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기부 X 파일 사건               2020.02.04.화요일,맑음

안기부 X파일 사건(삼성 X파일 사건)은

2005년7월,MBC의 이상호 기자가

안기부의 도청 내용을 담은 테이프를 입수하여 삼성그룹과 정치권,검찰 사이의 관계를 폭로한 사건이다.


1997년 대선 당시 신라호텔에서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이 삼성 그룹 이학수 부회장에게 특정 대통령 후보에 대한 자금 제공을 공모하고 검사들에게 뇌물을 제공한 것을 보고하는 내용이 담겨있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이 사건을 통해 김영삼 정부의 국가정보기관에 의해 불법 도청 사실,삼성그룹에 대한 소극적 수사,재판의 공정성 등이 도마에 올랐다.


미림팀은 1960년대 중반,

중앙정보부가 정치인 등 주요 인사들의 동향 파악을 위해 운영하던 정보 수집팀의 별칭으로

미림이라는 팀명은 고급 술집의 마담 등을 협조자로 활용한 데서 비롯됐다.

내부적으로는 '여론 조사팀'이 공식 명칭이었다.


안기부는 노태우 정부 말인 1991년9월,

공운영을 팀장으로 도청 장비를 이용한 첩보 수집에 들어 갔으나,

대통령 선거 직전인 1992년12월,

보안 문제 등 때문에 활동이 중단되었다가

문민 정부 출범 이후인 1994년6월,

2차 미림팀으로 재건되어  1997년11월까지 활동했다.

검찰은 2차 미림팀이 활동한 3년 5개월 동안 하루 1개,일주일에 5개씩 모두 1000여 개의

불법 도청 테이프가 생산된 것으로 추산했다.

도청 대상은 여,야 최고위 정치인,언론사주,청와대 수석,국무총리,보안사령관,참모총장이다.


방송국 내부 사정으로 이 사건에 대한 취재가 중단되었다가

이상호 기자가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남긴 '기자의 아내'라는 글이 한겨례 신문를 통해 보도된

2005년2월경 부터 언론계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MBC

도청 자료의 출처가 명확해지고 안기부가 도청을 하여 작성하였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인정되지 않는 한 보도가 불가능 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2005년6월8일,인터넷 언론 매체인 ‘데일리 서프라이즈’가

‘MBC와 이상호 기자는 침묵을 깰 때’라는 기사를 게재함으로써 ‘x파일’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으며,

2005년7월21일,

조선일보,KBS가 안기부 도청 실태와 X파일의 내용을 보도하자 MBC도 내부적으로 보도

하기로 결정하였다.

삼성그룹 부회장인 이학수와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은

MBC를 상대로 테이프 관련 내용을 일체 보도하지 말 것을 내용으로 하는 방송 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였고,

법원은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MBC는 당일 뉴스 데스크를 통해 당사자들의 실명을 거론하지 않고 모 중앙 일간지 사주와 대기업의 고위 관계자라는 내용의 뉴스를 보도 하였다.

그 후 다른 언론 기관이 보도를 하게 되자

2005년7월22일 부터 7월27일까지,

MBC는 X파일의 내용을 보다 상세히 보도하게 되었다.

2005년7월22일의 MBC 뉴스 데스크의 폭로는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2005년7월23일,

여권과 시민 단체에 의해 홍석현 당시 주미 대사의 자진 사퇴론이 급부상하였다.

2005년7월24일,

전 미림팀장이며 사건의 당사자 중 한명인 공운영은 SBS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입 열면 안 다칠 언론사가 없다”는 논지의 주장을 하여 파문을 증폭시켰다.

MBC 뉴스 데스크에서는 1997년 삼성 그룹이 기아 자동차 인수를 시도하며 기아자동차가 은행에서 대출받은 수천억의 자금을 일거에 상환하도록 정치권에 로비하여 부도나게끔 만들었고, 그것이 결국 IMF를 불러왔다는 내용과  삼성 그룹이 검찰 고위층 10여명에게 정기적으로 촌지를 전달했다는 추가적인 내용을 폭로하였다.

이에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은 X파일에 언급된 뇌물을 받은 검사를 파악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2005년7월25일,

중앙일보는 '다시한번 뼈를 깎는 자기반성 하겠습니다 라는 사설을 발표하고,

삼성 그룹에서도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한다.

참여연대는는 삼성 등 불법대선자금 관련자 20여명을 검찰에 고발하였다.

주요 인사의 언급도 이어졌는데,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은 X파일 사건에 관하여 성역 없이 조사하겠다고 언급하였으며,

누무현 대통령은 "도청은 부끄러운 일이며, 철저히 조사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조사를 맡은  국정원은 재미교포 박인회에게 출국정지 조치를 내린다.

2005년7월26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삼성 X파일에 대한 특검을 요구한다. 하지만 특검을 둘러싼 여야 각당의 입장차이와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X파일 특검법안은 결국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였다.

검찰은 X파일 사건을 서울 중앙지검 공안2부에 배당하였으며,

홍석현 주미대사가 X파일 파문의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하였다.

전 미림팀장 공운영은 경기도 분당의 자택에서 딸을 통해 기자들을 불러모은 뒤, A4 13장 분량의 친필 자술서를 전달한다.

그리고 당일 오후 6시15분경, 자택에서 복부에 4차례의 자해를 시도하였다.

공운영은 자해 직후 발견되어 분당 서울대 병원으로 옮겨져 긴급수술을 받아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2005년7월27일,

한겨례 신문은 안기부 녹취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 관한 내용이 누락되었음을 보도하였다.

당일 천정배 법무장관과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논의하는 특검 도입에 관하여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힌다.

검찰은은 재미교포 박인회를 X파일 유출 혐의로 긴급체포하고, 공운영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여 도청테이프 274개와 녹취록 13권을 압수한다.

한편 법무부는 오정소 전 안기부 제1차장 등 10여명에 대하여 출국 금지 조치를 내린다.

2005년8월5일,

이상호 기자는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위하여 검찰에 출두하였고,

중앙일보는 '중앙일보 기자들은 다짐합니다' 라는 제목의 사과문을 다시 게재하였다.

2005년8월17일,

참여 연대와 언론 노조 등 시민 단체들이 주축이 된 삼성 불법뇌물 공여사건 등 정경검언

유착의혹 및 불법도청 진상규명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X파일 공대위)를 발족하여 활동을 시작하였다.

2005년8월18일,

X파일 녹취록을 입수한 민주 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개원과 동시에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검사 7명의 실명을 공개하였고,월간 조선 9월호는 자체입수한

삼성 X파일의 전문을 기사에 공개하였다.

불법적으로 취득한 정보를 무단으로 공개함에 따라 노회찬 의원과 월간 조선 편집장인 김연광은 이후 통신 비밀 보호법 위반혐의로 검찰의 조사와 재판을 받게 된다.

2005년12월14일,

검찰 도청 수사팀은 불법도청 및 X파일 수사결과를 발표하였는데,

이학수,김인주,홍석현 등은  공소 시효 만료로 무혐의 처분되었으며, X파일을 폭로한 이상호 기자, 김연광 월간조선 편집장, 노회찬 의원 등은 통신 비밀 보호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되었다.

당일 검찰수사결과에 반발하는 민주 노동당과 전국언론노동조합 등의 단체들은 검찰 규탄

집회를 개최하였다.

2005년12월16일,

이상호 기자는 삼성 X파일 보도로 2005년 민주시민 언론상을 수상한다.

이후 이상호 기자는 '2005년 올해의 기자상'도 수상하게 된다.

이후 계속적인 수사를 진행한 검찰은

2006년8월4일,

천용택 전 국정원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하였으며,

2005년8월19일,

헌정사상 최초로 국정원에 대한 전격 압수수색을 벌였다.

2005년10월26일,

검찰은 전 국정원장인 신건과  임동원을 불법도청의 공범으로 지목하였으며,

이 두 사람은 11월15일 구속된다.

2005년11월20일,

이수일 국정원 전 제2차장(당시 호남대 총장)은 검찰수사의 심적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였다.


MBC는 사건보도에 있어서 도청 녹취록인 이른바 삼성 X파일에 나오는 전, 현직 검찰 고위 간부들의 이름을 이니셜로 처리하여 비실명으로 보도했다.

이는 언론의 입장에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실명으로 공개하기엔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었고,소송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한편 X-파일의 원본을 입수한 노회찬 전 의원은 자신의 블로그 등에 실명을 공개함으로써 사건이 법적분쟁으로 치닫게 된다.

그러나 검찰 측은 당시 X파일에 중대한 범죄정황이 담겨져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공소 시효가 완료되었다는 점과 증거자료 자체가 불법 도청에 의해 작성된 것이라는 이유로

증거 능력을 부인하는 등 이 사건을 수사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후 언론,방송과 참여 연대의 고발로 검찰은 수사에 착수하였고,

고발 이후 142일간 X파일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2005년12월14일,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삼성 이건희 회장, 이학수 부회장,호억현 중앙일보 회장 등을 횡령혐의로 처벌하기 어렵고 뇌물공여혐의도 공소시효완료로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그

러나 X파일 내용을 보도한 MBC 이상호 기자와 월간 조선 김연광 편집장을 통신 비밀 보호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하였다.

이 사건과 관련해 도청테이프 녹취록을 공개한 이상호 기자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

김연광도 징역 6개월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

또 도청녹취록 속에 있는 삼성측 뇌물을 받은 검사들 중 7명의 실명을 공개한 노회찬 국회의원은 2011년10월26일,

서울중앙지법으로부터 징역 4개월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고,

2013년2월14일,대법원에서 원심을 확정받아 의원직을 잃었다.


도청을 통해 권력형 비리를 밝혀냈으나 도청과 폭로만 처벌되고 비리는 묻힌 사건으로 초원 복집 사건이 있다.

 2013년2월14일,

대법원에서 원심을 확정받아 의원직을 상실했던 노회찬 전 대표는

2016년4월13일 시행된 제20대 국회위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됨으로써 3년 만에 국회 재입성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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