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주의 민족전선 2019.11.14.목요일,맑음
1946년1월19일 발기되어 2월19일에 결성을 본 민주주의 민족전선은
1946년2월8일에 발족한 '대한 독립 독촉국민회'(독촉 국민회)와 '한국 민주당 등 우익계 세력과 대항하여
정식으로 국민 대표기관이 구성될 때까지 과도적 임시국회의 기능을 맡아 과도 정부 수립을 담당하며,
미.소 공동위원회의 임시 정부 조직 사업에 있어서 남한의 유일한 민족 대표로서의 참여를 의도하여
조선공산당과 조선인민당에 의하여 결성한 남한의 모든 좌익계 정당 및 사회 단체의 총집결체이다.
의장에 여운형,허헌,박헌영,김원봉,백남운,
부의장에 백용희,홍남표,이여성,김성숙,장건상,,윤기섭,성주식,정노식,유영준,한빈이 선출되었고,
상임위원으로는 의장단을 포함하여 73명, 중앙위원은 전국에서 305명이 선출되었다.
사무국장 이강국,조직부장은 홍덕유,선전부장은 김오성,문화부장은 이태준,재정부장은 정노식,기획부장
최익한,외교부장 강진이 맡았다.
강령은 조선 공산당의 주장과 같았으며,
1946년2월8일에 발족한 '북조선 임시 인민위원회'의 당면 목표와 같은 것들이었다.
민주주의 민족 전선의 결성은
1946년2월1일,김구 중심의 '비상 국민회의'와
1946년2월14일, 미군정의 자문기관으로 발족한 '대한국민 민주의원'에 대응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좌우익의 대립은 더욱 심화되었다.
우익계의 '비상 국민회의'와 좌익계의 '민주주의 민족 전선'은
서로 과도적 임시 국회의 역할을 자임하며 과도 임시정부의 수립을 목표로 하였다.
우익계는 '신탁 통치 반대', 좌익계는 '신탁 통치 찬성'의 태도를 취하였다.
따라서 서로 매사에 있어서 대립할 수밖에 없었고,급기야 광복 뒤 처음 맞이한 1946년 3.1절 기념행사
마저 따로 거행하였다.
'민주주의 민족전선'은 조직 형태로는 좌익 단체들의 민주적 연합체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조선공산당에
의하여 움직여졌다.
조선 정판사 위폐사건(1945년10 20일부터 6회에 걸쳐 조선 정판사 사장 박낙종 등 조선 공산당원 7명이
위조 지폐를 발행한 사건)을 계기로 남조선 노동당의 주요 간부들이 북한으로 탈출하고 지하로 들어가게
되자 이 단체는 사실상 해체되었다.
1949년6월27일,명목상으로는 평양에서 '북조선 민주주의 민족통일전선'과 통합하여 '조선 노동당'의
외곽 단체인 '조국통일 민주전선'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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