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왕 제26대 고종 이야기          2019.08.15.목요일,맑음

고종; 조선제26대 왕이며,대한제국의 초대 황제다.

이름; 이희

생졸; 1852(종3년)-1919년1월21일(68세 일기)

재위기간; 1863년-1907년(44년 재위)

능; 경기도 남양주 홍릉

가계도;

  부; 흥선대원군 이하흥

  모; 영흥부대부인 민씨(2남2녀)

       1남 형;완흥군 이재민(흥친왕;1845.8.22-1912.9.9)

                 풍산 홍씨(1844.4.8-1887.12.9)

                     영선군 이준용(1870.7.23-1917.3.22)

        2남 고종; 제26대왕

              명성황후 민비

                      순종(제27대 왕,2대 황제)

              순헌황 귀빈 임씨

                      영친왕

                      이방자

                          이진

               귀빈 이씨

                        완친왕

               귀빈 장씨

                        의친왕

               귀빈 이씨

                        이육

                귀빈 정씨

                        이우

                귀인 양씨

                        득혜옹주

                상공 김씨


고종은 1852년(철종3년)에 흥선대원군 이하응과 여흥부대부인 민씨 사이에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고종은 1863.12.8(철종14년)에 후사없이 죽자 철종에 이어 고종의 왕위 계승에도 깊이 관여한 조대비와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결탁하여 12세인 자신의 둘째 아들 익선군 고종을 조선 제26대 왕으로 추대하고

왕위에 올려놓았다.

고종은 1866년(고종3년)에 민치록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니 그가 바로 비운의 왕비 민비인 명성황후다.

고종과 민비 사이에 1남4녀가 태어 났으나 27대 왕인 순종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 일찍 죽었다.

이 밖에 고종은 7명의 후궁에게서 3남1녀를 두었다.


고종의 즉위(1863년) 초 3년간 조대비가 수령청정 하였으며,

조대비와 흥선대원군이 결탁하여 안동 김씨 세력을 몰아내려고 했다.

고종 즉위와 동시에 60여년간 이어온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는 끝이났다.

 

조대비가 수렴청정하는 사이 실권은 흥선대원군에게 넘어가 세도정치를 해오던 외척 세력을 몰아내고 

내정 개혁을 단행했다. 그후 10년간 고종이 친정 하기 전 흥선대원군의 섭정이 이루어졌다.

흥선대원군이 1873년 최익현의 탄핵으로 섭정에서 물러나자 왕비 민씨의 척족세력이 정권을 장악했다.

고종의 친정(1873.12)이 이루어지면서 민비 중심의 척족 일가가 정권을 독점하면서 개국의 분위기가

일어났다.

흥선대원군은 첫 단계로 유림들의 부패 온상인 서원을 철폐(1864년(고종1)하였고,

비변사 폐지하고 의정부 기능을 강화 하였다.

그동안 상민들에거 부과해오던 군역법을 양반들에게도 징수하는 호포제와 사창제를 실시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불타 방치 되었던 경복궁을 중건하여 왕의 권위를 높이려했다.

중건에는 막대한 재정의 조달을 위해 원남전과 당백전을 발행하게 되었고,이는 고물가를 초래하고 화폐

경제를 혼란하는 결과를 낳아 백성들의 원성을 쌓았다.


러시아의 남하 정책(1864)으로 러시아는 영국,프랑스 등 열강들과 청나라 사이의 갈등을 조정해 주고

그 댓가로 연해주를 확보한 후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여 흥선대원군은 외세에 대한 불안을 안게되었다.

영국은 일본을 앞세워 러시아 세력의 남하를 막고자 흥선대원군은 쇄국 정책으로 일관하였다.


통치법령을 정비하기위한 대전회통 완성(1865),병인박해(1866-1873),제너럴셔먼호 사건(1866.7.12),

병인양요(1866.9.18-11.21),오베르트 도굴 사건(1868.5),신미양요(1871),흥선대권군 물러나고 고종이

친정(1873.12),운양호 사건(운요호;1875.9.20),강화도 조약(병자.조일 수호조약;1876.2.27),제1차 수신사 파견(1876.4월말),수호조규 부록(1876.8.24)과 조일장정(조일통상 잠정협약)체결,지석영의 우두 종두법

전파(1879),김홍집을 대표로 한 제2차수신사 파견(1880.5)과 조선책략,신사유람단 파견(1881),위정 척사론과 이재선,안기영이 유생을 동원하여 민씨 척족을 몰아내려고 한 이재선 토왜 반정 음모사건(1881.11.4),

임오군란(1882.6.9),한성순보 창간(1883.10.31),제물포 조약(1882.8.30),태극기 사용(1882.8.22),우정국 설치및 갑신정변(1884.12.4-6),한성조약(1885.1.9),텐진조약(1885.4.18),거문도 사건(1885),동학교단의 삼례집회(1892.11),보은집회에서 교조신원운동(1893.3),금구집회(1893.3),갑오농민전쟁 (1894-1896).

청일전쟁 도발과 민씨정권 무터뜨리고 대원군과 개화파의 연립 정권 수립(1894.6.21),갑오개혁(1894.12-12.6),김홍집 내각 붕괴,청일전쟁(1894.7.25-1995.4.17),을미사면및 단발령(1895.8.20),아관파천(1896),

서재필의 환국 후 독립 신문 창간,독립 협회 발족(1896.7.2),고종의 독화 사건(1898),대한제국 선포(1897.

10.12),경인선 개통(1899),러일전쟁(1904-1905),일진회 설립(1904.8.20),제1차 한일협약(1904.8.22),

경부선 철도 개통(1905),을사늑약 체결(1905.11.17),천도교 창시(1905),통감부 설치(1906.2-8),국채보상운동(1907.2-1908.7),헤이그 밀사사건(1907.4.20)으로 일제에 의한 강제 폐위(1907.7.19)된 혼란스러운가운데 27대 순종에게 양위(1907.7.20)되었고,

한일합병조약(1907.9.29)으로 고종은 황제에서 왕으로 격하되어 유폐되었으며,

한일신협약 (정미7조약;1907.7.24)을 체결하여 한국의 내정과 외정권의 대부분을 통감부가 장악했다.

의병 봉기(정미의병;1907.8.1)가 일어났다.

일본의 대한제국 병탄(일제 강점기1910.8.29)  이후인 1919년 1월 21일에 덕수궁에서 68세의 나이로

죽었는데 그의 독살설은 3.1운동의 한 계기가 되었다.


고종은 즉위 초에는 조대비의 수렴청정,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영향력 속에서,

친정을 시작한 후로는 민씨 척족의 전횡 속에서 자신의 정치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였고,

세계 열강들의 이권 다툼의 와중에서 조선의 주권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그러나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일본의 불법적인 침략 행위를 세상에 알리려고 하는 등 조선의 자주 독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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