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주 부석사-선비촌-소수서원

위치;

   1.부석사;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2..선비촌-소수서원; 경북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

탐방일시; 2024.09.29.일요일,맑음

탐방코스; 부석사-자동차 이동-선비촌-소수서원

 

1.경북 영주 부석사

위치;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소개; 

   신라의 삼국 통일 시기인 신라 문무왕16년(676년)에 의상 대사가 창건한 화엄종의 본찰인 부석사는

   일주문을 지나서 펼쳐지는 은행나무길의 매력에 빠져 탄성을 자아 내는것을 시작으로,

   천왕문을 지나고 안양문을  거쳐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 건물인 부석사 무량 수전에 닿는다.

   스치며 바라보는 기둥하나,문창살 하나에도 천년의 세월이 살아 숨쉬며,

   모자람이 없는 균형과 충분하게 절제된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신비로운 설화와 무량수전을 비롯한 수많은 국보.보물 등 문화재가 자리하고 있는  곳!

   부석사는 마음을 가다듬고 눈길이 가는대로 느끼며,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발길을 옮기며,

   영혼을 담은 내면의 세계를 들어다 보는 사바의 극락이기도 하다. 

   부석사로 불리게 됨은 무량수전 뒷편으로 큰 바위가 하나 있는데,

  -이 바위은 아래의 바위와 서로 붙지 않고 떠 있어 '뜬 돌' 이라 한데서 연유한다.

   또한 무량수전은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 건물 중 하나이며,

   조사당 벽화는 목조 건물에 그려진 벽화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탐방코스;

   관광 안내소 주차장-부석사 종합 안내도-안내소-일주문-당간지주-천왕문-회전문-안양루-범종각-안양루

  -석등-무량수전-부석-무량수전

  -석등-삼층석탑-음수대-지장전-화장실-천왕문-당간지주-일주문-안내소-부석사 종합 안내도-관광 안내소 주차장

  -원점 회귀 탐방

탐방시간; 1시간30분

가는 길;

   대구 달서구 홀플러스 메가푸드마켓-신천대로-서대구IC-중앙 고속 도로-풍기IC-순흥/부석 방면-부석 방면

  -부석사 방면-부석사 관광 안내소 주차장

   (네비;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288번지-152.8km,1시간52분 소요,통행료 6,400원)

이미지 보기

 

관광 안내소 주차장에서 

 

관광 안내소 앞을 지나면

 

부석사 입석을 지나면

 

종점식당과 우측 부석사 종합 안내도 사이 불록길을 따라가면

 

부석사 종합 안내도.

가람의 규모만 바라봐도 부석사는 꾀나 큰 사찰 인 것을 알 수 있다. 

 

부석사 가는 길(500m,15분 소요) 방향으로 불록길을 따라가면

 

소백산 가는 길 안내도와

 

부석사 안내도를 지나면

 

우측으로 정자가 보이는 불록길 끝지점에서

 

계단을 오르면 '부석사 불교문화 유산 안내소'에 도착하여

완만한 시멘트 탐방길을 오르면

 

일주문 아래를 지난다.

일주문 앞쪽 현판에는 '태백산 부석사'라고 쓰여 있으며,

일주문 뒷쪽 현판에는 '해동화엄종찰'이라 쓰여 있다.

 

은행 나무길을 따라 오르면

좌측 한켵에 '중수 기적비'를 지나고

 

이어 1300여년 전의 신라 시대의 석조 유물인 당간 지주를 지난다.

보물 제255호로 지정된 당간 지주는 부석사 창건 당시 신라 시대의 유물로, 

절의 위치를 알리는 조형물로 절에서 행사가 있을때 당이라는 깃발을 높이 달았는데,

당간 지주는 깃발을 매달 던 깃대를 고정 시키는 돌기둥 이라 한다

당간지주에는 화엄종찰을 알리는 깃 대와 깃발이 꽃혀 있었겠지만 지금은 한쌍의 돌기둥 만이 남아 있다.

당간 지주는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에 다다르기기 전 왼쪽 중 턱에 우뚝 서 있으며 그 높이는 4.8m다.

 

당간 지주를 지나 완만한 오름길을 올라 돌계단을 올라서면 천왕문에 도착하다. 

천왕문은  사천왕상을 모시는 곳으로 사천왕상이 좌/우로 있다.

 

사천문을 지나 돌계단을 오르면

 

좌측 관음전으로 가는 석축 아래 길과 

 

우측 화장실로 가는 석축 아래 길이 나온다.

부석사 무량수전을 들린 후 이 곳으로 올 예정이다. 

 

갈림길에서 돌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면 회전문에 도착한다.

우측 건물은 관광 안내소다.

 

회전문을 지나면 정면으로 범종루가 보이고

 

좌/우측 석축을 바라본 후 돌계단을 오르면,

 

양쪽으로 북부석사 삼층 석탑 두탑이 보이는데

\

좌측 종무소 방향으로 보이는 통탑은 통일 신라 하대에 조성한 것으로 높이는 3.6m며,

 

관광 안내소 앞 서탑의 높이는 3.77m로 

양탑 모두 원위치가 아니고 부석사 동쪽에 있던 이름 모를 사지에서 1966년 현위치로 옮겨 세웠다.

 

양탑을 지나 범종각 방향으로 계단으로 오른다.

범종각은 회전문 다음으로 맞이하게 되는 문으로 누각문이다.

아래층은 통로이고 2층은 운판,목어,법고가 놓여 있으며 범종은 옆에 따로 종각을 지어 달아 놓았다.

 

좌/우측 가람이 보이고,

 

계단을 올라 범종각

 

아래에서 좌/우를 바라보면

 

좌측의 범종각과 우측의 가람이 보이고

 

돌계단을 오르면

 

무량수전 앞 안양루가 보인다.

안양루(보물)는 조선 후기의 목조 건축물로 범종루를 지나

누각 밑을 통과하여 무량 수전으로 들어서게 하는 건물이다.

 

좌측의 선열당과 우측의 장경각과 응향각이 보이고,

 

안양루 계단을 오르기전 

 

좌측으로 석축이 보이는데 

이 석축은 부석사를 창건 할 당시 비탈을 까고 평지를 고르면서 만든 것으로,

돌의 자연 생김새를 그대로 이용해 잘 짜 맞추어 쌓은 것이 특징이다.

극락에 이를 수 있는 16가지 방법 중 마즈막 세 방법인 3품3배관의 9품 만다라를 형상화 한 것이다.

부석사를 찿는이는 상징화된 돌계단과 석축을 지나면서 극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석축 아래 선열당이 보이고 우측으로 장경각이 보인다.

 

계단을 올라 안양루 아래를 지나 돌계단을 오르면

 

국보인 무량 수전 앞 석등과 무량수전에 도착한다.

무량 수전 앞 석등은 높이가 2.97m로 신라 시대의 전형적인 팔각석등으로,

상하 비례의 교묘함이나 조각의 정교함에서 신라시대 석등 중에서도 손꼽히는 걸작이다. 

 

무량수전은 1962년12월20일, 국보로 지정 되었으며 배흘림 기둥,안쏠림,귀솟음,안허리곡 기법이 사용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아름다운 목조 건물 중 하나로 손꼽힌다.

 

소조여래 좌상은 

무량수전의 본존으로 다른 불전 불상과는 다르게 측면을 바라 보고 있다.

서쪽에서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

이는 서방 정토 극락 세계를 주재하는  아미타 부처를 향해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것이라는 설이 있다.

통일신라시대 불상 양식의 전통을 이어 제작된 고려 시대의 작품으로 정교한 기법을 보이는 우수한 불상이다.

 

무량 수전 앞에서 바라본 석등과 안양루다.

 

무량수전 좌측 뒷편으로 가면

 

아래 위가 붙지 않고 떠있다 하여 뜬돌,부석이란 바위를 만난다.

 

부석 아래 요사체와 함께 삼성각이 보인다.

삼성각은 칠성,독성,산신 세분을 한 곳에 모신 전각으로 무량수전 서쪽 석축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위 삼성각은 원래 축화전이라 불렀는데 여조때 대비의 원당으로 지은 건물이라 한다.

 

다시 안양루 우측 옆으로 되돌아와 아래로 바라보면

지나온 범종루를 비롯한 가람들이 보이고

 

 

안양루 좌측에서 보는 조망이다.

 

조망 후 무량수전과 안양루 사이 석등 앞을 지나

삼층 석탑이 보이는 방향으로 가면

 

무량수전  뒷편 우측으로 선묘각이 보인다.

선묘각은 무량수전 북서쪽 모서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의상 조사의 창건 설화와 관련된 인물인 섬묘를 모신 건물이다.

내부에는 근년에 그린 선묘의 영정이 걸려있다.

 

선묘 설화에 관한 이야기는 이러하다.

의상이 당나라에서 공부 할 때 등주에 있는 신도의 집에 멀물게 되었는데,신도의 딸 신묘가 의상을 사모하게 되었다.

하지만 의연하게 대하는 의상의 굳은 의지에

'영원히 스님의 제자가 되어 공부와 교화,불사에 도움을 드리겠다'는 원(願)을 세웠다.

훗날 의상이 떠난다는 소식에 미리 준비한 용품을 담아해안으로 달려 갔으나 의상이 이미 떠난 후 였다.

선묘는 가져온 함을 바다에 던지며 배에 닿기를 기원하고,

용으로 변하여 대사를 모시고 불도를 이루게 해 달라는 주문을 외우고 바다에 몸을 던졌다.

신라에 귀국한 의상은 중생을 교화 하던 중 676년(문무와16) 태백산의 한 줄기에 절터를 발견하였으나 

이미 다른 무리들이 살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선묘룡이 나타나 큰 바위를 들었다 놓았다.

이에 놀란 무리들이 굴복하고 모두 의상의 제자가 되어 불사를 도왔다.

돌이 공중에 떻다하여 부석사라 지었다.

그 부석은 무량수전 서쪽 암벽 밑에 있으며,선모룡은 무량 수전 앞 석등 밑에 뭍혀 절의 수호신이 되었다.

1967년5월,신라 오악 학술조사단이 무량 수전 앞뜰에서 이 설화를 뒷밭침하는 5m가량의 석룡 하반부를 발견한바 있다.

 

삼층 석탑 방향으로 가면

삼층석탑으로 오르기 전 우측으로 하산하는 길이 나온다.

 

위의 삼층석탑은 높이 5.26m,기단 너비가 3.56m로  통일신라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며,

1960년 해체 수리 할 때  3층 탑신 중앙에 얕은 사리공이 있었으나 사리 장치는 없고,

기단부에서 철제탑,불상 조각,구 슬 등이 발견되었다.

 

 

법종루로 가는 길을 지나

 

지장전을 지나

 

 

천왕문 계단 아래에서 좌측으로 

 

천왕문 계단 아래에서 좌측으로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일주문을 지나

 

문화 안내소를 지나면

 

불록길을 따라 노점상을 지나 관광 안내소 방향으로 가면

 

관광 안내소 앞을 지나

 

이정표에서 

 

관광 안내소 주차장에 도착하여 종료한 부석사 탐방이다.

 

 

부석사를 탐방 후 선비촌과 소수서원을 탐방하기 위해

부석사 관광 안내소 주차장에서 13km 떨어진 선비촌 소형 주차장으로 자동차로 이동한다.

 

2.선비촌과 소수서원 

위치; 경북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 일대

탐방일시; 2024.09.29.일요일,맑음

탐방코스; 선비촌-소수 박물관-소수서원

 소개;

  선비촌은 우리 민족의 생활 철학이 담긴 선비 정신을 높이고 사라져 가는 전통 문화를 재조명하여,

  윤리 도덕을 회복하는 인간성 상실의 사회적 괴리 현상을 해소해 보고자,

  충효의 현장에 제현된 지역의 고택을 재건축해 놓은 민속 마을이다.

  소수서원은 안동의 도산서원,병산서원, 경주의 옥산서원,대구의 도동서원,함양 남계서원,정읍 무성서원,

  장성 핌암서원,논산 돈암서원과 함께 한국의 서원으로 2019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었고,

  2023-2024년 한국 관광 100선으로 선정되었다.

  우리 나라 최초의 사액 서원으로 조선 중종 37년(1542년) ,풍기 군수 주세붕이 

  고려 말의 유학자이며 최초의 성리학자 이신 회헌 안향 선생이 태어나 자란 이 곳에서 그 분을 기리고자

  사묘를 세워 선생의 위폐를 봉안하고,

  다음해인 1543년, '백운동 서원'이라는 이름으로 건립한 조선 최초의 서원을 건립하면서 비롯 되었다.

  그 후 최계 이황 선생이 풍기기 군수로 부임하여 조정에 건의 '소수서원'이란 사액을 받게 되어

  최초의 사액서원 서원이자 공인된 사립 고등교육 기관으로 퇴계 선생의 제자들을 포함해 4천명의 유생이 배출되었다.

  사액 성원은 임금님으로 부터 책,토지,노비를 하사 받고 면역의 특권을 가진 서원을 일컫는다.

  소수 박물관은 문화 유산의 체계적인 관리로 설립된  5개의 전시실과 수장고,시청각실을 갖추고 있는 박물관이다.

탐방코스; 선비촌-소수 박물관-소수서원-산책로-선비촌

탐방시간; 1시간30분

가는 길;

   영주 부석사 관광 안내소 주차장 -풍기 방면-소천 사거리/풍기,단양 방면-순흥 방면-옥대 삼거리/풍기 방면

 - 영주 선비촌 소형 주차장

   (네비; 경북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 362 420-4번지-13km,16분 소요,통행료 없음)

 

이미지 보기

 

선비촌 소형 주차장에 도착하여 선비상 앞에서 

 

우측 소형 주차장 방면으로 가면

 

좌측 영주 선비촌 안내판 앞을 지나면

 

매점과

 

죽계루를 지나면

 

관광 안내소를 지나 

 

저작 거리를 지나면 

 

매표소에 도착한다.

일반 어른의 경우 개인으로 3,000원이며 65세 고령자에게는 무료로 입장 할 수가 있다.

매표소를 지나면

 

관람 동선 안내판에서 

 

직진하여 소수서원으로 가는 길과 

 

좌측 옥계교 방향으로 열부각과 충복각을 볼 수가 있다.

 

열부각과 충복각.

 

옥계교를 건너 면

 

좌측은 선비촌으로 가는 길이며,

우측 직진하여 가는 시멘트길은 영주시 청소년수련원으로 가는 길이다.

우측 비스듬한 길로 가면 소수 박물관으로 가는 길이다.

선비촌을 다녀온 후 소수 박물관을 탐방 후 다시 이 곳 옥계교로 되돌아와

매표소 입구 좌측으로 소수 서원을 들린 예정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삶터인 선비촌은 

우리 민족의 생활 철학이 담긴 선비 정신을 높이고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를 재조명하여,

윤리 도덕의 붕괴와 인간성 상실의 사회적 괴리 현상을 해소해 보고자 충효의 현장에 재현하였다.

선비촌의 체험 프로 그램으로 고택 숙박 체험,떡메치기,전통 혼례 시연,천연 염색,매듭,칠보 공예 및 다도 체험,

캔들 체험 등 다양한 전통문화를 체험 할수 있다.

 

좌측으로 매트길이 깔린 선비촌으로 들어가면

 

선비촌과 소수 박물관 준공 안내판과 

 

선비촌 전통 한복 체험 볏집을 지나

 

명품 판매점을 지나

 

저작 거리를 지나

 

선비촌과 이웃한

인성 교육의 도량인 '한국 선비 문화 수련원' 및 K-문화 테마 파크인 '선비 세상'이 있으나 선비촌만 탐방하였다.

 

죽계교에 도착하여 옥계교로 되돌아간다.

 

옥계교로 되돌아가

 

소수 박물관으로 향한다.

 

소수 박물관으로 들어간다.

 

소수 박물관은 유교(성리학)과 관련된 전통문화 유산을 체계화하고,

우리 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으로서

유교의 이상을 간직한 소수 서원에서 보관하던 일체의 유물을 보관하고 전시하며,

민족 정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공간이다.

또한, 서원과 유교를 주제로 영주의 귀중한 유물과 유적을 체계적으로 보존,전시함으로로써

지역 문화의 활성화와 생동감 있는 역사 체험 공간으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다.

 

소수 박물관으로 들어서면

 

아랫층으로 내려가면

 

특별 전시실과 상설 전시실로 나뉜다.

 

상설 전시실로 들어가면

 

내부 전시관 모습이다.

 

백운동 현판과 소수 서원 사액 현판.

백운동 현펀은 풍기 군수 주세붕이 창건시에는 주자의 여산 백록동 서원을 본따 백운동 서원으로 불렀으며,

소수서원 현판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현판으로 조선의 13대 명종 임금이 직접 쓴 글씨를 새긴것이다.

 

고려 후기 문신인 회헌 안향(1243~1306)의 초상화다.

현재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초상화 중의 하나다.

 

소수 박물관을 탐방 후 옥계교로 되돌아간다.

옥계교 건너기전 우측은 조금 전 다녀온 선비촌이다.

옥계교를 건너

 

열부각과 충복각을 지나면

 

 

매표소 건너편으로 소수 서원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소수 서원 방향으로 좌측으로 시멘트길을 따라가

 

죽계교를 건너면

 

우측으로 세월교(청다리)가 보이고

 

좌측으로 죽계천을 건너는 징검다리와 죽계천 건너 광풍정이 보인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조금가면

 

잔듸 공원 숲으로 들어 가거나

 

직진하여 시멘트길을 따라 따라가면,

 

백운교를 건너는 삼거리 갈림길이 나온다.

좌측 백운교를 건너면 광풍정과 산책로인 오솔길이,취한대가 나온다. 

 

우측 화장실 방향으로 들어가

 

쪽문을 들어 서면서 소수 서원에 들어서게 된다.



정면으로 보이는 관리 사무소와 우측으로 보이는 충효 교육관..

 

다시 쪽문으로 들어서면,

 

사료관과 사료관 내부의 모습이다.

사료관은 소수 서원에 대한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고자 관련 자료를 정리해 둔 곳으로,

소수 서원의 역사와 전통 및 주요 배출 인물들에 대해 패널과 키오스크로 설명해 놓았을 뿐만 아니라

관련 유물들도 전시하고 있다.

 

다시 쪽문을 들어서면

 

소수 서원으로 들어선다.



 

좌측으로 별도의 건물로 되어있는 지락재와 학구재.

원생들이 거처 하면서 공부 하던 곳이다.

 

 

강학당 

 

뒷편

 

일신재와 일신재.

서원에서 공부하던 유생들이 유숙하던 곳으로 직방재와 일신재는 한 건물로 되어 있다.

 

 

영정각과 장서각

영정각은 회헌 안향 선생을 비롯 여섯분의 초상을 봉안 한 곳이다.

(회암 주희,회헌 안향,신재 주세붕,오리 이원익,함음 이덕형,미수 허목)

 

장서각과 뒷편으로 영정각.

장서각은 오늘날의 도서관으로 유학 경서나 문집 등의 서적 ,목판 등을 보관 하던 곳이다.

 

영정각 앞 일영대.

일영대는 해시계로 알려져 있으며 숙수사의 유적이라는 설도 있다.

 

전사청.

전사청은 봉향집기(제사용 그릇) 등을 보관해 두던 곳이며,

춘.추 제향 때마다 집사들이 제물을 마련하던 곳이다.

 

소수서원 문성공묘(보물).

회헌 안향 선생의 위폐를 모신 곳으로

나중에 안보와 안축,주세붕을 함께 모시고 매년 음력3월.9월 초정일에 제향 하고있다.

현판 글씨는 명나라 사신 주지번의 글씨이다.

 

마즈막 건물인 유생들이 모여 강의를 듣던 곳으로 사방으로 툇마루가 둘러 놓여 있는 강학당이다.

 

강학당에서 지도문(쪽문)을 나서면

 

우측으로 성생단과

 

좌측으로 경렴정이 위치하고 있다.

신재 주세붕이 창건한 정자로,풍광이 수려한 곳에 위치하여 시연을 베풀고 호연지기를 키우던 곳이다.

정자 이름은 북송의 철학자인 염계 주돈이를추모하는 뜻에서 지었다고 한다. 

 

죽계천을 건너 경자 바위와 취한대가 위치하고 있다.

퇴계 이황이 지은 치한대는 

'취한'이란 뜻은 '연화산의 푸른기운과 죽계의 맑고 시원한 물빛에 취하여 시를 짖고 풍류를 즐긴다'는 뜻에서 지었으며,

백운동(白雲洞) 경(敬)자 바위는 주세붕이 직접 백운동과 경이라는 글자를 새긴 바위다.

 

뒤돌아본 경렴정과 지도문.

 

겉과 속이 모수 붉다하여 적송이라 부르며 3백년에서 천년에 가까운 적송 수백 그루가 서원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학자 수림을 지나 

 

통일 신라 시대 것으로 당이라는 하는 불화를 그린 깃발을 걸던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던 기둥인

영주 숙수사지 당간 지주를 지나

 

뒤돌아 본 학자수림.

 

매표소를 지나면

 

주차장에서 소공원을 지나 

 

휴게소 앞을 지나

 

산책로를 따라가면

 

이정표를 지나

 

도로에 접속한다.

건너편으로 금성대군 신단이 보이고

 

도로를 따라 선비촌 주차장으로

 

세월교(청다리)를 건너

 

주차장이 보이는 방향으로 가면

 

선비촌 입석에서

 

우측으로 선비상에 도착하여 종료하는 선비촌-소수서원 탐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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