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축구 연맹                     2019.12.27.금요일,맑음      

국제 축구 연맹(FIFA;Fede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

축구와 풋살,비치사커 종목을 총괄하는 국제 기구로,

스위스 취리히에 본부를 두고 있다.

4년마다 열리는 FIFA 월드컵을 비롯해서 여러 국제 대회를 운영하고 있다.


1904년5월21일, 

축구의 인기가 영국에서 해외로 확산되면서 경기 종목을 관리할 조직체의 필요성이 대두

되어 FIFA가 프랑스 파리에서 결성되었다.

1906년,

FIFA가 주관한 최초의 국제 경기는 열렸는데 성공적이지 못하여,

초대 회장이었던 '로베르 게링'이 물러나는 계기가 되었고,

잉글랜드 출신의 '대니엘 벌리 울풀'이 새 회장이 된다.

1908년,두번째 열린 런던 올림픽이었는데,여덟 팀이 참가한 축구 대회는 성공적이었다.

1909년,남아프리카 공화국이 가입하면서 처음으로 가맹국이 유럽을 벗어났고

1912년,아르헨티나와 칠레가,

1913년,캐나다와 미국이 가입하게되어 대서양으로 세력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

1914년7월28일 부터 1948년11월11일까지 일어난 제1차 세계 대전은

FIFA의 발전에 큰 타격을 주었다.

국제적인 교류는 미미한 수준으로 떨어졌으며,많은 축구선수들이 전장에 나가 희생되기도

했으며,국제 경기는 정상적으로 치를 수 없었다.

전쟁 이후,

회장인 '대니엘 벌리 울풀'이 죽고 부회장이었던 네덜란드인 카를 히르츠만이 일시적으로

FIFA를 맡게 되었다.

전쟁을 이유로 홈 네이션 4개국(잉글랜드,스코트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이 FIFA를 탈퇴

하면서 FIFA는 큰 위기에 봉착했고 회원국 수는 20개 국으로 줄어들었다.

위기에 빠진 FIFA를 재건한 사람은 48세의 프랑스인 '쥘 리메'였다.

회장으로 재임한 33년 동안 제2차 세계대전에도 불구하고 FIFA는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1930년,최초의 월드컵이 우루과이에서 열렸으며 회원국들은 다시 증가했다.

1946년,홈 네이션들도 FIFA에 재가입하였다.

1954년,

제5회 스위스 대회에는 회원국 수가 85개국까지 늘어났고 더욱 국제적인 조직으로 발전할 수 있었으며 이 대회 직후 80세의 '쥘 리메'는 사임하였다.

당시 월드 컵 우승 팀에게 주어지는 우승컵의 이름은 '쥘 리메 컵'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신생 독립국들이 FIFA에 가입하면서 회원국의 수는 계속 늘어났다.

당시 독립국들은 UN 보다 FIFA에 먼저 가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축구 경기를 TV에서 중계하게 되면서,

축구는 좀 더 세계적인 스포츠로 발전했고 FIFA의 인지도도 같이 높아졌다.

이전까지 FIFA는 4년에 한 번 열리는 월드컵을 통해 수익을 얻을 수밖에 없었는데,

TV 중계는 FIFA의 재정에 큰 도움이 되었다.

6대 회장인  '스탠리 루스 경'은 여러 사업을 통해 FIFA의 재정 안정에 큰 기여를 하였다.

이러한 공로로 루스경은 1974년 FIFA 명예회장으로 추대되었다.

다음 회장은 브라질 출신의 '주앙 아벨란제' 박사였다.

아벨란제 회장은 다소 보수적이었던 FIFA를 보다 능동적인 조직으로 탈바꿈시켰다.

스위스 취리히의 작은 건물에서 12명의 직원이 일하던 FIFA는 그 열 배가 넘는 조직으로

확장되었고 보다 많은 수익을 얻는 기관으로 발전했다.

FIFA의 상업화에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지만,조직 안정성은 결과적으로 산하 연맹들과

회원국들에게 이익이 되었고

1998년까지 아벨란제는 24년간 장기 집권을 할 수 있었다.

1998년6월8일,

스위스 출신의 '제프 블라터'가 새로운 회장으로 취임하면서2016년까지 18년간 장기 집권을 하였으나 부패 혐의로 미국 연방검찰의 체포 위협 때문에 회장직을 사임하였다.

2016년2월,

스위스 출신의 유럽축구연맹 사무총장 지아니 인판티노가가 새로운 총장으로 취임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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