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의 반란      작성일자; 2019.07.14.일요일,맑음

 

1.위만의 반란(기원전 194);

  기원전 194년에 일어난 정변으로 고조선의 서쪽 땅을 다스리며

  변방을 방어하던 박사 위만이 정변을 일으켜

  준왕(초기국가시대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을 몰아내고 스스로 왕이 됐다.

  위만은 본래 중국 연나라 사람으로,

  연나라 왕 노관이 한나라에 불만을 품고 흉노로 망명하자

  서기전 195년에 약 1000명의 무리를 이끌고 고조선으로 들어왔다.

  그때 준왕은 위만을 믿고 서쪽 땅 100리를 다스리게 하면서

  한나라를 방어하는 임무를 맡겼다.

  그러나 군사를 모아 한나라 군대가 침입해 온다는 거짓으로 내세워

  왕검성으로 들어가 준왕을 쫓아냈다.

  위만은 ‘조선’이란 나라 이름을 바꾸지 않았고

  토착 세력을 지배층에 참여시켜 정치적 안정을 꾀했다.

   이후의 고조선을 ‘위만조선’이라 부른다.

   한편 쫓겨난 준왕은 뱃길로 한반도 남쪽에 내려가 한왕(남쪽 지역 불투명하다)이 됐다.

2.주근의 난

   초기 국가 시대 마한의 부흥을 도모하여 16년에 우곡성에서 주근이 반란을 일으킨 난으로

   백제 시조 온조왕이 고구려에서 한수 유역으로 이동하여 오자 마한왕은 동북 100리의

   땅을 할양하여 거주하게 하였다.

   그 뒤 백제는 강성해져 온조왕 6년 때 웅천책을 설치하는 문제로 마한과 국경 분쟁을

   일으키고, 8년에는 마한의 공격하여 그 도읍을 함락하고 병합하였다.

   이 때 마한의 원산,금현의 두 성은 끝까지 항복하지 않았지만 백제의 공격으로

   이듬해 4월에 함락되고 그 성의 백성을 한산 북으로 옮겼다.

   이에 마한은 멸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369년(근초고왕 24)에 마한이 멸망하였으니 이 때의 마한의 멸망은 완전

   멸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마한의 패배와 남쪽으로의 후퇴를 의미한다고 하겠다.

   16년에 마한의 장군 주근이 마한의 부흥을 도모하여 우곡성에 웅거하여 백제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백제 정벌군에게 패배하자 주근은 목매어 자결하였다.

   백제는 그 시체의 허리를 베고 가족을 처벌하였다.

3.길선의 난

   삼국시대 신라의 아찬으로 165년.10월에 모반에 실패해 백제로 건너간 관리로써

   모반을 하다가 실패하여 이웃 백제로 달아났는데,

   아달라이사금은 백제의 개루왕에게 글을 보내어 그를 돌려보내줄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개루왕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아달라이사금은 군사를 일으켜 백제에 쳐들어갔으나,백제는 군비를 갖추고 성을

   굳게 지키며 나와 싸우지 않았다.

   그리하여 군량이 떨어진 신라군은 싸움을 포기하고 군사를 돌이켰다.

4.좌가려.어비류의 난(190)

5.발기의 난(197)

6.예물.사구의 난(248)

7.일우.소발의 난(286)

8.우복의 난(327)

9.해구.연신의 난(478)

10.백가의 난(501)

    간주리의 난(557)

    칠숙.석품의 난(631)

    비담의 난(647)

    김흠돌의 난(681)

    각간의 난(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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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상.정문의 난(775)

    김지정의 난(780)

    제공의 난(791)

    김헌창의 난(822)

    김범문의 난(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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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규의 난(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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