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지도자 아부 바크로 알바그다드 사망              작성일자; 2020.03.02.월요일,맑음

 

2019년10월27일,

드럼프 미국 대통령은

IS 지도자  아부 바크로 알바그다드가 시리아 북부 이들립 지역에서

미군 특수부대의 작전 과정에서 폭탄을 터트려 자폭하여 사망 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ISIL,IS)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이라크,시리아를 중심으로 활동한 '잔인한 테러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2011년12월5일,이라크 전쟁이 끝나자 내전이 시작되었고 

2014년2월,8개월간의 권력 투쟁 이후  IS는 알카에다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시리아 내전이 계속되면서 데이르에조르 주,락까 주,알레포 주의 대부분과 홈스 주의 동부를 점령했다.  

2014년6월에는,이라크에서 대규모 공세로 두 번째 도시인 모슬을 장악하고,티크리트를 점령하기도 하였다.

2017년10월17일,미군의 지원을 받은 시리아 민주군이 라까까지 점령하자

   IS는 시리아와 이라크 전역에서 축출당해 사실상 소멸에 접어들었다.

2019년10월27,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는 피신하여 은둔하여

  인터넷과 라디오를 통해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알리며 지하드를 지속할 것을 촉구했다.

  시리아의 이들리브에 있는 그의 은신처를 파악한 미국이 델타포스를 투입해 공격했고,

  결국 스스로 폭사하여 가족들과 함께 사망했다.

 

 

 

  

 

 

 

가수 설리 사망                                2020.03.02.월요일,맑음

 

2019년10월14일.

경기도 성남시의 자택에서 목을 매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가수며 배우인 설리(최진리,생졸'1994년3월29일~2019년10월14일)는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울 청담초등학교,청담중학교를 졸업 후 서울공연예술고둥학교 연기예술과를 졸업하였다.

2004년 부산 중부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 연기 아카데미를 다니다,

2005년,SBS 드라마 이병훈 감독의 '서동요'에서 어린 선화공주 역으로 캐스팅되어 배우로 데뷔하였다.

2009년,SM엔터테인먼트 오디션에 발탁되어 4년의 연습생을 거쳐 5인조 걸 그룹 f(x)의

멤버가 되어 가수로도 활동하였다,

2015년8월7일,팀을 탈퇴하여 소속사는 SM엔터테인먼트에서 연기 활동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2019년10월14일, 경기도 성남시의 자택에서 목을 매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사인은 자살이었다.

 

 

 

 

화성 연쇄 살인범 이춘재        작성일자; 2020.03.02.월요일,맑음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은

1986년9월15일부터 1991년4월3일까지 6년  동안 경기도 화성의 일대에서 일어난

13세부터 71세까지 여성10명을 연쇄적으로 강간,살해한 사건이다.

공소 시효가 만료 될 때까지 범인을 검거하지 못해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이형오 유괴사건 함께 한국의 3대 미제 사건 중 하나다.

 

2019년10월1일,

  이춘재는(1963년1월생) 1994년5월6일과 9월,청주지법1심,2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1

1995년1월16일,

  대법원 재판부는 이춘재가 처제를 계획적으로 살해하였다고 볼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고 판결하면서 

  2심으로 파기 환송되어 같은 해 열린 재상고심에서 무기 징역으로 형량이 확정되어 수감 중이던

  10월1일에,이춘재는 기존 사건 10건 포함 모두 14건의 진범이라고 자백하면서 들어나게 되었다.

  그는 수감생활 동안 1급 모범수로 구분되었고,

  도예 활동을 잘해서 수감자 도자기 전시회에 직접 만든 도자기를 출품하기도 했다.

 

최초의 사건은 1986년9월15일에 1차 발생했고

마즈막 사건은 1991년4월3일에 일어났다.

공소 시요흔 15년으로 2000년대 초, 중반에  모두 만료되었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은 제1차에서 10차까지 사건 내용은 아래와 같다.          

제1차; 1986년9월15일,오전6시20분, 안녕리 목초지 이 모(71)씨

   수원에서 열무 등을 팔고 안녕리의 딸 정 모씨의 집에서 잠을 자고 귀가 중 목이 졸려 살해

   당한 채로 발견되었으며 하의가 벗겨져 있었지만 강간의 흔적은 없었다.

제2차; 1986년10월20일,오후10시, 진안리 농수로 박 모(25)씨

   결혼 상담 차 송산 모친의 집에 갔다가 귀가하기 위해 버스 타러 가다 강간 피살 되었고,

   발견 당시 알몸 상태였고 성폭행 흔적이 있었다. 하체에는 심한 상처가 남아 있었는데

   사체의 모습이 너무 끔찍해 큰 충격을 줬다.

미수; 1986년11월30일,집 주변 논길에서 김 모(45)씨가 범행을 당했지만 생존했다.

제3차; 1986년12월12일,오후11시, 안녕리 축대 권 모(24)씨  

   7시50분께 수원에서 남편 김 모씨와 헤어져 혼자 귀가하던 중 피살됐다. 

   발견 당시 하의가 벗겨지고 양손이 묶여 숨진 채 발견됐다.

제4차; 1986년12월14일,오후11시, 관항리 농수로에서 이 모(23)씨

   수원에서 선을 보고 오후 10시께 버스타고 정남에서 내려 귀가하던 중 강간 피살되었다.

    발견 당시 스타킹으로 목이 졸려 숨졌다.

제5차; 1987년1월10일,오후8시50분, 황계리 논바닥에서 홍 모(18)양

   수원에서 친구와 헤어져 오후 10시35분께 황계리에서 버스에서 내려 귀가 중  피살됐다.

   발견 당시 입에 재갈이 물리고 양손이 뒤로 묶인 시신으로 발견됐다.

제6차;1987년5월2일,오후11, 진안리 야산에서 박 모(30)씨

   남편을 마중 나갔다가 강간 피살됐다. 

   발견 당시 브래지어 끈과 블라우스로 목이 졸린 시신으로 발견됐다.

제7차; 1988년9월7일,오후9시30분, 가재리 농수로에서  안 모(52)씨

   오후 8시40분께 수원에서 분식집 일을 마치고

   마을 입구에서 버스에서 내려 귀가하던 중 강간 피살됐다.  

   발견 당시 상의가 벗겨지고,양말과 손수건으로 입에 재갈이 물려진 채 시신으로 발견됐다.

제8차; 1988년9월16일,새벽2시, 진안리 피해자방에서  박 모(13)양

   안방에서 잠을 자다 강간 피살됐다.

   제8차 사건은

   1987년7월25일, 피의자 윤 모(22)씨가 검거되어 범인으로 유죄를 확정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20년으로 감형되어 2009년 출소했다.

   하지만 2019년 다른 죄목으로 복역중이던 이춘재가 자신의 범행임을 실토한 후,

   경찰이 재조사에 착수하여 2019년11월15일,이춘재의 범행인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제9차; 1990년11월15일,오후6시30분, 병점5리 야산에 김 모(13)양

   오후5시께 하교 후 병점 지하도에서 친구와 헤어져 귀가 중 강간 피살되어 목졸려 숨졌다.

   1990년12월4일,제9차 피해자 김 모양의 삼촌 김 모(당시 33세)씨에게 부산 우체국의 소인이 찍힌

   범행 개요가 적힌 편지 3장이 배달됐다.

   편지에는 '범인은 김양 동네와 가까운 공장 사람,나이는 10대 아니면 30대,사정상 이름을 밝히지 못함,

   수사에 참고하기 바람'이라고 써있었다.

   경찰은 편지를 보낸 사람이 범인 또는 범인을 잘 아는 주변 인물이라고 보고 수사를 했지만

   정체를 밝히는 데는 실패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소재가 된 사건이 바로 이 9차 사건이다.

제10차; 1991년4월3일,오후9시, 반송리 야산에서 권 모(69)씨

     수원의 딸 집에 갔다가 오후8시께 동탄에서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던 중 강간 피살됐다.

 

 

 

검찰총장 윤석열                     2020.03.02.월요일,맑음

 

제43대 검찰총장 윤석열(생졸;1960년12월18일~ )은 

서울 연희동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 윤기중은 공주 출신으로 연세대 교수로 어미니 또한 이화여대 교수로 만나 결혼했다.

대광초등학교를 졸업하고,중량중학교 2학년 말 전학하였다.

1979년,충암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79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재학 중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과 관련한 모의재판'에서 검사로 출연해

대통령 전두환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모의재판 후 이 일로 한동안 강원도로 도피했다.

1980년과1981년,

두 차례 병역 검사를 연기했다가 1982년 부동시로 병역 면제를 받았다.

1991년,

대학4학년 때 사법시험에 떨어진 후 6년간 낙방하고,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23기로 수료 후

1994년, 검사로 임용되었다.

2013년4월부터,

수원지검 여주 지청장 때 '국가정보원여론조작사건' 수사팀장으로

검찰 수뇌부의 반대에도 국정원 압수 수색을 단행하고 직원을 체포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과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윤석열은 국정감사 증인으로 나와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2017년5월19일,문재인 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되었고

2019년7월25일,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제43대 검찰총장에 임명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이 조국 사태와 관련해서 강압적인 수사를 하는 반면,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 나경원에게 시민단체가 7차례나 고발했지만,

검찰이 수사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 인사 청문회                작성일자; 2020.03.02.월요일,맑음

 

2019년9월6일,오전10시,

  2019년8월9일에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을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하여 국회 법사위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 인사 청문회가 열렸다. 

 청문위원은 위원장 자유 한국당 여상규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더불어민주당 소속 송기헌,금태섭,김종민,박주민,백혜련,이철희,정성호,표창원 의원 등 8명,

 자유한국당 소속 김도읍,김진태,이은재,장제원,정점식,주광덕 국회의원 등 6명,

 바른미래당 소속 오신환,채이배 국회의원 2명 등,

 무소속 박지원 국회의원 1명이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 인사 청문회에서

딸의 대학 입학과 관련한 문제와 가족 소유의 우동 학원.가족들이 투자한 사모펀드로 인하여

사퇴 요구를 받았으나 

2019년09월9일,문제인 대통령은 조국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서초동 조국 수호 촛불 시위와 광화문 조국 사퇴 촛불 시위가 양분한 국민의 갈등속에

2019년10월14일, 조국은 문재인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 지명 후 35일만에 사퇴하고 말았다.


조국(생졸;1965년4월6일~)은 

부산에서 태어나 1976년,구덕초등학교,1979년,대신중학교,1982년,혜광고등학교를 졸업 후

1986년 서울대 공법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만16세11개월의 최연소 나이로 입학인 점에서 화제가 되었고,서울대 재학 중에는 

학생 운동에 참여하였다.

1989년, 서울대 대학원 법학 석사 학위을 받았다.

1991년, 서울대 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을 취득했으며,

1995년, 미국 버클리 법학대학원 법학석사 학위을 취득했다.

1989년에서 1990년까지 장교로 군복무를 마쳤다.

1992년3월, 울산대학교 법학과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교수로 재직 중 남한 사회주의 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에 연루되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6개월간 수감되었다.

  재판 당시 천정배 변호사가 변호인단을 맡았으며,

  제1심 재판장은 김황식 전 국무총리였다.

1998년, 영국 옷스퍼드 대학교,리즈 대학교에서 방문학자로 연구하였고

2000년, 동국대 교수를 역임하고,

2001년12월부터,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였다. 

2000년 이후,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부운영위원장으로 시민 운동에 참여하였다. 

2000년,동국 대학교 교수를 거처

2001년12월 이후, 서울 대학교 교수에 재직하였다.

2005년부터 2006년까지 미국의 하버드 엔칭연구소에서 방문학자로 연구하였다.

2007년12월, 대법원장 추천으로 국가 인권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2017년5월11일,문재인 정부 초대 민정수석으로 임명되면서 서울대 교수직을 휴직했다.

2019년7월26일,민정수석에서 퇴임하였다.

2019년8월1일,민정수석에서 물러나면서 서울대에 복직했으나

2019년9월9일,2019년8월9일에 법무부 장관 후보에 지명되면서 서울대를 휴직하였다가

2019년10월15일,법무부 장관에서 사퇴하면서 다시 복직하였으나

2020년1월19일자로 서울대 측으로 부터 직위 해제되어 조국은 강단에 설 수가 없다.

2019년10월24일,

  서울지법은 조국의 부인인 정경심 교수를 입시비리,사모펀드비리,증거인멸 등 11개 혐의로

  구속 수감되어 수사 중이다.

2019년12월23일,

  검찰은 조국이 유재수 감찰 무마 혐의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12월26일 기각되었다.

2019년12월31일,

  검찰은 조국에 대해 자녀 입시비리,사모펀드 불법 투자,증거인멸 등 12개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 윤석열 검찰총장(좌)과 조국(우) 전 법무부 장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파기 환송        작성일자; 2020.03.03.화요일,맑음

 

2019년8월29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구속된 박근혜 전 대통령,최순실,삼성 부회장 이재용에 대하여

상고심에서 파기 환송 되었다.

 

이재용이 최순실에게 제공한 말 3마리가 뇌물로 인정한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선고에서,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에게 공여한 뇌물액을,

항소심 인정액인 36억3484만원보다 50여억원 많은 86억 8081만원이라 판단했다.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형을 선고했던 1심의 뇌물액인 89억 2227만원과 유사한 수치다.

2018년2월의 항소심은 1심을 뒤집고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었다. 

  

대법원은 또한 항소심과 달리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며

삼성 그룹의 최대 현안이었던 '승계 작업'에 도움을 요청한 '부정한 청탁'을 했다고 봤다. 

대법원은 원심 파기환송 결정을 내림으로써
 
이날 선고로 뇌물액이 크게 오르고
 
승계 작업이란 청탁 혐의까지 인정돼 이 부회장에 대한 실형 선고 가능성이 커졌다고 전망한다.  
 
    
대법원이 이 부회장에게 항소심과는 전혀 다른 판단을 내린 쟁점은
 
이재용 부회장이 최순실의 딸 정유라씨에게 제공한 말 3필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냐는 것이었다.   

말 3필의 액수가 34억 1797만원에 달해 소유권이 최씨측으로 넘어가면
 
이 부회장의 뇌물 공여액이 많이 늘어난다.  
 

대법원장은 말 3필의 소유권이 삼성전자가 아닌 최씨에게 있다며,
 
2015년11월15일,최순실이 박원오 전 승마협회 전무에게 역정을 냈던 사건을 언급한다.
   
최순실씨는 이날 독일에서 삼성 전자가 제공한 말을 넘겨받으며,
 
마주란에 '삼성 전자'가 쓰여있자 "이재용이 박근혜 전 대통령) 만났을 때 말 사준다고 했지,
 
언제 빌려준다고 했냐"고 박 전무에게 역정을 냈다.  
 
최순실씨는 박상진 당시 삼성 전자 사장에게 '당장 독일로 들어오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한다.
 
박 사장은 '결정하시는 대로 지원해 드리겠다는 것이 우리 입장 입니다'고 답한다.

당시 최순실씨와 삼성전자 박상진 사장의 대화가 대법원 판결의 결정적 근거가 된 것이다.   

대법관3명은 이 부회장의 항소심과 마찬가지로 박상진 사장의 대답은

최씨의 요구사항을 지원해 주겠다는 것이지 소유권을 넘긴것으로 볼수 없다는 반대 의견을 밝힌다.  

대법원은 이재용 부회장이
 
최순실씨가 운영하던 동계 스포츠 영재 센터에 제공한 지원금16억2800만원도 뇌물로 인정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승계 작업에 도움을 받겠다는 의사를 갖고 '부정한 청탁'을 했다고 본것이다.

항소심에선 박근헤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 사이에
 
승계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청탁이 오가거나 두 피고인간의 청탁에 대한 인식이 뚜렷했다고 볼 수 없어
 
'부정한 청탁'이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대통령의 권한과 영향력이 막강함으로
 
청탁의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더라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직무와 이재용 부회장의 자금 지원 사이에
 
대가 관계만 입증되면 된다고 밝혔다.
   
이재용 부회장이 집행 유예를 받으려면
 
파기 환송된 쟁점은 물론 모든 감형 사유에서 재판부가 이재용 부회장에게 유리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상소심에서 심리한 결과

원심 판결에 파기의 사유가 있어서 원심 판결이 지지될 수 없다고 인정된 경우에는

상소 법원은 이를 파기해야 하는데

이 경우에 원심 판결이 파기되면 동 사건에 대하여 새로이 재판하여야 할 필요가 생긴다.

 

이 재판을 상소 법원 자신이 하는 것을 파기자판이라 하고,

사건을 원심 법원(상고심에서는 제1심법원) 환송하여 거기서 재판하도록 하는 것을 파기환송이라 한다.

 

 

 

 

 

한국 지소미아 파기           작성일자;  2020.03.02.월요일,맑음

 

2019년8월22일,

한국은 일본과의 군사적인 동맹 국가

또는 친밀한 관계에 있는 두 국가 또는 여러 국가 간의 비밀 군사 정보를 제공할 때

제3국으로의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연결하는 협정인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GSOMIA)을 파기하였다.

이는 일본이 8월2일에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배제하자

한국은 일본의 경제보복을 이유로 협정 종료를 결정했으나,

2019년11월23일, 협정 종료 통보 효력을 정지시켜 일단 잠정 연장되었다.    

지소미아는 국회 비준이 필요한 정식 조약은 아니고 행정 협정이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GSOMIA)은

한국과 일본간에 체결된 군사정보보호 협정으로 약칭으로 지소미아라고 부른다.

 

1980년대 노태우 정부 때부터 한국 정부가 일본에 요청을 했지만 일본이 거부하여 왔으나.

2010년10월, 일본 정부가  요구를 하여

2016년11월23일, 박근혜 정부때 체결했다.

2019년에 한국과 일본은 7차례 대북 정보를 교환했다.

 

한.일 지소미아는 한국이 일본과 맺은 유일한 군사 부문 협정이다.

우리 측은 탈북자나 북중 접경 지역 인적 네트워크 등을 통해 얻은 정보를 제공하고,

일본 측은 정보수집 위성, 이지스함,지상레이다,조기경보기 등으로 취득한 신호 정보를

공유해왔다.

과거에는 조총련의 활동이 활발한 일본에 북한 고위층에 대한 휴민트가 많았다.

군사 정보를 타국에 전해 주려면 지소미아를 사전에 체결해야만 한다.

한국은 조총련을 통한 북한 고위층 정보를 일본에게서 얻으려고 노력해 왔다.

2019년 현재는 일본 조총련의 활동이 거의 사라지고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휴민트가

매우 중요해졌다. 즉, 일본이 한국에 정보를 요구할 것이 많아졌다.

 

2019년8월22일,

문재인 정부는 당초에는 협정 유지 입장이었지만 일본의 경제보복을 이유로 협정 종료를

결정했다. 

 

한일 지소미아는 유효기간 1년으로,

유효기간 만료 90일전 서면으로 연장 여부를 통보한다.

2019년10월2일,한국이 지소미아를 통해 일본에게 미사일 정보 공유 요청을 했다.

2019년11월23일, 협정 종료 통보 효력을 정지시켜 일단 잠정 연장되었다.

 

미국은 지소미아가 북한의 핵미사일을 대비하는데 매우 중요하다는 입장으로,

한국 정부에게 유효기간 만료일 전에 종료 결정을 번복하라고 요구했다.

한국 정부는 2014년에 한.미.일 3국이 체결한 정보공유약정(TISA)가 지소미아를 대체할 수 있다고 보지만,

미국은 전혀 그렇지 않으며 TISA는 사실상 아무 쓸모가 없다고 말했다.

미국 상원에서는 한국 정부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연장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발의 되었다.

또한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 지소미아 폐기는 한국 정부의 오판이라고 비판했다.

 

 

 

 

 

 

일본 화이트리스트 목록 제외     작성일자; 2020.03.02.월요일,맑음

 

2019년8월2일,

일본은 한국이 2004년 부터 미국,영국 등 26개국과 함께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대상국가에 선정되어 왔으나

한국에 대하여 화이트리스트(White list) 목록에서 제외되자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은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거부하고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대단히 무모한 결정

이라고 하며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화이트리스트(White list)란

일본의 경우 이를 '백색국가'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안전 보장 우호국'을 뜻하며,

안전 보장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첨단 기술이나 물품,전자 부품을 수출할 때,

상호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허가 신청이 면제되는 국가를 의미한다.

 

2019년8월2일,

일본은 한국에 대하여 백색국가,

즉,화이트리스트 대상국가에서 배제한다는 결정을 내림으로 국제적인 분쟁으로 확산되었다.

일본은 '백색국가'라는 명칭도 없애고,

전략 물자 수출관리 국가를 '그룹 A·B·C·D'로 분류하기로 했다.

이에 2019년9월18일,

한국 정부는 일본이 백색국가 목록에서 제외되는 개정 '전략 물자 수출 입고시'가 시행되자

기존의 백색 국가인 '가' 지역을 '가의1'과 '가의2'로 세분화하고 일본을 '가의2'로 분류했다.

'가의1'에는 기존 '가' 지역 29개국 중 일본을 제외한 28개국은 백색국가의 혜택이 유지된다.

'가의2'로 분류된 국가는 개별수출 허가를 신청할 때 신청서,전략물자 판정서,영업 증명서,

최종 수하인 진술서,최종 사용자 서약서 등 5종의 서류를 추가로 제출해야 한다.

 

일본 경제 산업성이 관장하는 전략 물자 수출 허가는

개별허가; 개별 물품·기술 수출 건마다 받아야 하는 것으로 유효기간 6개월 혹은 연장이 가능.

포괄허가; 일괄해 허가 하는 것으로 유효 기간이 3년 인것으로 나누는데

 

포괄 허가 중에는 화이트 리스트(white list)라고 불리는 일반 포괄 허가가 있다.

화이트 리스트(White list)는

물품·기술의 민감도(평화·안전 유지를 위협하는 정도)가 비교적 낮은 수출 품목은

화이트리스트 27개국에 한정해서 포괄적(특정 목적지)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우대하는 제도다.

수출 절차상 신속한 통과를 돕고,

일본 자국 기업은 수출 납기를 단축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화이트리스트는 `안전 보장 우호국`이라고 하며,

자국의 안전 보장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첨단 기술과 부품 등을 수출할 때,

수출 허가 절차에서 우대를 해주는 국가를 말한다.

 

2019년8월2일,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 명단에서 제외하는 개정안을 의결했으며,

2019년9월18일,

  한국도 일본의 조치와 수출 규제안에 맞서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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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한국당 원내 대표 나경원      작성일자; 2020.03.02.월요일,맑음

 

나경원(생졸;1963년12월6일~)은 판사 출신으로  4선 국회의원이며,

자유 한국당 초의 여성 원내대표다.

 

나경원 전 원내대표는홍신학원 설립자이자 이사장인 나채성의 4녀 중 장녀로 서울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1976년,계성초등학교 졸업

1979년,숭의여자중학교 졸업

1982년,서울여자고등학교 졸업

1986년 서울대 법학과 졸업,서울대 대학원 법학 석사,대학원 국제 법학 박사 수료 하였다.

 

초등학교시절 서인석에게 오디션을 통해 발탁되어 연극부 활동을 하기도 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여고 시절에는 2학년 전체에 1등을 차지할 정도로 3년 내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국제법을 전공하였으며

 

1992년, 30세에 사법 시험에 합격했다.

같은 학교 동기인 김재호와 결혼하여 1남 1녀를 두었으며, 딸은 다운증후군이 있다.

사법 연수원 24기로 수료하고

1995년,사법 연수원24기로 수료하고 지방법원 판사에 임용되어 4년간 근무하였다.

1999년 인천지방법원, 2002년 2월 서울행정법원까지 총 7년 6개월간 판사로 재직하였다.

2002년, 제16대 대선 기간, 이회창의 요청에 따라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정치에 입문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여성 판사가 판사를 그만두고 정치권에 뛰어든 것은 추미애 이후 이후 두 번째다.

나경원은 ‘소신 판결을 해온 이회창 후보를 법관 시절부터 존경해 왔다’고 밝혔다.

2003년 3월 이회창이 대선에 패배하자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다.

2011년 7월 법무법인 마른에서 실제 변호사 업무를 하진 않았지만, 주요 구성원이었다.

2003년 7월 10일, 한나라당 운영위원으로 선출되면서 다시 정치계에 등장했다.

이후 한나라당에서 활동하며 12월 29일에는 17대 총선을 앞두고 공천심사위원으로 임명되었다.

2004년 3월 30일, 비례대표 11번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뛰어 들어 당선되었다.

당선 직후 교수 출신 당선자들과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정책을 공부하며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을 갖추어 나갔다.

당선자 연찬회에서는 “감동을 주는 정치를 하겠습니다”라고 포부를 밝였다.

2004년5월 12일에는 중도개혁보수를 지향하는 초재선의원의 모임인 ‘푸른정책연구모임’의 발족과 동시에

참여하였다.

당초 문화관광위원회에 지원했지만 정무위에 배정되었다.

나경원 의원은 딸이 다운증후군을 앓는다는 이유로 차별을 당한 경험을 살려

국회의원과 장애 아동 부모 및 전문가 등이

의견을 나누는 연구 모임 '장애 아이, We Can'을 만들어 회장을 맡기도 했고,

한나라당 장애인복지특위 위원장을 역임하며,

장애인 처우 개선을 포함한 복지·인권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나 의원은 17,18대 국회의원 임기 동안 성년이 된 장애인이 부모가 없더라도 후견인의 도움을 받아

재산을 관리하고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게 하는 내용의 ‘장애성년 후견법안’1건과

각기 다른 내용의‘특수교육진흥법 일부개정안’4건을 대표 발의해, 5건 모두 대체입법으로 통과시켰다.

이 외에도 10건의 장애인 관련 및 특수교육 관련 법안을 공동발의한 바 있다.

 

2004년, 국정감사에서 나경원은 금융감독위원회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승인을 적극 검토하려 했다는

금감위 내부 문건과 증권선물위원회의 자문기구인 감리위원회의 민간 위원 대다수가

국민은행 김정태 전 행장의 중징계에 반대했었다는 의사록을 공개했다.

국정감사 기간 중 당시 여당이 제기한

이명박이 시장이었던 서울시가 수도 이전 집회를 위한 관제 데모를 위해

5억원을 사용했다는 의혹이 허위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2004년 ,국정감사 기간 뒤 2005년 1월 20일 원내부 대표로 임명되며

이어 2월에는 당 윤리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이후 나경원은 한나라당의 공보부 대표로 활동하며,

한나라당의 사학법 통과에 반발하거나 검찰의 X파일 수사가 공정하게 진행되었다는

당의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 나경원은 출자 총액 제한제 법안 폐지를 골자로 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 후 나경원은 오세훈 후보 서울시장 캠프에 합류하였고,

이 후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전여옥에 이어 나경원을 유기준과 함께 한나라당 공동대변인으로 임명했다.

나경원은 당대변인으로서 일하며 김병준 교육부총리 논문 이중보고를 비판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조카의 바다이야기 판매회사 근무와 관련한 의혹제기를 했다.

또, 전효숙 헌법 재판관의 헌법재판소 소장 임명과 관련해

절차와 인물을 들어 반대한다는 당의 입장을 전하기도 했고,

노무현 대통령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관련된 언급과 관련

"노무현 대통령은 입만 열면 설화를 일으키는 개구즉화"라는 당을 대변하는 논평을 남기기도 했다.

2008년 3월,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1년 8개월 동안 맡아왔던 대변인 자리에서 물러나고

 이어 앵커 출신 신은경과 대결을 펼쳐 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나경원은 한나라당의 제6정조위원장을 맡았다.

 또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한나라당 간사 의원을 맡기도 했다.

나경원은 경찰이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차를 불심검문한 것과 관련,

2008년 9월 4일 공직자의 종교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의 국가공무원법 및 지방공무원법을 제출했다.

또 어청수가 사퇴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나경원은 2008년 8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장,

이동관 대변인과 함께 국정원 2차장과 회동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후 11월 3일 나경원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하였다.

이 개정안은 공공연하게 사람을 모욕하는 정보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가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 등에게

취급거부, 정지, 제한명령을 할 수 있도록 했고,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사람을 모욕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이 법안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사이버 모욕 행위는 명시적 기준이 없어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2009년 새해부터 미디어 관련 22개법을 놓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첨예한 대립을 앞두고 있을 때,

이 법안을 담당하는 국회 문방위의 한나라당측 간사였던 나경원은 그 중심에 서 있었다.

나경원은 1월 22일 "미디어 관련법은 1월 여야 합의정신과 국회법에 따라 처리할 계획"이라고 말했으나

결국 문방위의 위원장이었던 한나라당 고흥길은 2월 25일 기습상정으로 이 법안들을 통과시킨다.

이 후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협상과정에서,

나경원은 안상수 원내대표가 제안한 민주당의 시행 유보안에 대해서도

"대기업과 신문사도 지상파에 진입시키는 것이 원칙"이라며 강경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010년 제5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에서 서울 시장에 출마하기 위해 한나라당 경선에 도전하였으나

오세훈 후보에 패배하고, 대신 오세훈 선대위원장으로 합류하여 지방 선거 승리를 이끌었다.

34대 서울 특별 시장 오세훈이 2011년 8월 24일 실시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무산된 것에 따른 책임을 지고

8월 26일 시장직을 사퇴함에 따라 치러진 서울특별시장 보궐 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2011년 10월 26일 개표 결과 박원순 후보가 약 215만여 표를 얻어 53.4%의 득표율을 나타냈고,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가 약 186만여 표를 얻어 46.2%의 득표율을 나타내어 낙선했다.

이후 나경원은 여의도 당사 기자회견을 통해

"어차피 당이 공천 안 했을 것"이라며 인터뷰를 남기고 4.11 총선에 불출마했다.

2014년 7월 30일 재보궐 선거에 정몽준 의원의 서울특별시장 출마로 인해 공석이 된

서울 동작구 을 지역구 보궐선거에 출마하여 야권 단일 후보로 나선 노호찬 전 정의당 대표를 꺾고 당선되었다.

7.30 재보궐 선거에 당선됨에 따라 나경원은 새누리당 내 유일한 여성 3선 의원이 되었고,

상임위는 외교 통일위원회를 배정 받았다.

이후 2015년2월26일,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 유기준 의원이 해양수산부에 내정됨에

공석이 된 외교통일위원장을 정두언 의원과 경선을 벌여 135표 중에 92표를 얻어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에 당선되었다.

이는 헌정 사상 외교 통일 분야 상임위에 여성 의원이 처음으로 선출되었다.

 

나경원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국회의원이었던 2008년부터 스페셜 올림픽 유치를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스페셜 올림픽의 유치와 준비를 위해 자신이 가진 정치적 자산들과 인맥을 모두 활용하는 한편, 정

부 관계자와 의원들을 설득해 대회 유치를 결의했다.

 

2010년 9월 15일,

대회의 평창 유치를 발표할 때에는 전설적인 체조스타이자 스페셜 올림픽 이사회 부의장인 나디아 코마네치의

선언문 발표에 이어 아놀드 슈워 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성화를 전달받았고,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평창 스페셜 올림픽 참석의 뜻을 밝혔다.

대회를 100일 앞둔 2012년 10월 21일에는 걷기대회와 전광판 제막 행사를 여는 등

스페셜올림픽의 성공과 홍보를 위해 노력했다.

걷기대 회는 강원도 대관령 일대와 청계천에서 진행됐으며,

특히 ‘청계천 걷기대회’는 ‘피겨여왕’ 김연아를 비롯해 ‘마라톤영웅’ 황영조, 양준혁 SBS 해설위원,

심권호 LH스포츠단 레슬링 코치 등 스포츠 스타와 남경주 뮤지컬 배우 등 유명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대회에 앞서 세계 각국에서 온 선수단이 다양한 문화 체험을 통해서

국내 적응을 돕고자 ‘호스트 타운 프로그램’을 실시하기도 했고,

지적장애인과 비장애인 스타들이 함께하는 통합스포츠 프로그램 등의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을 시행하였다.

더하여 스페셜 올림픽 개최 사상 처음으로 지적 장애인들의 권리 보호를 위한

국제 정상 회담인 ‘글로벌 개발 서밋’과 ‘세계 청소년 회담’ 등의 국제회의도 열었으며,

특히 개발 서밋에서는 세계 지적 장애인들의 권익 보호와 이를 위해

국제사회의 협력을 촉구하는 ‘평창선언’을 채택했다.

이러한 노력에 이어 ‘Together We Can’이라는 슬로건 아래 진행된 평창 스페셜 올림픽은

전 세계 106개국 3,000 여명의 선수단이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됐다.

흥행 면에서도 7일 동안 진행된 8개 종목의 경기에 하루 평균 3만명, 총 20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최다 관중 동원을 기록했다.

국제스페셜올림픽위원회 전략기획수석 피터 월러는 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을 일컬어

“모든 부문에서 역대 최고의 대회로 기획, 조정, 무대 준비, 홍보가 모범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실제 대회 이전 0%에 가까웠던 지적 장애인과 스페셜 올림픽에 대한 인지도가

71%(’13. 2. 2., 미디어리서치, 전국 1,000명)까지 상승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평창 동계 스페셜 올림픽의 성공은 지적장애인 선수들과 비장애인들이

모두 하나가 되는 행사라는 평가와 함께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의 초석을 다진 대회로 평가됐다

한편 나경원은 SOK(스페셜올림픽코리아)의 회장으로서

다양한 문화행사를 개최, 발달장애인들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해 노력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걸으며

서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투게더 위 워크(Together We Walk)’ 행사를

지난 2012년부터 매년 개최하고 있으며

2014년 10월에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장애인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슈퍼블루' 캠페인의 선포식을 갖고,

이어 2014년 12월에는 소외된 계층인 장애인들과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 홍보를 위한 ‘2014년 슈퍼블루 캠페인 가두홍보’ 행사를

명동 입구에서 진행하기도 했다.

2015년 10월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달리는 슈퍼블루 마라톤 대회를 열었고,

이를 발달장애인들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서로에 대한 편견이 없어질 때까지 매년 개최할 예정이다.

스페셜올림픽 기간 동안 매일 진행된 발달 장애인 음악회가 효시가 된

‘스페셜 뮤직&아트 페스티벌’을 2013년 평창 동계 스페셜 올림픽 세계대회를 기념하기 위한 레거시 사업으로

추진, 온전히 발달장애 아티스트를 위한 페스티벌로는

전 세계 유일한 국제발달장애예술축제로서 매년 그 명맥을 이어가며

2015년까지 꾸준하게 3회에 걸쳐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15년 7월에는 SOK(스페셜올림픽 코리아)의 회장이자 국제스페셜올림픽위원회의 이사로서

한국 선수단을 이끌고 2015 LA 스페셜올림픽에 참가해 12개 종목에 출전해

금메달 35개 은메달21개 동메달 25개로 총 81개의 메달을 따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2015년 2월,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이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에 선출됐다.

국회 외통 위원장에 여성 의원이 선출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국회는 26일 본회의에서 보궐선거를 진행해 208표 중 176표를 얻은 나경원 의원을

새로운 국회 외통위원장에 선출했다고 밝혔다.

나 의원은 당선 인사에서 "우리 외교가 녹록치 않다.

정부와 국회가 소통과 협업을 통해 여러 가지 산적한 현안들을 풀어가겠다"면서

"남북관계를 풀어 나가서 통일의 초석을 놓는데 국회가 앞장서도록 노력하겠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서 10년간 미뤄온 북한인권법도 반드시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나 의원은 앞서 이날 오전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진행된 외통위원장 후보 경선에서

총 135표 가운데 92표를 얻어 43표 득표에 그친 정두언 의원을 누르고 후보 자리를 거머줬다.

 

그가 취임하던 2015년에는

리퍼트 미국 대사 피습 사건을 포함해 독도 문제에 대한 일본의 교과서 도발,

일본 근대산업시설(군함도 한국인 강제징용시설)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주한미군 탄저균 배달 사고, 프랑스 파리 테러 등 유난히 외교 분야에서 국가적 난제들이 돌출된 해였다.

나경원은 정치 활동 초기부터 북한 인권문제와 관련한 활동을 이어왔다.

초선 의원이었던 17대 국회에서 이미 ‘(UN) 북한인권(참여촉구) 결의안’을 최초로 제출했다.

북한인권문제의 국제적 이슈화는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감시하고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유엔 북한인권사무소’의 건립으로 이어졌다.

나경원은 2015년6월23일‘유엔 북한인권사무소’(서울 유엔인권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하는 한편,

자이드 라아드 알 후세인 유엔 인권최고대표와 만나 북한인권 증진 및 보호에 더욱 힘써줄 것을 당부하고

향후 공조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한편 19대 국회에서도 여전히 협의점을 찾지 못해

10년째 계류 중인 북한인권법의 통과를 위해 꾸준히 야당의 합의를 촉구하고 있다.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의 피습 사건과 관련해서는 미국 의회에 서한을 보내 유감과 위로의 뜻을 표하고

한미동맹 강화를 당부하였다.

또한 외교 통일위원장으로서 11월 30일 외통위 전체 회의를 열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 등을 처리하였다.

이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일로,

한-중 각국 정상 협상 타결 후 1년 만에,

정식 서명한지 6개월 만에 한중 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통과(본회의 가결)라는 성과를 내었다.

또한 일본이 조선인 강제노동시설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나경원은 명확하게 반대의견을 고수했다.

나경원은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일본 정부의 조선인 강제 징용 시설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규탄 결의안'을 의결하는 한편,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 의회를 대상으로 서한을 발송, 등재 저지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국회 차원의 협조를 요청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왔다.

이후 유네스코 사무총장인 이리나 보코바를 만나 우려를 전달하거나 외통위원회 소속 위원들을 중심으로

대표단을 구성, 위원국들을 방문하는 방문외교를 통해 꾸준히 등재 반대를 위한 노력을 펼쳤다.

또한 외통위원장으로서 멕시코를 방문하여,

양국 간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하려 노력하는 등 다양하고 즉각적인 외교활동들을 펼치고 있다.

북한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앞서 언급한 북한 인권 문제나 북핵 문제에 관해서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는 동시에

통일 외교의 중요성과 북한의 동시 발전을 강조하는 투 트랙 외교를 보여주고 있다.

 

2016년 1월6일 북한이 제4차 핵실험을 강행한 것과 관련해서는

'북한의 제4차 핵실험 규탄 및 핵폐기 촉구 결의안'을 제안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통과시켰다.

통과된 규탄 결의안에서 "북한이 우리나라와 국제 사회의 거듭된 우려와 경고를 무시하고

제4차 핵실험을 강행한 것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이러한 도발행위 및 핵보유 시도는 남북관계는 물론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를 넘어 국제사회 전체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미·러 주한대사들과 만나 북핵 제재 UN 안보리 결의를 요청하고,

EU연합 회원국 대사들을 국회로 초청, 北제재 결의안 위해 적극적 역할을 해줄 것을 당부하는 등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이어 미국의 핵심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 및 헤리티지재단 관계자들과 면담을 갖고,

북핵문제 대응을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한편 통일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프랑스 파리를 방문할 때는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에게 북한 방문을 제안하면서

북한의 문화유적 발굴 사업에 대한 유네스코 차원의 관심과 지원을 당부하기도 했다.

또한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를 만나

“북한의 개혁, 개방을 위해 IMF 등 국제금융기구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이를 위해 ‘대북 기술원조’ 및 ‘IMF-세계은행 연차총회 북한초청’ 등의 경제협력 방안을 제안했다.

또한 남북 문화교류의 하나로 개성 만월대를 방문하는 등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한 노력도 병행했다.

 

2016년,12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에 찬성 결의하였다.

2018년12월12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103표 중 68표를 얻어서 35표를 얻은 김학용 의원을 제치고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하지만 선거제 개혁안과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 설치안 등의 패스트트랙 지정에서

자유한국당의 선진화법 위반 논란과 이어진 국회공전,

국회 정상화에 대한 여야 원내대표 간 합의안의 의원총회 추인 실패 등

원내 대표로서의 정치적 협상력과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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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 트랙                  작성일자; 2020.03.02.월요일,맑음 

 

2019년5월12일,

한국 국회법 제85조 2(안건의 신속처리)를 달리 부르는 말.

사안의 시급성에 따라 입법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정한 법적 절차를 말한다.

 

 

패스트 트랙으로 지정하려면,

국회 재적의원의 2분의 1 이상이나 소관 상임위원회의 2분의 1이상의 찬성으로 지정을 요청하고,

재적의원의 5분의 3이나 상임위원회의 5분의 3이상의 찬성으로 지정된다.

지정이 되면 지정된 법안 심의 과정에서 유보되지 않고 자동 처리되어 본회의에 상정된다. 

 

국회에서 중요성과 긴급성이 있는 특별한 안건을 신속하게 처리하도록 한 법적 절차.

사안이 긴급하고 중요한데도 국회에서 통과가 지연될 경우,

법안이 신속하게 처리될 수 있도록 국회법에서 상임위원회와 본회의의 처리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 과반 의석을 차지한 다수당의 독자적인 법안 처리가 쉽게 가능할 수 있으므로

법안 통과의 요건이 일반적인 의결보다 높게 규정되어 있다. 

 

재정 이유는

2012년 5월 개정된 국회법에 반영된 '국회선진화법'의 주요 내용 가운데 하나이다.

기존의 국회법에서는 정당간 합의가 어려운 법안이 상정되었을 때,

국회의 심의 과정에서 장시간이 소요되거나 아예 유보된 상태가 되어,

법안의 적용이 필요한 시기에 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따라 여러 이유로 신속한 처리가 필요한 안건을 '신속처리대상안건'으로 요청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를 따로 '패스트 트랙'이라고도 부른다.

신속처리대상안건으로 지정된 경우에는

법에 정한 심의 기간이 경과하면 자동적으로 다음 단계의 입법 절차가 진행되도록 되어 있다. 

 

패스트 트랙으로 어떤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해당 법률안을 다루는 상임위원회 전체 위원의 과반수의 서명이나

전제 국회의원 정수의 과반수 이상의 서명으로 그 법안을 패스트 트랙으로 상정할 것을 요청할 수 있다.

이 경우 의장이나 소관 상임위원회 위원장은

지체 없이 지정 여부에 대하여 무기명 투표로 표결하도록 하며,

소관 위원회 재적위원의 5분의 3 이상,

혹은 재적의원의 5분의 3 이상의 찬성이 되면 신속처리대상안건으로 지정된다. 

신속 처리 대상안건으로 지정되었을 경우,

해당 법안은 상임위원회의 심의(최장 180일), 법사위원회의 검토(최장 90일), 본회의 부의(최장 60일)을

거쳐 본회의에 상정된다.

이 때 기간 내에 처리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록 하여,

법안의 심의 과정이 지연되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신속처리대상안건으로 지정되는 과정에서

이미 소관 상임위원회와 국회 재적의원의 5분의 3 이상의 찬성을 얻도록

요건이 까다롭게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 적용되는 사례는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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