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지(鄭麟趾) 작성일자; 2010.04.13.화요일,맑음
생졸;1396.12.28-1478.11.26 조선 초기의 문신·성리학자,한글학자, 역사가, 정치인
본관; 하동
호; 학역재(學易齋)이다.
시호는 문성(文成)
정인지는 성리학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고려사,고려사절요 등을 정리, 편찬하였고
용비어천가의 작곡자의 한사람이기도 하다.
포은 정몽주의 학통을 사사하고,
1414(태종 14년) 문과에 급제하여 세종 때 집현전 대제학으로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였다.
1424년 집현전관(集賢殿官)에 선발된 뒤 집현전에서 근무하며 훈민정음 연구에 참여하였고
1448년 이조판서가 되어 삼남 지방에 토지 등급을 정했다.
1452년부터 1454년까지 《세종실록》의 편찬과 감수를 맡았으며,
세조를 지지하여 계유정난,세조반정 등에 적극 동조하였다.
1453년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주도한 계유정난에 협력한 공로로 특별승진하여 좌의정에 발탁되고,
정난공신 1등에 책록 되면서 하동부원군(河東府院君)에 봉군되었다.
1455년(세조 1) 영의정 부사에 승진하고 세조반정을 지지한 공로로 좌익공신左翼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1438년 예종때 한명회,신숙주 등과 함께 남이 .강순의 옥사를 다스린 공으로 익대공신3등관이 되고,
예종 사후 원상으로 서정을 주관하다 의경세자의 차남 자을산군을 지지한 공로로 좌리공신(佐理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그의 장남 정현조는 세조의 사위였고,
손자 정승충은 세조의 서자 덕원군의 사위가 되어 이중으로 사돈 관계를 형성하였다.
증손녀 하동 부대 부인은 선조의 생모가 된다. 또한 중종의 후궁 희빈 홍씨의 외증조부가 되기도 하다.
권우의 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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