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의 꿈과 석왕사          작성일자; 2007.11.11.일요일,맑음

 

장군 시절 태조 이성계는 부패해 가는 고려 왕조를 탄식하며 팔도강산을 돌며 무예를 익히고 명산 대찰을 찾아 가호를

빌었다.

그가 함경도 안변 땅에 머물던 어느 날 밤 이성계는 참으로 묘한 꿈을 몇 가지나 꾸었다.

이튿날 새벽 눈을 뜬 이성계는 간밤 꿈자리가 석연치 않아 꿈을 되새겨 봤지만 무슨 뜻인지 알 길이 없어 해몽을 잘한다는

노파를 찾아가 해몽을 부탁한다.

 '대장부가 받은 꿈의 계시를 어찌 미천한 아낙이 함부로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서쪽으로 40리쯤 들어가면 설봉산이 있고 그 산허리 토굴에 공부하신 지 10여 년 동안 한 번도 굴 밖으로 나오지

않은 도인 한 분이 살고 계십오니 그 도인 스님께 가면 잘 풀어 주실 것입니다.'

이성계는 그 길로 설봉산 도인 스님을 찾아가 삼배를 올린 이성계는 찾아온 사연을 밝혔다.

  '어느 시골 마을을 지나는데 온 고을 닭들이 일제히 울어 대더니 집집 마다에서 방아 찧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는 하늘에서 꽃이 마치 비오듯 떨어져 내렸습니다.

다시 또 꿈은 이어져 저는 어느 집 헛간에 들어가서 서까래 세 개를 등에 짊어지고 나오다가 거울 깨지는 소리에

문득 꿈을 깨게 됐습니다.

무슨 불길한 징조는 아닌지요?

'참으로 그런 꿈을 꾸었다면 함부로 발설해선 안될 꿈입니다.'

스님은 은밀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내 말을 잘 들으시오. 그 꿈은 아주 길몽입니다.

마을의 닭들이 일제히 울어댄 것은 '꼬끼오 꼬끼오' 한 것이니 이는 반드시 고귀한 자리에 오른다는 뜻이며,

방아찧는 소리는 귀하게 될 것을 축하하는 의미입니다.

또 헌 곳간에서 서까래 세 개를 가로졌으니 그 모양은 마치 임금 '왕'자와 같지 않습니까.'

스님의 말을 들은 이성계는 흥분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으며 어느새 상기된 얼굴에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스님, 그럼 꽃이 떨어지고 거울이 깨진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스님은 말없이 시 한 수를 적어 내놓았다.

"花落能成寶 鏡破豈無聲"-꽃이 떨어 졌으니 열매가 맺힐 것이요 거울이 깨졌으니 소리가 나지 않겠는가.

스님은 다시 이성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대 얼굴엔 군왕의 기상이 가득하오. 허나 아직 겁기(劫氣)가 다 벗어지지 못했소.

성현에게 기도를 올리고 공덕을 지어야 일이 성취될 것이오.

앞으로 3년은 더 기다려야 할 터이니 그 동안 이곳에 절을 세우고 오백 나한을 모셔 기도를 잘 올리도록 하시오.'

그리고 이 일은 나만 알고 비밀을 지킬 터이니 장군도 꿈 이야기를 입밖에 내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하오.'

스님께 스승의 예를 올리고 물러난 이성계는 기도 올리는 간절한 마음으로 안변 땅에 절을 세웠다.

후일 임금 왕 자를 해석했다 하여 '석왕사'라 불렀다.

그 후 이성계는 오백 나한을 모시기 위해 석왕사 경내에 응진전을 건립했다.

때마침 함경도 길주에 있는 광적사가 병화로 폐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성계는

그 절에 방치된 대장경과 오백 나한상을 석왕사로 모셔 오기로 했다.

길주에서 원산포까지 배로 옮겼으나

원산서 석왕사까지는 이성계가 직접 무거운 돌나한님을 한 분씩 들에 업어 정성스럽게 모셨다.

이렇게 498상을 옮기고 마지막 두 분이 남게 되자 그는 조금 귀찮은 생각이 들었는지 두 분을 한꺼번에 옮겨 모셨다.

다음 날 아침 기도를 드리고 나서 살펴보니 이게 웬일인가.

간밤에 분명히 오백 나한님을 다 모셨는데 맨 나중에 모셔온 존상 한분이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았다.

놀란 이성계는 사방을 두루 찾았으나 보아지 않자 단념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그 존상이 나타날 줄이야.

 '그대의 신심이 그렇게 여일치 못해서야 되겠는가?

한 분씩 업어 오시다가 나만 덧붙여 업어가다니.

나는 그렇게 정성이 부족한 푸대접을 받기가 싫네.

해서 묘향산 비로암에 와 있으니 그리 알게.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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