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양 용추 계곡           산행일시; 2007.07.27.금요일.맑음

 

 

 

 

 

 

 

 

 

경남 함양 용추계곡

위치; 경남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소개;

   맑은 계곡과 울창한 원시림을 간직한 용추계곡은 옛부터 '깊은 계곡의 아름다움에 빠졌던 곳' 이라 하여 

  '심진동'이라 불리우기도 한다. 용추계곡 입구에 들어서면 심진동의 진수라 할 수 있는 심원정이 있다.

   유학자 돈암 정지영이 노닐던 곳에 그 후손들이 고종 3년(1806년)에 세운 정자로 이곳에 오르면

   마음까지 맑아 진다는 청신담과 층층이 포개진 화강암 무리가 한눈에 펼쳐진다. 

   도로를 따라 오르면 계곡의 곳곳에 전설과 유래를 적은 현판들이 세워져있다.

   심원정을 지나 3km가량 들어가면 넓은 주차장 뒤로 장수사 일주문이 있다.

   신라 소지왕 9년 각연대사가 창건하였으나  6.25 전쟁으로 소실된 장수사.장수사의 흔적은 일주문만을 남긴채 

   복원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용추사'앞에 이르면 화난 용이 몸부림치듯 힘차게 떨어지는 물줄기는 사방으로 물방울을 튕겨내어 장관을 이루는 

   용추 폭포가 있다.

   용추폭포에서 약 30분을 걸어 올라가면 상사평 마을이 나온다.

   남덕유산의 줄기인 기백산과 황석산을 등반할 수 있는 등산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탐방일자; 2007.07.27.금요일 맑음

탐방코스; 매표소-심원정-장수사 일주문-용추폭포-용추사-사평 마하사

탐방시간; 2시간

가는 길;

   대구  성서 홈플러스-성서IC-남대구IC-옥포 JC-88고속도 거창 IC -함양(무주)-함양(산청)방면-용추 계곡 표시판

 - 매표소-심원정-일주문

   (네비; 안의면 하원리 1202번지-93km.1시간35분 소요.통행료 2,900원)

 

이미지 보기

▽ 안의면 신안리 에 위치한 용추계곡 입구에 들어서면 안내판을 제일 먼저 만난다.

    용추 자연 휴양림,용추사,용추계곡 등

 

 

△ 용추 계곡으로 들어가는 도로를 따라 골말마을과 안심 마을,내동 마을을 지나 자동차로 3 km(도보 45분) 정도 들어가면 

 

 

▽ 매표소를 지나면 기백산 능선이 보이는 널찍한 주차장이 나온다.

 

▽ 뒤돌아 본 매표소

 

 

▽ 주차장에서 우측으로 용추계곡으로 들어가면 심원정이 나온다.

    심원정으로 가기 전 좌측 으로 바라보면 용추계곡 위로 기백산이 보인다.

 

 

▽ 구암 위에 위치한 용추계곡의 관문인 심원정에 도착한다.

심원정은 거제 부사 였던 지영 선생을 기리기 위해 제자인 제헌이 1558년 창건한 정자다.

 

 

▽ 농암과 청심담

 

 

▽ 상류엔 제궁폭포가 있다.

 

 

▽ 심원정에서 나와 주차장을 지나 250m 조금 오르면 대형 주차장이 있는 연암 물레방아 공원이 나온다.

 

▽ 연암 물레방아 공원에는 물레방아와 정자가 있다.

 

 

 

▽ 계곡을 따라가는 도로로 간다.

 

 

 

▽ 연암 물레방아를 지나 800m 가면 정자를 만난다.

 

 

▽ 정자를 지나 차도를 따라가면

 

 

▽ 옛장수사터 일주문이 나온다.

 

 

▽ 옛 장수사터 일주문

 

 

▽  용추 계곡으로 가는 길은 이 곳 일주문에서 갈라진다.

      일주문 아래를 지나 기백산 등산로 입구로 하여 용추사 다리로 하여 용추사로 가는 방법과

      일주문 가기 전 좌측의 용추사 입석 옆을 지나 용추폭포로 하여 용추사를 탐방 후 용추사 다리로 건너는 방법이 있다.

      두 방법 모두 용추다리에서 만나면 된다.

 

▽ 먼저 일주문 아래를 지나 기백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입구를 지나 용추다리로 가는 방법을 가보자 .

 

 

▽ 울창한 숲길을 따라 가는 용추사 계곡을 따라 가는 길이다.

 

 

▽ 용추 폭포 상층부를 바라보면서 지난다.

 

 

▽ 용추사로 가는 계곡을 건너는 다리에 도착하는 방법과

 

 

▽ 또다른 방법은 용추사 입석으로 하여

 

 

 

▽ 용추 폭포를 들린 후

 

 

 

▽ 상공에서 본 용추사와 용추 폭포 모습

 

 

▽ 용추사 경내로 들어가 탐방 후

 

 

▽ 용추사 경내 모습과 뒷편으로 보이는 직벽 암벽

 

 

▽ 경내를 나와 용추 폭포 상류로 가는 계곡길을 따라 가면

 

 

▽ 계곡을 건너는 다리를 건너면

 

 

▽ 용추사에서 오는 산행길과 만난다.

 

 

 

▽ 선녀 폭포로 가는 길

 

 

▽ 사평 마을에 도착하여 되돌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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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 용추 계곡      산행일시; 2007.07.27.금요일.맑음

경남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사평마을)에 위치한 용추계곡은  

맑은 계곡과 울창한 원시림을 간직하고 있는 계곡이며 등산도 함께 즐길수 있는 곳이기도하다.

용추계곡은 "깊은 계곡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진리삼매경에 빠졌던 곳" 이라 하여 "심진동" 이라 불리기도 한다.

유학자 돈암 정지영의 후손들이 고종 3년 (1806년)에 세운 것으로 수수하고 고풍스런 정자에 오르면 마음까지

맑아진다는 청신담과 층층이 포개진 화강암 무리가 한눈에 펼쳐진다.

이 곳에서 도로를 따라 오르면 계곡의 곳곳에 전설과 유래를 적은 현판들이 세워져 있다.

용추계곡 탐방코스는 매표소를 지나 심원정-장수사 일주문-용추폭포-용추사-사평 마을 까지 2시간이면 탐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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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토속적 풍경들            작성일자; 2007.07.21.토요일,맑음

 

 

토속적이라는 것은 자기의 것이라는것과 같다.

즉, 신토불위라는것이다.

우리네 산천은 가장 아름다운 곳이며 내가 살고 살아야 하는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그 터에서 살아있는 잇는 모든것 그것이 바로 토속적 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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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성 화원 유원지            산행일시; 2007.05.19.토요일.맑음

 

 

 

 

 

 

 

대구 달성 화원 유원지         산행일자; 2007.07.20.금요일,맑음

 

 

 

 

 

 

 

 

 

 

대구 달성 화원 유원지        산행일자; 2007.05.19.토요일,맑음

 

 

대구 중심 시가지에서 남서쪽으로 15.2km 떨어진 곳인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성산리 130번지에 위치한 화원 유원지는

낙동강의 푸른 강물과 강변에 넓게 펼쳐진 백사장이 수려하여 이 일대에 유원지가 조성되었다.

강변의 동쪽 산정은 신라시대에 군량미 창고가 있었던 곳으로 성터와 조선시대에 봉화를 올렸던 봉수대가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배로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화원에서 교역한 왜물고가 있었다.

유원지 주변에는 밤나무숲이 우거져 있으며 사문진 나루터와 위락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대구시민의 주말 관광지로 이용된다.

1979년(주)금복주에서 조성하여 1993년 대구시에 기부한 시민으로 부터 사랑받는 대자연 휴식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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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성 화원 유원지 

위치;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성산리 310번지

소개;

   신라시대로부터 아름다운 동산"화원"으로 불려진 화원동산은   

   1979년 (주)금복주에서 조성하여 1993년 대구시로 기부 체납 되었으며 시설관리공단에서 수탁 관리하고 있다.

   단에서는 수경시설(폭포)설치,산책로 조성,화장실 개선,전통문화 체험공간, 고분정비,전통 가옥 정비등 연차별

   시설 투자를 통해 볼거리를 창출하고 이용시민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노력하여 왔다.

   왜관에서 흘러 내려온 동강은  다사읍에서 화원에 이러르서는 유유히 흘러 간다.       

   성산리에 위치한 화원읍은 구마 고속도로 화원 나들목에 가까이 위치 하고 있어 손쉽게 갈수 있다.       

   경치가 아름다워 ,신라 시대 경덕왕이 감상한 곳인 상화대가 있으며 30여개의 고분이 있다.       

   전망대.잔듸광장,고분,팔각정,수영장, 동물원이 있다.

산행일시; 2007.05.19.토요일.맑음

산행코스;

    주차장-나룻터-주차장-수변 산책로-모감주 나무 군락지-화원정 -상화토대-포토죤-전승기념비-전망대-송사정

   -만남의 광장-104계단-동물원-후문-야생화 식수지-쉼터-성산동 고분(수영장)-연자방아-분수-주차장

가는 길;    

   대구 성서 홈플러스-남대구 IC.성서 4차공단-진천네거리(화원)-유천교-화원 삼거리-화원유원지 주차장 

   (네비; 대구 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성산리 310번지-9km,20분소요)

 

이미지 보기

▽ 구라2교에서 본 화원 유원지 상화대(전망대)와 저멀리 보이는 사문진교의 모습

화원유원지가 들어선 성산은 북쪽으로 낙동강과 맞닿은 절벽이 있는 천연 요새였으며,

옛날 동서남편에 성을 쌓아 전쟁에 대비했다고 하며 지금도 토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는 신라 선덕왕때 축조한 것으로 그 모양이 잔과 같이 생겼다하여 '배성','잔뫼'라고 불렀으며,

성산이란 명칭도 이때 산에 성이 있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라 한다.

성의 주변에는 30여기의 고총과 고분이 있으며 삼한시대 성읍 국가 왕족들의 무덤으로 추정한다.

 

▽ 화원 삼거리에서 다산 방면으로 가다 사문진교를 건너기 전 우측으로 가면 화원 유원지 주차장이 나온다.

     화원 유원지 탐방 코스의 들머리는 넒은 공간이 마련된 주차장에서 시작한다.

 

 

주차장에서 사문진교가 있는 방향으로 내리서면 나룻터가 나온다.

    나룻터에서 본 낙동강과 금호강의 합류지점과 고령 다산의 아파트와 다사의 아파트가 관망된다.

    낙동강이 강정에서 금호강을 만나고  다시 진천천과 합류하여 달성 습지와  넓은 모래 사장을 만들었다.

    주변에는 버드나무숲와 강변이 어우려저, 한 때 대구 시민의 행락지로 사랑 받았던 사문진 나룻터와 

    화원 유원지가 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인 1932년 9월, 일본 침략과 새 문명의 침투를 상징적으로 그린 

    대구 계성 고등학교 출신 이규환 영화-단성사에서 개봉된 "임자없는 나룻배" 가 이곳에서 촬영했다는 사실이다.

 

 

▽ 사문진 나룻터에서 본 사문진교

     2009년 총사업비 400억원을 들여 옛사문진 나룻터위로 교량 780m,연결도로  670m를  2차로에서 4차로로 확장 개통한

    사문진교

 

 

▽ 낙동강에서 낚시를 하는 모습도 보인다.

 

 

▽ 사문진교 아래를 지나면 운동장 등 각종 체육 시설이 마련돼 있다.

 

 

▽ 다시 주차장으로 되돌아 와

 

▽ 주차장에 마련된 안내판에 전망대/매점 방향으로 가면

 

 

▽ 전망대가 보이는 잘 정비된 블록 시멘트길인 수변 산책로가 나온다.

 

▽ 우측 아래로 큰 잔듸 광장이 구비되어 있으며

 

 

▽ 수변 산책로 좌측으로 화원정도 만난다.

 

 

▽ 월남 참전 기념비를 지나

 

▽ 쉼터 의자를 지나면

 

 

▽ 신라 35대  경덕왕의 행궁이 유상한 상화토댁길을 지나

 

 

▽ 우측 넓은 공간에 상화대 십경 10경 시문 입석이 있다.

 

 

▽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면 

 

 

▽ 사문진교가 보이는 멋진 조망터가 나온다.

 

 

▽ 조망터을 지나면 포토죤 전망대가 나온다.

 

 

▽ 전망대에서 보는 사문진교

 

 

▽ 강정 고령보 방향의 낙동강

 

 

▽ 낙동강 화원 습지

 

 


▽ 포토죤을 지나면 만나는 전망대인 4층 상화대

신라 35대 경덕왕은 가야산에서 수양중인 세자를 문병 가는길에 이곳의 아름다움에 반해 아홉번을 들렀다하여

마을 이름이 "구라리" 인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경덕왕은 이곳에 행궁을 짓고 이름을 "상화대(賞花臺)"라고 했다.

 

 

 

▽  4층에 오르면

 

 

 

 

 

 

△ 전망대(상화대)에서 아래로 본 인도

 

 

▽ 전망대(상화대)에서 본 낙동강과 금호강 합류지점

 

▽ 전망대(상화대)에서 본 고령 강정보

 

 

▽ 상화대에서 아래로 본 바닥

 

 

 

▽ 전망대를 떠나 만남의 광장으로 가는 중간 우측으로 있는 송사정이다.

 

 

▽ 송사정을 지나 시멘트길을 따라 내려서면 

 

 

▽ 우측의 만남의 광장과

 

 

▽ 좌측으로 동물원이 있다.

 

 

▽ 동물원을 돌아나와 시멘트길을 따라 내려서면 야생화 시패지에 도착한다.

 

 

▽ 시멘트길을 따라 주차장 방향으로 내려가면

                                 

 

▽ 화원 성산리 제2고분군을 지난다.

 

 

 

▽ 수영장을 지나

 

 

▽ 연자 방아를 지나

 

▽ 분수대를 지나

 

▽ 주차장에 도착하여 화원 유원지 탑방은 종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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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의의 난과 함흥차사          작성일자; 2007.07.20.금요일,맑음

 

조사의의 난은 1402년 안변부사 조사의가 동북면(함경도)에서 일으킨 반란을 말한다.

조사의는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세자 방석이 희생 되자 벼르고 있다가

3대왕인 태종 1402년.태상왕 태조 이성계의 위세를 등에 업고 봉기한 사건이다.

 

명분은 죽어서도 학대 받은 계비 신덕왕후 강씨(방번,방석의 어머니)의 원수를 갚는다는 것이었다.

이때 신덕왕후 강씨의 조카 강현도 참여하였다.

조사의는 신덕 왕후 강씨의 친척으로1393년 형조에서 의랑(정사품 벼슬)을 지냈고,

1397년 첨절제사(각 진영에 속했던 무관직) 등을 지냈다.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 나면서 직위 해제 되었고,

서인으로 전락하여 전라도 수군에 배치되어 노역에 종사하였다.

 

이성계의 영향으로 이후 풀려나 1402년 안변 부사로 복권 되었다.

이성계는 조사의가 신덕왕후의 친척이라고 아꼈는데,

태종 이방원은 이점을 알고 그를 풀어주고 안변부사로 보냈으나,

부임지인 안변(함경남도 안변군에 있는 면)에서 호족세력들을 규합하여 반란을 도모하였고

이성계는 조사의를 지지하였다.

 

조정에서는 태조 이성계를 설득하기 위해 박순,송류 등을 파견하여 반군을 회유 하였으나,

도리어 죽음을 당하였다.

초기에는 반군이 우세하여 관군의 선봉 이천우가 격파되었고,

조사의의 반란군은 평안도 덕천·안주로 이동시켰으며 군사는 1만 명으로 늘어났다.

1402년11월17일.청천강에서 진압군과 싸움이 벌어 졌으나 조사의가 이끄는 반란군이 대패하고 말았다.

사기가 저하된 부하들이 뿔뿔이 이산하자 안변에 돌아 왔으나 아들 조홍과 함께 관군에 잡혀

12월07일. 도성으로 압송 되었다가 12월18일 참형되었다.

함흥차사의 고사(古事)가 바로 이 사건에서 연유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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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와 위화도 회군        작성일자; 2007.07.20.금요일,맑음

 

 

고려 우왕대에 집권 했던 이인임의 보수 귀족 세력은

1388년에 관료들의 원성을 샀고 결국 최영·이성계 등의 무장세력에 의해 제거되었다.

이후 최영과 이성계는 각각 시중·수시중에 올라 정치를 주도했다.

그런데 중국을 통일한 명나라가 한때 철령 이북이 원나라의 영토였다는 이유로 무리하게 반환을 요구하여 서로 대립했다.

이에 최영은 명과의 실력 대결을 주창하여 우선 전진 기지를 확보하기 위해 요동을 점령함으로써 명의 압력을 배제하고자 했다.

 

1388년 최영·이성계 등의 무장 세력은 귀족 세력을 제거하고 정치를 주도했는데,

명나라의 철령 이북의 반환요구를 둘러싸고 반목하였다.

최영은 요동정벌로 명의 압력을 배제하고자 했고 이성계는 4불가론을 내세워 이에 반대하였다.

4불가론은 군량미,군사 규모에서 명과 차이가 크다는 점,

농번기의 전쟁은 농민의 호응을 받기가 어렵다는 점,

왜구의 침입이 증대할 것이라는 점,

장마철은 시기상으로 전투에 불리하여 군사들이 희생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최영과 우왕은 요동 공격을 감행했고,

이성계는 1388년 5월 위화도에 이르렀을 때 회군을 단행하여

최영, 우왕을 몰아내고 창왕,공양왕을 추대하였다.

이 사건은 이성계 파가 권력을 장악하고 조선국의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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