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건국 작성일자; 2020.04.22.수요일,맑음
신라는 경주에서 성읍 국가로 시작하여
BC 57년 6개 씨족 집단의 정치 연합체로 건국되었으며,
전설에 의하면 박혁거세가 최초의 지배자로 추대되었다고 한다.
각 성읍 국가들은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중국 군현 당국과의 정치적 교섭에 대한 권한을 행사하는데,
3세기말경까지는 지속되었으며,
4세기에 들어와 고구려가 낙랑·대방 2군을 멸망시키면서
한반도 중부 지역으로 세력을
뻗치게 됨에 따라 이에 위협을 느낀 마한의 여러 나라가
백제를 중심으로 하여 활발하게 통합 운동을 벌이게 된다.
신라는 소백 산맥 너머의 이러한 정세 변화에 적극 대응하면서
선두에 서서 진한 사회를 통합해나갔다.
건국신화로 사로국에는 옛날에 여섯 개의 촌이 있었는데,
어느 해 3월 초하루에 6촌의 장들이 자제들을 거느리고
알천 언덕 위에 모여서 의논하였다.
“우리들이 위로 임금이 없어서 백성들을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에
백성들이 모두 제멋대로 하고 있으니,
덕 있는 사람을 찾아 임금을 삼아서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정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이에 높은 곳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니
나정 우물가에 이상한 기운이 번갯불같이 땅을 비추고 있는데,
흰말 한 마리가 땅에 꿇어 앉아 절하는 모습이었다.
그 곳을 찾아가 살펴보니 자줏빛 알 한 개가 있는데 말은 사람을 보더니
큰 소리로 울고 하늘로 올라갔다.
알을 깨고 보니 한 남자 아이가 있었는데, 모양이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놀랍고 이상하여 동천에 목욕시키니 몸에서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들이 따라서 춤을 추며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이 아주 밝았다.
이에 밝게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에서 이름을 혁거세라 하고,
알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박이라 하였다.
6촌의 장들이 아이를 데려다 길러 13세에 왕이 되니,
나라 이름을 ‘서라벌’ 또는 ‘사로’라 했다.
환단고기 삼성기에
고두막한이 부여의 옛 서울을 점령하고 동명이라 칭하고
신라의 옛땅이다 라고 나온다.
'신라의 왕의 이름을 칸,간,한이라 불려진것과 북부여의 유민들이
신라로 이동한 것이다'
'북부여의 나라이름은 해모수단군시절에
단군조선의 진한 조선으로 마지막 단군인 고열가단군 이후에 오가의 공화정을
종결시키고 북부여로 나라이름을 바꾼데서 유래하다.'
위만왕조가 옛조선의 유민들에게 망하고 4군이 설치되고 한이 쳐들어오는데...
고두막한이 의병을 이르켜 나라를 세우면서 북부여를 계승하지만
해모수의 후손인 고우루 단군을 압박하여 죽게 만들고
아우인 해부루는 나라를 동쪽으로 옮기게 되는데 그것이 동부여이다.
고두막한 이후로 북부여는 쇠약하기 시작한다.
나라가 북부여,동부여 두개로 쪼개진 결과이다.
한반도로 많은 유민오게 된 이유는
고열가단군때와 해모수단군이후로 대거 이주를 하고
위만정권으로 대거 이주하고 고두막한이후로 이주한다.
신라가 세워진 시점을 북부여가 세력이 약해지고
마한 조선은 맹남 즉위 이후로 나라가 유명유실하게 되어 사라진다.
이때 상장군 탁이 한반도로 가서 삼한을 건설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삼한은 상장군 탁이 세운것이고
단군 조선을 3개의 조선으로 나누어 다스리는데
마한조선,번한조선,진한 조선이다.
삼한을 남삼한으로 보기 때문에
동양에서 기록된 고서를 잘못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신라인의 역사책이나 만주족(여진족)이 쓴 역사책에는
'신라의 옛서울은 지금의 만주 길림(吉林)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1에 '선시조선유민'이라
한대목과 단군조선의 전삼한 시대가 무너진후
진조선 지역의 만주에 살던 유민들이 후삼한의 진한땅,
경주지방으로 내려 왔다는 두가지 사실로 미루어 볼때,
사로국 신라의 원 거주지는 부여의 옛 서울인 길림지방이었음을 알수가 있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북부여 황실의 혈통이라는 사실이
태백일사 고구려 본기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고려때 이승휴는 제왕운기에서
시라(신라),구례(고구려),남북옥저,동북부여,예,맥은
모두 단군의 자손이다"라고 하였다
'사로의 시왕은 선도산의 성모의 아들이다.
북부여의 황의 딸 파소가 있었는데 남편없이 아이를 뱄으므로
사람들의 의심을 받아 눈수로부터 도망쳐 동옥저에 이르고
다시 배를 타고 남하하여 진한의 나을촌에 와 닿았다.
그때에 소벌도리라는자가 있었는데 그 소식을 듣고 가서 집에 데려다 길렀다.
진한6부 사람들이 모두 존경하여 거세간이 되니 도읍을 서라벌에 세우고
나라를 진한으로 하고 또한 사로라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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