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al기 폭파 사건                 2019.12.27.금요일.맑음

1987년11월29일, 바그다드발 서울착 KAL858편 보잉 707기가 미얀마 랑군 상공에서 공중폭발하여 탑승객 115명 전원 사망하였다.


1987년11월29일,미얀마의 벵골만 상공에서의 무선 보고를 끝으로 소식이 끊긴 KAL기는

사건발생 15일 만인 12월13일 양곤 동남쪽 해상에서 공기 주입 펌프 등이 파손된 KAL기

구명 보트 등 부유물 7점이 발견됨으로써 비행 중 폭발에 의하여 추락하였음이 확인되었다.

수사 시작 2일째인 1987년12월1일,

사고 비행기에 한국 입국이 금지된 '요주의 인물'인 일본인 2명이 탑승했었다는 동아 일보의 특종 보도가 나가면서 수사는 급진전 되었다.
'하치야 신이치'와 '하치야 마유미'라는 일본인으로 위장한 북한 대남 공작원 김승일, 김현희 두 사람은

1987년12월1일, 바레인 공항에서 붙잡혀 조사를 받던 중 독약을 삼켜 김승일은 죽고

김현희는 살아났다.

1987년12월7일,정부는 바레인에서 사실상 수사를 종결하고,북한의 88올림픽 방해 책동의 일환으로 사건을 분석했다.

그러나 현지조사단은 KAL858기의 잔해는 찾지 못한 채 철수하였다.

다음해인 1988년 1월15일 '하치야 마유미'는 김현희 라는 이름으로 TV 기자 회견을 가지고, 본인이 KAL858기 폭파범이며 북한 김정일의 사주로 88올림픽 방해,선거 분위기 혼란 야기, 남한 내 계급 투쟁 촉발을 목적으로 KAL858기를 폭파했다고 발표했다.
즉, 이 사건은 김승일과 김현희가 김정일의 친필 지령을 받고 기내에 두고 내린 시한 폭탄과 술로 위장한 액체 폭발물에 의하여 폭파 되었다는 것이다.


1988년1월21일, 미국 정부는 북한을 테러 국가로 규정,비자발급 규제를 강화하고

1987년3월에 북한 외교관 접촉을 허용하였던 지침을 철회하였으며 ,

1988년1월26일,일본 정부도 제3국에서의 북한 외교관 접촉을 제한하고,

    일본∼북한간 특별기의 일본 기항을 중지하는 등 대북한 제재 조치를 단행하였다.


1987년12월16일, 범인 김현희가 13대 대통령 선거 전날 서울에 옴으로써 13대 대통령

   선거에 최대 변수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 뒤 김현희는 한국 정부의 보호 하에 압류되어 있다가 1990년 재판을 받고 사형이 선고되었으나 한국에 전향, 대통령 특사로 자유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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