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H 무역 농성사건                   2019.12.27.금요일,맑음

서울특별시 중량구 면목동에 있던 가발 제조업체인 YH 무역회사가 부당한 폐업을 공고하자

200여 명의 노동 조합원들이 회사 정상화와 노동자의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1979년8월9일부터 8월11일까지 신민당 당사에서 벌인 농성 투쟁 사건을 말한다.


YH무역은 1966년 자본금 100만 원,종업원 10명으로 설립한 작은 가발 제조업체였으나,

가발 경기의 호황과 정부의 수출 지원책에 힘입어 1970년대 초 종업원이 최대 4,000여 명에 이르는 대기업으로 성장하였다.

이후 창립자인 장용호는 미국에서 백화점 사업체를 설립해 외화를 빼돌리는 한편, 은행 빚을 얻어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였다.

그러나 1978년 제2차 석유 파동 이후 가발 산업의 후퇴와 수출 감소 등으로 인해

회사 운영이 어려워지자 노동자를 500여 명으로 줄이고,

이듬해 4월 폐업을 선언한 뒤, 다시 같은 해 8월 6일 2차 폐업을 공고하였다.


이보다 앞서 1975년, 이 회사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하였다.

이후 위장 휴업과 공장 이전에 대한 노사협의 및 인원 감소 때의 충원 등을 약속 받았으나,

1979년8월6일, 부채와 적자 운영,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 등을 이유로 회사가 일방적으로 

 폐업을 공고하였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은 폐업 철회와 임금 청산, 고용 승계를 위한 농성을 시작하는 한편, 회사 측과 주거래 은행인 조흥은행(주),관계기관에 회사 정상화를 호소했다.. 그러나 회사가 기숙사,식당까지 폐쇄하자 결국 신민당에 호소하기로 결정하고,

1979년8월9일, 200여 명의 노동자가 신민당 당사에서 농성을 시작하였다.

다음 날 노동자들은 회사의 은행 관리기업 인수,회장 장용호의 소환,기업 정상화 및 생계

대책 강구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하였다.

오히려 8월11일.새벽 2시. 1,000여 명의 경찰이 신민당사에 난입해 폭력을 휘두르며 노동자들을 강제 연행하고, 취재하던 기자 및 신민당 소속 국회의원,당원들에게도 무차별 폭력을 행사하였다. 이로 인해 노조 집행위원장인 김경숙이 사망하고,경찰을 제지하던 172명의

여성 근로자와 신민당 당원 26명이 강제 연행되었다.

이어 농성을 배후 조종한 혐의로 문동환,인명진 등 8명이 구속되었다.

사건 직후 폭력 진압과 강제 연행에 반대하는 시위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이로 인해 당시 신민당 총재 김영삼이 의원직에서 제명되었다.

이후 사건의 여파는 계속 확대되어 기독교,학생,청년 세력 들의 반유신 연대 투쟁을 촉발

하는 등 1970년대 말 한국 노동 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평가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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