원한을 품었다.

그러다가 뜻을 이루게 되자 우현보에게 죄를 만들어 황거정 등으로 하여금 세 아들을 죽이게 하였다.

정도전의 외할아버지는 우연 이라는 사람이고,외할머니는 김전이라는 승려가 자신의 종의 아내와

관계를 맺어 낳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단양 출신의 유학자인 우현보의 세 아들(홍수,홍득,홍명으로써 고려말에 모두 관리의

고신을 취급하는 대간의 직책을 맡고 있던 인물) 이 세상에 퍼뜨리고 정도전이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를 때 고신을 선뜻 내주지 않았으므로 정도전이 원한을 품고 있다가 개국 뒤에 우현보의 세 아들에게

보복을 했다는 것이다.

정도전이 벼슬길에 나아갈 당시에 이들은 나이가 어려 직접 정도전의 고신을 취급한 것은 아니었지만,

대간들에게 소문을 퍼뜨릴 수 있는 나이에 있었던 것이다.

 

 

 

 

정도전의 출생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우현보의 족인(族人)에 김전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일찍이 중이 되었는데,자기의 종인 수이의 아내와 몰래 정을 통하여 딸 하나를 낳았다.

김전의 족인들은 모두 수이의 딸이라고 말하였으나,김전은 홀로 자기의 딸이라고 주장하면서 은밀히

그 딸을 사랑하였다.

뒤에 김전은 환속하여 수이를 내쫓고 수이의 처를 빼앗아 자기의 아내로 삼았다.

그리고 그 딸을 우연에게 시집보내고 노비와 전택을 모두 주었다.

우연은 딸 하나를 낳아서 정도전의 아버지 정운경에게 시집보냈다.

정운경은 벼슬을 하여 관직이 형부상서에까지 올랐으며 아들 셋을 두었는데 정도전이 바로 그 맏아들이다.

 정도전은 처음에 벼슬길에 오를 때 우현보의 아들들이 모두 정도전을 경멸하였고,

정도전의 벼슬이 승진할 때마다 대성(臺省, 사헌부)에서 고신에 서경(署經,사인)을 하지 않았다.

정도전은 우현보의 자제들이 그렇게 하였다고 생각하고 분하고 원통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공양왕이 등극하여 우흥수의 아들 우성범이 왕의 사위가 되자 정도전은 우성범 등이 세를 타고

자신의 근원을 밝힐까 두려워 우현보 집안을 모함하는 일을 꾀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우연이 두 아내를 가졌다고 해석하면 의문은 간단히 풀린다.

아마도 차씨는 첫째 부인이고, 김씨는 둘째 부인인 것으로 보인다.

차원부는 조선개국을 반대한 인물인 까닭에 정도전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갖지 않았고,

따라서 정도전의 출생과 관련한 약점을 세상에 폭로하기 위해서 그의 출생에 관한 기록을 족보에 남긴

것으로 보인다.

 

한편 충청북도 단양지방에는 예로부터 정도전의 출생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정운경이 젊었을 때 어느 관상가를 만났는데, 관상가는 정운경이 10년 뒤에 결혼하면 재상이 될 아이를

얻을 수 있다고 예언하였다.

이 말을 믿은 정운경은 10년간 금강산에 들어가 수양하고 고향인 봉화로 돌아오던 길에 단양 삼봉에

이르러 어느 초가에서 유숙하게 되었다.

정운경은 이곳에서 우씨 여자를 만나 정을 나누게 되었고,그렇게 낳은 아이가 곧 정도전이라는 것이다.

그는 과연 관상가의 예언대로 훗날 재상이 되었다.

정도전이 자신의 호를 삼봉(三峰)이라고 한 것도 단양 삼봉을 가리키는 것이고,도전(道傳)이라는 이름은

길에서 얻었다는 뜻이다.

단양 지방에 내려오는 위 전설은 아마도 정도전에게 보복을 당한 단양 우씨 집안이나 후세인들이 사실을

과장하여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 이야기에는 진실과 거짓이 함께 섞여 있다.

정운경이 금강산을 갔다는 이야기는 사실에 맞는 것 같다.

그는 젊은 시절에 이곡과 함께 동방(관동지방)을 여행했다는 기록이 정도전이 쓴 '정운경행장'에 수록되어 있다.

교우 관계가 인연이 되어,이곡의 아들 이 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정몽주·박상충·박의중.이숭인·이존오·

김구용·김제안·윤소종 등과 교유했으며,

1360년(공민왕 9), 성균시에 합격하고,

  2년 후에 동 진사시에 합격하여 충주사록·전교 주부·통례문지후를 역임하였다.

문인이면서 무(武)를 겸비한 정도전은 성격이 호방해 혁명가적 소질을 지녔으며,총민해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군서를 읽어 의론이 정연했다 한다.개국 과정에서 자신의 위치를 한나라 장량에 비유하면서, 한고조(유방)가 장량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장량이 한고조를 이용했다고 하면서 실질적인 개국의 주역은 자신이라고 믿었다.아버지로부터 노약 노비 약간 명을 상속받았을 뿐, 오랫동안 유배·유랑 생활을 보내면서 곤궁에 시달렸다.더욱이, 부계 혈통은 향리의 후예로서 아버지 때에 이르러 비로소 중앙 관료의 벼슬다운 벼슬을 했으며,어머니와 아내가 모두 연안 차씨 였다.특히 모계에 노비의 피가 섞여 있었다.이러한 혈통 때문에 구가세족이나 명분을 중요시하는 성리학자들로 부터 백안시 당하는 경우가 많았고,조선시대에도 3노가의 하나라는 세인의 평을 받았다. 그와 건국 사업을 함께 한 조영규·함부림 등 개국공신과 태종 때의 중신 하륜 역시 연안 차씨의 외척으로서, 조선 개국에는 신분적 하자가 큰 인물들이 적극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그가 청·장년의 시기인 고려 말기는 왜구·홍건적의 침공으로 국내가 어수선했고, 안으로는 구가 세족의 횡포로 정치 기강이 무너지고 민생이 곤핍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9년간의 시련에 찬 유배·유랑 생활은 그로 하여금 애국적이며 애민적인 의식을 깊게 만들었으며 그의 역성 혁명 운동은 이러한 개혁의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된다.

그의 개혁 운동이나 그에 수반된 왕조 건국 사업은 단순한 정치적 실천 운동으로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고 제도로서 정착시켜 사상·제도상으로 조선의 기초를 놓았다는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발견된다. 1370년, 성균관 박사로 있으면서 정몽주 등 교관과 매일같이 명륜당에서 성리학을 수업, 강론했으며, 5년간 전선(인사 행정)을 관장하였다. 1375년(우왕 1) ,권신 이인임·경복흥 등의 친원 배명 정책에 반대해 북원 사신을 맞이하는 문제로 권신 세력과 맞서다가 전라도 나주목 회진현 관하의 거평부곡에 유배되었다.377년에 풀려나서 4년간 고향에 있다가 삼각산 밑에 초려를 짓고 후학을 가르쳤으나,부평으로,김포로 이사하였다. 1383년 ,9년간에 걸친 간고한 유배·유랑 생활을 청산하고,

당시 동북면도 지휘사로 있던 이성계를 함주 막사로 찾아가서 그와 인연을 맺기 시작하였다.

  정몽주의 서장관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 와서 ,이성계의 천거로 성균관 대사성으로 승진하였다.

1388년6월에 위화도회군으로 이성계 일파가 실권을 장악하자 밀직부사로 승진해 조준 등과 함께

전제 개혁안을 적극 건의하고, 조민수 등 구세력을 제거해 조선 건국의 기초를 닦았다.

1389년, 이성계·심덕부·지용기·정몽주·설장수·성석린·조준·박위 등과 모의해 창왕을 폐위하고

공양왕을 옹립해 좌명공신에 봉해지고, 삼사우사·지경연사를 지냈다.

  그 뒤 명나라에 가서 윤이·이초의 무고사건을 해결하고 돌아왔다.

1391년, 삼군도 총제부 우군총제사가 되어 병권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구세력의 탄핵으로 봉화에 유배되었다가 이듬 해 봄 이성계가 해주에서 사냥중에 낙마한 사건을

  계기로 고려 왕조를 옹호하던 정몽주·김진양·서견 등의 탄핵을 받아

  보주(지금의 예천)의 감옥에 투옥되었다.

  특히 신분적 약점이 많이 거론되었다.

  정몽주가 이방원에 의해 격살되자 유배에서 풀려 나와, 같은 해 7월에 조준·남은 등 50여 명과 함께 이성계를

  추대해 조선 개창의 주역을 담당하였다.

  조선 개국 후 개국1등공신으로 요직을 겸임해 정권과 병권을 한 몸에 안았다.

  같은 해 겨울에 두 번째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394년 6월, 조선경국전과 심기리 3편을 저술했으며,

  한양 천도를 계획, 실천해 수도 경영에 주동적으로 참획하였다.

1396년, 이른바 표전문 문제로 명나라에서 이를 트집잡아 내정을 간섭하자,

  전부터 추진해오던 요동 수복 운동에 박차를 가해 군량미확보, 진법훈련, 사병혁파를 적극 추진하였다.

1396년9월에 진법훈련을 강화하면서 요동 수복 계획을 추진하던 중 이방원의 기습을 받아 희생되었다.

  죄명은 세자 방석에 당부해 종사를 위태롭게 했다는 것이었다.

  이를 공소난·무인난 혹은 제1차 왕자의 난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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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 제1대 태조 이성계 이야기          작성일자; 2017.07.19.목요일,맑음

 

생졸; 1335-1408.74세

재위기간; 1392-1398.6년

능; 경기도 구리시에 위치한 건원릉

가계도;

부; 환조 이자춘

   모: 의혜왕후 영흥 최씨

       적녀: 정화 공주-용원 부원군 조인벽의 후취 부인으로 하가

       적자: 태조 이성계

   후궁: 정안옹주 김씨

       서자: 의안대군 이화

처; 신의황후 한씨

        진안대군

        영안대군(제2대 정종)

        익안대군

        회안대군

        정안대군(제3대 태종)

        덕안대군

        경신공주

        경선공주

선덕왕후 강씨

        무안대군

        의안대군

        경순공주

   성빈원씨

   정경궁주 유씨

    화의옹주 김씨

        숙신옹주

        찬덕 주씨

        의령옹주

 

 

이성계는 고려 말  요동 정벌을 위해 북진하다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고려의 우왕을 폐하고 정권을 장악 한 뒤 고려 왕조를 무너 뜨리고 조선을 건국한 인물이다.

그는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을 격퇴하여 국내의 혼란을 수습하였고,

사대주의,배불숭유,농본주의를 건국 이념으로 삼아 조선의 제도를 정비했다.

그러나 말년에 아들 간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 다툼으로 고통 받으며 불교에 심취했다.

  

 이성계는 고려 충숙왕 4년인 1335년에 회령에서 이자춘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할아버지 이안사는 전주 지방의 향리로 원나라의 여진족이 살고 있던 간도지방과 함경도인 쌍성총관부로

 이주해 원나라의 지방관이 된 뒤 부터 기반을 닦기 시작 하였다.

 아버지 이자춘도 쌍성 총관부가 있던 화주 지방에서 원나라의 천호라는 지방관을  지냈다.

 고려의 동북면 지역은 특수 지방 행정 구역으로,

 고려의 타처에서 온 유이민과 여진 사람들이 섞여 살던 곳이었으나

 고려 고종 1258년에 몽골(원나라)이 고려에 침입하여 고려 땅인 철령부 화주에 쌍성총관부를 설치하여

 총관과 천호를 조휘와 탁청의 일족에게 세습시켜 100여 년 간 통치하여 왔다.

1356년(공민왕 5년)에  공민왕의 반원 정책으로 추밀원 부사 유인우를 동북면 병마사로 임명하고,

  이 지역에 토착해 있던 조휘의 손자인 조돈과 이자춘의 협력으로  쌍성 총관부를 공격하여 총관 조소생과

  천호 탁도경의 반격을 물리치고 이 지역을 탈환하고 쌍성총관부를 폐지하고 화주목을 설치했다.

  이 지역을 수복하기까지  고려 고종 1258년 부터 공민왕1358년 까지 근100년이 걸렸다.

  이성계의 집안은 이때부터 고려 중앙 정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1361년,이성계는 '박의의 난'을 평정하고, 

1361년10월(공민왕 때),독로강 만호인 박의는 고려를 배반하고 천호 임자부와 김천룡을 죽였다.

  공민왕은 형부상서 김진에게 토벌케 했으나 김진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자

  당시 동북면 상만호 이성계로 하여금 1.500명의 가병으로 김진을 지원하도록 지시했다.

  박의는 이미 강계로 도망갔으나 이성계의 추격을 받아 박의 이하 그 세력은 궤멸되고 말았다.

 기록상 남아 있는 장수로써 이성계의 첫 출진이  바로 '박의의 난'을 평정 한 것이다.

1362년, 이성계는 홍건적에게 함락된 개경을 탈환하고 원나라의 장수 나하추와의 전투에서 승리했다.

1364년, 최유가 기황후를 통해 덕흥군을 고려 왕으로 내세우고 요동성의 군사 1만 명을 이끌고 평안도지방을

  침입하자 최영과 함께 이성계가 이끄는 정예 기병1천의 병력을 이끌고 이들을 섬멸했다.

1370년, 원정군을 이끌고 랴오둥까지 가서 원의 잔병을 모아 동녕부를 점령하고 고려를 위협하던 중앙

  조직에서 낭장(중랑장 다섯번째 아래 계급)인  김백안 등을 물리쳤다.

  김백안의 아버지는 중으로 통제원의 비와 간통하여 김백안을 낳았다.

  낭장으로 있다가 뒤에 원나라에 들어가서 대성을 거쳐 평장사가 되었고,

  원나라가 망하자 요심 관리가 되었다. 

1388년,이성계는 수문하시중이 되어 최영과 함께 임견미,염흥방을 주살하고 최영과 함께

  최고 실권자가 되었다.  

  이 시기는 원나라와 명나라가 교체되는 시기로,

  명나라는 원에 남아 있는 구세력들을 물리치고 동쪽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명나라가 철령 이북과 동,서쪽은 원래 원나라의 땅이므로 앞으로도 요동의 관할로 하겠다고

  통보를 해 온 것이다.

  이때 명나라의 철령위 설치 문제로 랴오둥 정벌이 결정되자 ,

  이성계는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공격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데다 농사철에 군사를 모으는 것은 옳지

  않을뿐만 아니라 원정을 틈타 왜구가 침입할 위험도 존재하므로 원정에 반대했으나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최영은 명나라에 맞서 싸워야 한다며 전쟁을 준비했다.

  조정에서는 이성계를 우군 도통사가 되어 좌군 도통사 조민수와 함께 5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위화도까지

  진군하였으나 도중에 이탈하는 군사가 끊이지 않았다.

  또, 때마침 장마철이 시작되어 강물이 불어나 고려의 랴오둥 정벌군은 위화도에서 꼼짝을 하지 못했다. 

  이성계는 우왕에게 회군하기를 청하였으나 거절하였다.

  조민수와 함께 회군하기로 결정하여 회군을 하자 우왕은 도망하고 최영은 항전했으나 체포되어

  고봉현에 유배되었다.

  최영은 합포와 충주로 유배되었다가 공료죄로 개성으로 압송되어 그해 12월에 참수되었다.

  이후 창왕과 공양왕이 왕위를 이었으나  이성계는 우시중이 되어 정치적,군사적 실권자가 되었다.

1390년(공양왕 1), 영삼사사,

1391년,삼군도총제사가 되었으며,

  이 시기에 조준 등의 상소에 따라 전제 개혁을 단행해 사전을 혁파하고 양전 관찰사제 등을 단행하면서

  반대 세력들을 하나둘 제거해 나갔다.

  그러던 중 명나라에서 귀국하는 태자를 마중 나갔던 이성계가 말에서 떨어져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자 정몽주는 이것을 기회로 삼아 조준,정도전,남은 등을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정몽주는 이성계의 병문안을 다녀오다 귀가하던 중에 선죽교에서 이방원이 보낸 조영규에게

  피살 되므로 고려의 마지막 중심인 정몽주는 허물어지고 말았다.

1392년7월, 마침내 이성계는 공양왕을 폐하고 수창궁에서 왕위에 올랐으니 그때 그의 나이 58세였다.

  그는 국호를 ‘조선’으로 정한 뒤 왕씨의 본거지인 '개경'을 버리고 '한양'을 도읍지로 삼았다.

  정도전과 조준을 내세워 궁궐과 도성을 건립하는 한편  토지 제도,재정 제도를 개혁하는 등 국가 제도 전반을

  개혁하는 동시에 노비 변정 사업을 실시했다.

  인사 제도를 정비해 서리 출신의 관료 등용을 제한하고 지방의 사족들에게 문호를 넓혔다.

 성균관과 향교도 정비하고 농민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 의창제를 복구했다.

  군현제도 정비하여 도제를 시행하고 도별로 재상급의 관찰사가 지방의 행정을 총괄하게 했다.

  군제에 있어서는 부병제와 무과를 시행하고,전국의 군사 조직에 대한 관리를 강화했다.

  이성계의 이런 조치로 중앙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이 강해지고 왜구의 침입도 잠잠해졌다.


이성계는 외교적으로는 명나라를 종주국으로 삼는 사대주의를 표방하므로써 이때부터 조선은

명나라에 국호와 왕위의 승인을 받는 풍속이 이어져왔다.

또한 고려가 멸망한 원인은 부패한 불교에 있다고 생각하여 숭유배불 정책을 바탕으로 한 유교를

건국 이념으로 삼았다.

경제적으로는 농업을 장려하고 토지를 개척해 농본주의에 의한 신분 제도를 확립했다.

건국 초기 정권은 정도전,조준,남은 등의 개국 공신들이 중심에 있었고,

이색,우현보,권근,하륜,석석린 등의 신진 사류라고 해도 중도-온건파에 속하는 인물들은 유배되었다.

이렇게 정치적,경제적,문화적으로 안정되어 갔던 반면 후계 왕권을 둘러싼 내분은 격렬하게 일어났다.

이성계가 두 번째 부인인 신덕왕후 강씨의 소생인 아들 방석을 세자로 책봉한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첫 번째 부인인 신의왕후 한씨 소생의 소생(방우,방과,방의,방간,방원,방연)의 여섯 아들의 불만을

일으켰다.

특히 조선을 건국하는 데 가장 공이 컸던 방원의 불만은 대단했다.

세자인 방석의 생모인 신덕왕후 강씨는 자신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는 것을 보지 못한 채 위병으로 세상을

떠났 후 강씨의 3년상을 마친 후 이성계는 자리에 눕고 말았다.

이 와중에 정도전 일파가 왕의 전처 소생을 모두 제거 하려하자 이방원은 정도전,남은,심효생 등을

제거하고 이복 동생인 강씨 소생의 방번과 세자 방석,누이의 남편인 이제까지 죽였다.

이것이 제1차 왕자의 난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성계는 어쩔 수 없이 둘째 아들인 방과(훗날의 정종)를 세자로 세웠다.

장남 방우는 고려를 멸망 시킨 아버지를 못마땅하게 생각해 산으로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이듬해 9월,이성계는 방과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후 제2차 왕자의 난까지 터지자 골육 간의 권력 쟁탈전에 환멸을 느끼고 고향인 동북면으로 들어갔다.

이성계는 태종으로 등극한 이방원이 평소 그가 신임하던 성석린을 보내자 마지못해 대궐로 돌아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대궐을 떠나 다시 함흥에서 칩거했다.

그 후 이방원이 보내는 사신마다 모두 잡아 죽이거나 잡아 가두고 보내지 않았는데,

'함흥차사'라는 말은 이 때문에 생겨났다.

그러다가 안변 부사 조사의가 난을 일으키자 이성계는 이방원이 보낸 무학대사를 따라 대궐로 돌아왔다.

이성계는 자식들 간의 불화로 인해 그의 말년은 고뇌와 고통의 시간이었으며,불교에 심취해 궐 안에 절을

짓고 염불을 외우며 살다가 창덕궁 별전에서 죽었다.

그의 나이 74세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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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품계와  관직표       작성일자; 2007.07.19.목요일,맑음

 

                                



 


 계


    관계명


 외명부


위계


 칭


          관직
1 상계 대광
보국숭록대부
정경부인 당상관 대감 부원군,삼정승(,,우의정),
영사,도제조
하계 보국숭록대부
1 상계 숭록대부 ,.우찬성,판사,제조
하계 숭정대부
2 상계 정헌대부   정부인 6조판서,.우참찬,5위도총관,한성판윤
지사,홍문관,대제학,총리영사,제조
하계 사헌대부
2 상계 가청대부 영감 대사헌,동지사,5위부총관,한성좌.우윤,개성유수,
겸사복장,재금위장,상선,제학,관찰사,수어청사,부윤
포도대장,병사,붕군,대장,제조
하계 가선대부
3 상계 통정대부   숙부인 도성지,좌승지,참의,대사간,첨지사,도정,참찬과,부제조,부제학,성균관대사성,
우림위장,훈련원도정,목사,수사,
별장천총종군기사장진영장,병마절도사,
병마수군절도사,장예원 판결사
하계 통훈대부   숙인 당하관   .직제학,상호군.승문원판교,
사옹원제거,통래원 좌통례
3 상계 중직대부   사간,사헌부집의,부정,홍문관전수,성균관 사성,승문원 참교,대호군,도호부사,
사옹원제흥.통례원상원,병마후첨절제사
하계 중훈대부
4 상계 봉정대부   령인   의정부사인,사헌부장령,창수,군수,만호
총문관 예문관 응교,성균관관사예,
예빈시 제검,호군,병마동첨절제
하계 봉열대부
4 상계 조산대부   경력,첨정,한성서윤,제검,호군
하계 조봉대부
5 상계 통덕랑   공인 참상관   검상,지평,이조정랑,조정랑,헌납,전수,
별좌,직강,찬의,교리,문학,전훈,
세자익위사좌익위,우익위,
장예원사의,사직
하계 통선랑
5 상계 승의랑   도사,별좌,고령,서령,부교리,부사직,
,우어사,현령,종사관
하계 승훈랑
6   선교랑   의인   좌랑,주부,정언,감찰,별제,수찬,전적,
교검,사서,사모,사과,.우익찬,시평,
장원,평사
6   선무랑 교수,주부재,부참,부전수,별제,부수찬,
사축,선화,부장,부사과,좌의솔우의솔,
신화,사지,현감,찰방,병마절제도위,
감목관,좌우장사,수문관,종사관
7   무공랑   안인 참하관   주서,찬군,사안,박사,봉교,전율,설서,
,우부솔,사정
7   계공랑   직장,선부,전위,부사안,산사,부전율,
선회,부사정,조기,공제,명률,신과,
.우종사
8   통사랑   서인   사록,부직장,사포,별검,저작.시교,학정,전음,사맹,.우시직,신금
8   승사랑   봉사,훈부,전곡,상문,부사포,계사,공조,부전음,상도,별검,상사,부사맹,이기,
심율,부신금
9   종사랑   유인   임부,사소,산학훈도,부봉사,정자,검각,학록,전승,천문.지리.명과.의학.한학.몽학.왜학.여진훈도,상용,.우세마,율학훈도,신수
9   장사랑   참봉,팽부,부사소,회사,학한,부정자,
부전승,지도,부사용,족기,검율,부신수,
역승,도승,권관,초관,척후,심약,현승,
별장,진사,생원,초시,학생,처사

 

 

                                  조선의 관직과 대한민국 직급 비교

 

                        조선          대한민국
  품              관직 내명부   직급         부별
1 영의정,.우의정,도제조,영사   비 총리급 국무총리
1 .우찬성,판사 귀인 부총리급 부총리,재경부등,
감사원장
2 지사,판서,좌참찬,우참찬,대제학,제조,도총관,한성판윤 소의 장관급 장관,국정원장,
공정위 등,서울시장
차관급 차관,청장,도지사,대장
광역시장,서울부시장
2 동지사,참판,상성,대사헌,부총관,포도대장,내금위장,관찰사,병마절도사 숙의 준차관급 차관보,지방벙원장,
중장
3 참의,대사간,부제학,승지,
첨지사,별장
소용 1급 관리관 실장,부지사,
광역부시장,준장,소장
3 집의,사간,대호군,부장,
첨절제사
숙용 2급 이사관 국장,고등법원부장판사
도 실장,대령
4 사인,장령,용교,호군,별제 소원 3급 부사관 과장.도국장,군수,중령
 
지방법원 부장판사
4 경력,첨정,부호군 숙원
5 정랑,지평,교리,사직 상궁
상의
4급 서기관 고참 계장,도과장,소령
부군수,지방법원 판사
5 도사,판관,현령,판관 상복
상식
6 좌랑,별제 상침
상공
5급 사무관 계장,도계장,시과장,
(),대위
6 주부,교수,부장,종사관 상정
7 박사,사정,참군 전빈, 6급 주사 주무관,도 차관, 시계장
7 직장,부사정 전언 7급 주사보 실무자
8 저작,사맹 전찬
8 봉사,부사명 전등 8급 서기 실무자
9 훈도,사용 주궁
9 참봉,별장 주징 9급 서기보 업무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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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 계보           작성일자; 2007.04.07.토요일,맑음

 

기간; 1392년 부터~1910년 까지,  519년 간

대수; 1대 태조 이성계~27대 순종까지

내용; 왕명및 호,생졸 기간,재위 기간,부인,자식.     

 

                                               조선왕 계보

 

 순위   왕명        생졸      재위기간       부인    자식       비고 


1대


 태조


1335-1408 00년


1392-1398  8년


 신의왕후
 한씨


진안대군


 이방우


 
이성계

 


 


 
 영안대군 이방과  2대 정종


 


 


 


 


 


익안대군


 이방의
          안대군  이방간
          정안대군  이방원
          덕안대군  이방연
          경신공주  
          경선공주  
         신덕왕후
 강씨
무안대군  방번 경녕옹주
(왕씨)
          의안대군  방석 폐세자
          경순공주   
         성빈 원씨
 
         정경궁주
 유씨 
   
         화의웅주
 김씨
숙신옹주   
         찬덕 주씨   의령옹주  
2대 정종  1357-1419   1399-1400  2년  정안왕후
 김씨
   
  이방과      성빈 지씨  덕천군  
           도평군  
         숙의 지씨  의평군   
           선성군  
           임성군  
          함양옹주  
         숙의 기씨  순평군  
           금평군  
         숙의 문씨  종의군  
         숙의 윤씨  수도군   
           임언군  
           석보군  
           장천군  
          인천옹주  
         숙의 이씨  진남군  
         가의궁주
 유씨
 불노   
         시비 기씨  지운군  
         신원미상  덕천옹주  
         신원미상  고성옹주  
         신원미상  전산옹주  
         신원미상  함안옹주  
3대 태종 1367-1422  1401-1418 18년  원경왕후 
 민씨 
 양녕대군  
  이방원        효령대군  
           충녕대군  
           성령대군  
           정순공주  
           경정공주  
          경안공주  
          정선공주  
         효빈 김씨   경년군  
         신빈 신씨  함녕군   
           온녕군  
           군녕군  
          정신옹주  
          정정옹주  
           숙정옹주  
           소신옹주  
           숙영옹주  
           숙경옹주  
           숙근옹주  
         선빈 안씨  혜령군  
           소숙옹주  
          경신옹주  
         의빈 권씨 정혜옹주  
         명빈 권씨    
         소빈 노씨  숙혜옹주  
         숙의 최씨  희령군  
         덕수옹주
 이씨
 후령군   
           숙순옹주  
         후궁 고씨  근녕군  
         후궁 김씨 숙안옹주   
  4대  세종 1397-1450  1418-1450  33년  소현왕후
 심씨 
 문종   
   이 도        수양대군  
           안평대군  
           임영대군  
           광평대군  
           금성대군  
           평원대군  
           영응대군  
           전소공주  
           정의공주  
         영빈 강씨  화의군  
         신빈 김씨  계양군  
           의창군  
           밀성군  
           익현군  
           영해군  
           담양군  
         혜빈 양씨  한남군  
           수춘군  
           영풍군  
         숙빈 이씨 정한옹주  
         상침 송씨 정현옹주  
  5대  문종 1414-1452  1450-1452  2년   현덕왕후
 권씨
 단종  
   이 향        경혜공주  
         귀인 홍씨    
         사칙 양씨  경숙옹주  
  6대  단종  1441-1457 7세 1452-1455  3년   정순왕후
 송씨
   
  이홍위          
  7대  세조 1417-1768 1455-1468 13년  정희왕후
 윤씨
 의경세자  소혜왕후한씨
 인수대비
   이 유        해양대군  8대 예종
           의숙공주  

 

           숙의공주  
         근빈 박씨  덕원군  
           창원군  
  8대  예종 1441-1469 1468-1469  1년  장순왕후
 한씨
 인선대군  
         안순왕후
 한씨
 제안대군  
           현숙공주  
  9대  성종 1457-1494 1469-1494 25년  공혜왕후
 한씨
   
         폐비 윤씨  연산군  10대
         정현왕후
 윤씨
 진성대군  11대 중종
           신숙공주  조졸
         명빈 김씨  무산군  
         귀인 정씨  안양군  
           봉안군  
           정혜옹주  
         귀인 귄씨  정선군  
         귀인 엄씨  공산옹주  
         숙의 하씨  계성군  
         숙의 홍씨  완원군  
           회산군  
           견성군  
           익양군  
           경명군  
           운천군  
           양원군  
           혜숙옹주  
           정순옹주  
           정숙옹주  
         숙의 김씨  희숙옹주  
           경숙옹주  
           희정옹주  
         숙의 김씨  이성군  
           영산군  
           경순옹주  
         숙용 권씨  경희옹주  
10대 연산군 1476-1506 31세 1494-1506 12년  폐비 신씨  폐세자  이황
           창녕대군  
           휘순 공주  
         숙의 이씨  양평군  
           돈수  
         장녹수 (영수)옹주  
11대  중종 1488-1544 1506-1544 38년  단경왕후
 신씨
   
   이 역      장경왕후
 윤씨
 인종  12대
           효혜공주  
         문정왕후
 윤씨
 경원대군  13대 명종
           의혜공주  
           효순공주  
           경헌공주  
           인순공주  
         경빈 박씨  복성군  
           혜순옹주  
           인순옹주  
         희빈 홍씨  금원군  
           봉성군  
         창빈 안씨  영양군  
           덕흥대원군  
           정신옹주  
         숙의홍씨  해안군  
         숙의 이씨  덕양군  
         숙의 나씨    
         숙원 이씨  정순옹주  





 효정옹주


      숙원 김  숙정옹주  
12대  인종 1515-1545 1544-1545  1년  인성왕후    박용의 딸
   이호      귀인 정씨    정유침의 딸
         숙빈 윤씨    윤원량의 딸
         혜빈 정씨    정온의 딸
13대  명종 1534-1567 1545-1567 22년  인순왕후  순회세자  공회빈 윤씨
   이 환      숙빈 이씨    
         경빈 이씨    
         숙의 신씨    
         숙의 정씨    
         숙의 정씨    
         숙의 한씨    
         숙의 신씨    
14대  선조 1522-1608 1567-1608 41년  의인왕후
 박씨
 영창대군  
   이 균      인목대비
 김씨
 정명공주  선조의 큰딸
         공빈 김씨  임해군  
           광해군  15대
         인빈 김씨  의안군  
           신성군  
           정원군 주촌왕 원종
-13대인종
           의창군  
           정신옹주  
           정해옹주  
           정숙옹주  
           정안옹주  
           정휘옹주  
         숙빈 김씨  순화군  
         정빈 민씨  인성군  
           인흥군  
           정인옹주  
           정선옹주  
           정근옹주  
         정빈 홍씨  경창군  
           정정옹주  
         온빈 한씨  흥안군  
           경평군  
           영성군  
          정화옹주  

 

15대 광해군  1575-1641 1608-1623 15년  폐비 유씨  지
(폐세자)
 
     
 숙의 윤씨  옹주  
         숙의 허씨    
         숙의 홍씨    
         숙의 권씨    
         숙의 원씨    
         소용 임씨    
         소용 정씨    
         숙원신씨    
         조씨    
16대  인조 1595-1649 1623-1649 26년  인령왕후
 한씨
 소현세자  
           봉림대군  17대 효종
           인평대군  
           용성대군  
           공주  
         장렬왕후
 조씨
   
         귀인 조씨  숭선군  
           낙선군  
           효명공주  
         귀인 장씨    
         숙의 난씨    
17대  효종 1619-1659 1648-1659 10년  인선왕후
 장씨
 숙신공주  
   이 호        숙안공주  
           숙명공주  
           현종  18대
           숙희공주  
           숙정공주  
           숙경공주  
         안빈 이씨  숙녕공주  
         숙의 김씨    
         숙의정씨    
18대  현종 1641-1674 1659-1674 15년  명성왕후
 김씨
 숙종  19대
           명선공주  
           명혜공주  
           명안공주  
19대  숙 종 1664-1720 1674-1720 46년  인경왕후
 김씨
 딸(조졸)  
   이 순        딸(조졸)  
           딸(조졸)  
         인현왕후
 민씨
   
         인원왕후
 김씨
   
         희빈 장씨  경종  20대
           성수(여)  
         숙빈 최씨  영수(여)  
       
 연잉군  21대 영조
           아들  
         명빈 박씨  연령군  
         영빈 김씨    
         귀인 김씨    
         소의 유씨    
20대  경 종 1688-1724 1720-1724  4년  단의왕후
 심씨
   
   이 균      선의왕후 
 어씨
   
21대  영 조 1694-1776 83세 1724-1776 52년  정성왕후
 서씨
   
   이 금      정순왕후
 김씨
   
         정빈 이씨  효장세자  
           화덕옹주  
           화순옹주  
         영빈 이씨  사도세자  
           화평옹주  
           화협옹주  
           화완옹주  
         귀인 조씨  화유옹주  
         숙의 문씨  화령옹주  
           화길옹주  


  사도세자  경희왕후  의소세손    
     (주촌왕 장조)  (혜경공홍씨)  정조    22대
         청연공주    
         청선공주    
       숙빈 임씨  은언군  상계군 상신군부인 송씨
           이창순  
           이창덕  
           풍계군              
           여동생  
           남 요절 전산군부인 이씨
           이철득  
          전계대원군  
         은신군  남연군  인평대군
 6대손 양자





 





   흥선대원군.
  26대고종



   
 장녀 이씨          



    전계
대원군
 흥녕군           



   
 흥완군



   
 흥인군



 



 흥선대원군



 



 장녀 이씨



 경빈박씨 은전군

22대   정 조 1752-1800 1776-1800 24년  효의왕후
 김씨

 

 이 산

 의빈 성씨  문효세자  조졸




 수빈 박씨  순조  23대




   숙선옹주




 원빈 홍씨
 




 화빈 원씨

23대  순 조 1790-1834 1800-1834 34년  순원왕후
 김씨
 효명세자  신정왕후 조씨
 헌종

 이 공

   명온공주





 복온공주





 덕온공주




 숙의 박씨  영온옹주
24대  헌 종 1827-1849 1834-1849 15년  효현왕후
 김씨






 효정왕후
 홍씨
 공주 조졸




 경빈 김씨

 

         궁인 김씨  딸(옹주)  
25대   철종 1831-1863  1849-1863 14년  철인황후 
 김씨
 아들  
   이원범      귀인 박씨  아들  
         귀인 조씨  아들  
         숙의 방씨  아들  
         숙의 범씨  영혜옹주  박영효
         궁인 이씨    
         궁인 김씨    
         궁인 박씨    
26대   고 종 1852-1919 68세 1863-1907 44년  명성황후
 민씨
 순종   27대왕.

대한제국황제
   이 희      순헌황귀비
 엄씨
 영친왕  이방자
 이진.이구.이원
         귀인 이씨        완친왕    


 


 


 


 


 귀인 장씨


 의친왕


 이건


 


 


 


 


 


 


 이우


 


 


 


 


 


 
 이방


 


 


 


 


 


 
 이창
             이택
             이곤
             이광
             이현
             이갑
             이석
             이환
             이정
             이영
             이진
             이찬
             이숙
             이중
             이장
             이용
             이현
             이민
         귀인 이씨  이육  
         귀인 정씨  이은  
         귀인 양씨  덕혜옹주  
27대   순종      상궁 김씨    
   이척      상공 김씨    
27대  순종 1753-1801 1874-1926 3년  순명효 민씨    
   이척      순정효 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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