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에 상록수 부대 파견               작성일자; 2019.12.28.금요일,맑음

'티모르 내전'은 1998년에서 1999년까지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간의 독립 전쟁'이다.

동티모르 안에서 내전이 일어난게 아니라 인도네시아 섬에서 분쟁이 일어난것이다.

네덜란드 식민지인 인도네시아와 달리 티모르섬 절반은 포르투갈 영토였는데 

2차 세계대전후 포르투갈이 가장 지지가 높았던게 '좌파'에게 독립 시켜 주겠다고 하였다.

미국,호주,인도네시아 3국이 비밀리 공산국가 탄생을 우려하여

인도네시아를 부추겨 1975년 동티모를 침공하여 무력 합병하였다.

약소국이던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의 폭정으로 인구 70만명중에서 20만명이 학살 당했다.

 

1990년대 냉전이 끝나면서 동티모르는 점점 국제 사회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는데

1998년, 수하르토 독재 정권이 물러 나고

UN의 감시 아래 각국의 독립 승인을 받고 주민투표가 이루워져

2002년, 동티모르는 21세기 최초로 독립했다.

이후에 일어난 '동티모르 사태'로

동티모르 주민 투표에 불복한 인도네시아와 친 인도네시아 민병대가  학살,방화를 자행해서 

주민 1500명 가량을 죽였다.

 이때 UN 평화 유지군이 파견되어 친 인도네시아파와 민병대를 제압하였으나

친 인도네시아파와 각종 반란군이 만연해있어 계속적으로 UN 평화군이 주둔되어 치안을 유지하고 있었다.

 

 

1999년9월15일,한국은 국제연합 안전보장 이사회의 파병 승인을 받아

1999년10월4일, 상록수 부대를 파병해 2003년10월에 임무를 마치고 철수시켰다.

1999년9월15일,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UNSC)는 대한민국에 동티모르에 파병할 다국적군 창설을 승인하였다.

이에 따라 국제연합 사무총장 및 오스트레일리아의 외무장관이 한국에 공식 파병을 요청하였고,

1999년9월21일, 국무회의를 거쳐

1999년9월28일, 동티모르 파병 동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1999년9월29일,상록수 부대가 창설되고

1999년10월4일, 상록수부대가 출국하였다.

1999년10월22일,제1진 본대가 로스팔로스에서 첫 작전을 개시하였다. 이후 상록수 부대는

1999년10월애서 2001년12월까지, 로스팔로스 지역에서 작전을 전개하고

2002년1월부터 2003년10월까지는 오에쿠시 지역에서 작전을 전개하였다.

2003년3월6일에는 오에쿠시에 있는 에카트 강을 건너던 중 강물에 휩쓸려 4명이 순직하고

1명이 실종 되었으며,그 추모비가 오에쿠시 공원에 건립되었다.

2003년4월, 상록수 부대는제8진부터 대대급에서 중대급으로 규모를 축소하였으며

2003년10월, 동티모르에서 철수하였다.

1진부터 7진까지는 진당 약 430명,8진은 240여 명으로 구성되었으며 매 6개월 간격으로 교대하였다.

상록수 부대는 국경선 통제,치안 확보 임무를 완벽히 수행하고,

순회 진료,구호품 전달 등 인도적 지원활동과현지 주민들의 복구 활동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동티모르 평화 유지활동(PKO) 참여 부대 중 가장 모범적인 부대로 평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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