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2대왕 정종의 묘 후릉(厚陵) 작성일자; 2008.10.26.수요일,맑음
후릉(厚陵)은 조선의 제2대 왕 정종(定宗 1357~1419)과 정종의 비(妃) 정안왕후(1355~1412)의
쌍릉으로 태종 12년인 1412년 공조판서 박자청(朴子靑 1357~1423)의 감독 하에 조성되었다고 하는데,
고려 공민왕릉을 모방하여 만든 능으로 태종과 원경왕후 능인 헌능과 아주 유사하다고 한다.
조선의 왕릉 중에는 태조의 비인 신의왕후의 제릉과 더불어 북한에 있에 ,
안타깝게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지 못했다.
조선 왕릉 가운데 최초로 왕과 왕비의 봉분을 나란히 난간석으로 연결한 쌍릉의 형식을 취한 능이다.
태종 12년인 1412년 6월 25일 정안왕후가 58세의 나이로 승하하여 이곳에 안장되었으나 능호는 없었는데
그로부터, 7년 뒤 정종이 승하하자 묻히기 한달 전에 비로서 능호를 후릉이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이후 후릉은 개성부에서 관리나 수리를 맡았으며 개경에 있는 흥교사를 원찰로 삼고 땅을 하사하고
능을 보호하도록 지시를 하였다고 하는데 ,
의궤에 의하면,
흥교사는 현종 때까지 있었으나 후릉지에 원찰이 백룡사로 바뀐 것으로 보면 조선후기나 구한말 흥교사가 없어진 듯하다는
견해이다.
정종(1357년-1419년,재위:1398년-1400년)은 조선의 제2대 임금으로 방과(芳果)다.
재위하는 동안 아우인 4대 왕인 태종(이방원)이 왕세제 신분으로 대리청정을 하였다.
선양한 뒤에는 아우 태종이 인문공예 상왕으로 호를 올렸고,
사후 조선 중후기까지 시호인 공정대왕으로 불리다가 숙종 때 정식으로 묘호와 시호를 올려 정종이다.
태조 6년인(1398,42세),음력 8월에 동생 방원이 32세 나이로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본래 왕위에
뜻이 없었던 영안대군은 왕세자가 되기를 극구 사양하였으나,태조의 장자 방우가 이미 사망하였기 때문에 왕세자에
올랐다가 1개월 뒤인 1398년 음력 9월에 태조의 양위로 조선 제2대 국왕으로 등극하였다.
정종은 일찍이 아버지를 따라 전정터를 누빈 군인 출신으로 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켰을 때에도 열정적
이었으며 또한 직접적으로 방원이 왕위에 오를 것을 추천하는 등 왕위에 관한 관심은 없었다고 전해진다.
정안왕후 김씨는 정종의 비다.
월성 부원군 김천서의 딸로 본관은 경주이다.
조선 최초의 세자빈,정비,왕비,왕대비이기도 하다.
1398년 남편 방과가 세자가 되자 조선 최초로 세자빈으로 책봉되었으며,
같은 해 방과가 왕위에 등극하면서 조선 최초의 왕비가 되었고 ,
2년 뒤인 1400년에 남편 정종이 세제로 있던 동생 방원에게 양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나자 조선 최초의 왕대비가 되었으니
순덕 왕대비라는 존호를 받았다.
1412년에 58세로 사망하였으며 후에 남편 정종도 이곳에 묻혀 쌍릉으로 조성되었다.
후릉은 조선 제2대 왕인 정종과 정안왕후가 안장된 쌍릉으로 경기도 개풍군 흥교면 흥교리 백마산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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