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회 AFC 아시안컵 개막               작성일자; 2020.02.24.월요일,맑음

 

2015년1월9일부터 1월31까지 20일간 호주에서 16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개막 하였다.

대회 결과는

주최국인 오스트레일리아가 우승하였고,

준우승은 한국이

3위는 UAE,

4위는 이라크가 차지 하였다.

 

아시안 게임(FC Asian Cup)은 아시아 축구연맹(AFC)이 주관하는

4년마다 열리는 아시안 국가 대항 축구 대회이다.

원래 아시안컵은 1956년부터 2004년까지 4년마다 열렸다.

그러나 아시안컵보다 인기가 더 높은 하계 올림픽과 UEFA 유럽 선수권 대회가

같은 해에 열리고 있기 때문에 AFC는 개최 주기를 변경하였다.

그 첫 대회가 2007년 14회 대회였다.

이후 이전처럼 4년간 열리게 되어 2011년, 2015년과 같은 식으로 열린다.

 

근래에는 전 대회 1~3위 팀과 다음 대회 개최국 및 2개의 AFC챈린지컵 우승 팀 등

총 6팀이 다음 대회의 자동 본선 진출권을 갖는다.

나머지 AFC 가맹국들은 별도의 예선을 통해 본선 진출권을 얻으며,

자동 본선 진출국까지 합하면 아시안컵 본선에는 총16개 국가가 진출할 수 있다.

2019년 대회 부터 본선 참가국이 16개국에서 24개국으로 늘어나면서 진출권 배정 방식이 대폭 변경되었다.

이에 따라 개최국만 자동 본선 진출권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FIFA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에 진출한 12개국이

AFC 아시안컵 예선을 치르지 않고 본선 진출권을 가지게 된다.

만약 개최국이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에 진출하면

12개국만 예선 없이 본선 진출권을 가지게 되고,

그러하지 아니할 경우 13개국이 예선 없이 본선 진출권을 가지게 된다.

 

AFC 아시안컵 예선은,

개최국과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참가팀을 제외한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탈락국들이 참가한다.

플레이오프를 거쳐 24개국을 선별한 뒤 6개조에 4개국씩 나뉘어 예선을 치러,

각조 1위와 2위팀이 AFC 아시안컵 본선 진출권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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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ISIL, IS)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이라크의 북부와 시아파 세속주의 정권이 집권하고 있는 시리아의 동부를 무력으로 점령하고 극단적인 수니파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무장 테러 단체이다.


IS는 무자헤딘 슈라 위원회,알카에다 이슬람 지부,쟈시 알파티헨,준드 알샤하바,카트비얀

안사르 알타위드 왈 수나흐,제흐 알타이파 알만소라 등 대형 조직을 포함하여,

수니파의 지원을 받고 있다.


주로 이라크,시리아를 중심 거점으로 삼아 활동하고 있으며,

국제적으로도 추종 세력들을 받아 들여,

예멘,이집트,팔레스타인,나이지리아,방글라데시,파키스탄,사우디아라비아,알제리,튀니지,

아프가니스탄,리비아,니제르,러시아,소말리아,필리핀,프랑스,보스니아 헤르체고니아,벨기에,이란.터키 등에서 IS의 테러와 공격이 있음이 확인되었다.



국제 사회에서는 '잔인한 테러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알카에다'는 '서구 문명을 중동에서 추방하고 이슬람 낙원을 건설하자'는 구호를 내세웠지만

'IS'는 칼리파 국가 건설의 구호를 내세웠지만,

이슬람의 입장에서 보면 모독적인 이단 행위를 저지르는 집단으로 보였다.



1999년,이슬람국JTJ(유일신과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조직되어, 

2004년6월, 알카에다에 충성을 맹세하고 현재의 이름인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ISIL,IS)'

으로 조직 명칭을 변경하며 제정일치의 칼리파 국가 선포를 주장하며 본격화되었다.

이라크 시리아 이슬람국(ISIS),다에시 등으로도 불리는데,

'다에시'는 테러리즘 단체가 국가를 '참칭'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에서

미국,러시아,이란,이라크,시리아 등이 부르는 '멸칭'이다.


이라크 전쟁(2003년3월20일~2011년12월5일)이 끝나고, 

후세인 정권이 무너졌고 그 후세인 정권의 잔당은 이슬람국을 조직했다.

2012년 말까지, 단체 세력이 커지면서 2,500명으로 증가했다.

2013년, 알자지라에서 알카에다의 지휘관인 '아이만 알자와힐'은 이슬람국의 시리아 진영을 해산시켰다고 말했고,

시리아 진영의 지도자인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는 이를 거부하였다.

2013년4월부터, 시리아 북부를 점령하기 위해 신속히 병력을 배치하고 . 

2014년2월, 8개월간의 권력 투쟁 이후 알카에다는 IS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이라크 전쟁이 고조되면서 안바르 주,니나와 주,키르키크 부,살라딘 주의 거의 대부분,

바빌 주,디얄라 주 및  바그다드 주의 일부분을 점령하면서 이라크의 중요한 세력으로 부상하였다. 그러면서 수도를 바쿠바라고 주장하였다.

시리아 내전이 계속되면서 데이르에조르 주,락까 주,알레포 주의 대부분과 홈스 주의 동부를 점령했다.

2014년6월,

이라크에서 대규모 공세로 두 번째 도시인 모슬을 장악하고,티크리트를 점령했다.

IS는 이라크의 수도인 바그다드를 점령해 수도로 삼을 것을 목표로

2014년9월 말, 바그다드에서 1.61 km 부근까지 진격하기도 하였다.

2017년, 모술과 팔루자,하위자,마야딘 같은 주요 지역을 잃으면서 급격히 쇠퇴하였다.

2017년10월17일,

미군의 지원을 받은 시리아 민주군이 라까까지 점령하자

IS는 시리아와 이라크 전역에서 축출당해 사실상 소멸에 접어들었다.

2019년 3월 23일,

시리아 민주군이 바구즈 시를 완전히 점령함으로써 '국가'로서의 IS는 완전히 궤멸되어

점조직화된 잔당들만 남았다.

2019년10월26일,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는 피신하여 은둔하여 인터넷과 라디오를 통해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리며 지하드를 지속할 것을 촉구했다.

시리아의 이들리브에 있는 그의 은신처를 파악한 미국이 델타포스를 투입해 공격했고,

결국 스스로 폭사하여 가족들과 함께 사망했다.

2019년11월1일,

IS가 지도자의 사망을 인정하고 새로운 후계자 '아부 이브라힘 알하셰미 알쿠라이시'를

세워 미국에 복수를 다짐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종결                   작성일자; 2020.02.24.월요일,맑음

 

2001년10월7일,미국에 의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여 시작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2014년12월28일에 종결되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국 역사상 12년13개월이란 가장 긴 전쟁으로 분류 된다.

 

 

1996년,제2차 아프가니스탄 내전에 승리한 탈레반 정권은 폭압 정치를 하였다.

탈레반에 저항하는 무자헤딘 잔당과 군벌들 간의 제3차 아프가니스탄 내전으로 수백만 명이 사망하였다.

 

2001년,9.11테러 이후

미국 대통령 부시는 탈레반에게 오사마 빈라덴의 인도와 알카에다의 축출을 요구했다.

오사마 빈 라덴은 1998년부터 미국에 의해 이미 수배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탈레반은 빈라덴이 9·11 테러에 개입한 명백한 정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도를 거부하였고,

다른 관련자들의 인도 요구도 묵살했다.


이슬람 테러 단체  알카에다에 의한 9.11터러가 발생하자

미국 부시 대통령은 군사 보복으로2001년 9월14일,

하원으로부터 테러와의 전쟁을 위한 예산을 추가 배정하였다.

2001년9월16일,탈레반 정권에 알 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인도를 요구하자

2001년9월18일,탈레반 정권은 국경 지역과 영공을 폐쇄하고 병력을 증강 배치시켰다.

2001년10월7일,아프가니스탄 전쟁은 9.11 테러 사건의 보복의 일환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 하였다.

침공 초기에는 캐나다,영국의 지지를 받았으나,이후 모든NATO회원국을 포함한 40개국의 지지를 받았다.

전쟁의 일반적 목표는 알카에다를 해체시키고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는데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내전에서 탈레반과 맞서 싸웠던 북부 동맹이 두 국가의 연합에 참여했다.

2001년12월,

유엔 안보리는 카블 확보를 비롯한 여러 임무에서 아프간 당국을 지원하기 위해

국제 안보 지원군을 설립했다.

같은 달 본회의에서  하미드 카르자이가  아프가니스탄 잠정 행정부의 지도자로 선출되었다.

2002년 카불의 로야 지르가가 아프가니스탄 임시 행정부가 되었다.

2004년 아프가니스탄 총선에서 카르자이는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국호도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으로 변경되었다..

 

NATO는 2003년 8월부터 국제안보지원군에 개입하기 시작했고,

2003년 말 국제안보지원군의 지도권을 인수했다.

이 무렵 국제안보지원군은 43개국에서 파병된 군대로 이루어져 있었고,

이들 중 다수의 군대가 NATO 회원국에서 파병된 군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일부도 NATO 사령부 예하에서 운용되었고, 나머지는 미국 사령부의 지시를 받았다.

 

초기 침공에서 패배한 이후,무하마드 오마르가 탈레반을 재조직했고,

2003년부터 이들은 정부와 국제안보지원군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다.

무기가 열악했고 수적으로 불리했음에도 불구하고

탈레반,하카이 네트워크,헤즈비 이슬라미 굴부딘을 비롯한 여러 무장단체의 반군들은

게릴라전,교외 매복, 도심 지역에서의 자살 테러,

그리고 변절자들의 살해 등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며 전쟁을 소모전으로 이끌었다.

탈레반은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국가들에 속하는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취약점을 이용했다.

탈레반은 남부와 동부의 교외 지역에서 다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2006년,국제안보지원군은마을 소탕 및 방어 계획인 대반란 작전을 위해 군사를 파병함으로써 이에 대응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폭력이 급속하게 증가했다

국제안보지원군이 탈레반 반군들과 맞서 싸우고 있는 동안,북서 파키스탄 전쟁이 발발했다.

2009년 군대 수가 증가한 이래로,2011년까지 군대 수는 향상세를 보였고,

2011년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과 국제안보지원군에서 활동하는 외국군은 140,000명에 이르렀다.

이들 중 100,000명이 미군이었다.

2011년5월1일,네이비 실은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서 '오사마 빈라엔'을 사살했다.

2012년 5월,NATO 지도자들은 NATO 시카고 회담에서 그들의 군대를 철수하는 것에 지지했다.

유엔 지원 평화 회담이 정부와 탈레반 사이에서 시작되었다.

2014년 10월,영국군이 헬만드 주에 위치한 마지막 기지를 아프가니스탄 군에 인계했고,

이것은 영국군의 전투가 공식적으로 종료되었음을 의미했다.

2014년12월

미국은 그들의 주요 작전이 종료된다는 것과 이들의 잔여 병력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시킬 것을 선언했다.

 

2014년12월28일,

NATO는 공식적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국제안보지원군의 전투 작전권을 종료시켰고,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완전히 책임권을 인계·전환시켰다.

NATO는 ISAF의 계승단체로 RS를 시작했다.

2017년 5월,13,000명의 아프가니스탄 주둔 외국군이 철수에 대한 공식적인 계획 없이 남아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에서 사망했다.

4,000명 이상의 국제안보지원군과 민간인 접촉자들이 사망했고,

15,000명 이상의 아프가니스탄 국가보안군이 전사했다.

민간인도 31,000명 이상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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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12월19일,

'이석기 내란 선동 사건'으로 인하여

헌법재판소에 의한 위헌 정당 해산 심판 결정에 따라 강제 해산 되었던 사건인다.


이석기 내란 선동 사건은

국정원이 통합 진보당 국회위원 이석기가 통진당 경기도당 모임에서,

한반도 전쟁에 대비해 국가 기간시설의 파괴를 위한 준비를 하자는 등의 발언을 했다고

하면서 내란을 음모했다는 것으로 검찰이 고발한 사건이다.


재판부는 최종적으로 내란 음모에 대해서는 무죄,

내란 선동과 국가 보안법 위반에 대해서 유죄를 선고하여 통진당이 해산됐다.

 

2014년2월17일,1심 재판부는

이석기 의원에 대한 내란음모·내란선동·국가보안법 위반 으로 유죄로 인정해 징역 12년에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하고,

나머지 피고인들에게도 징역 4~7년을 선고하였다.

2014년8월11일,2심 재판부는

내란죄를 저지르기 위한 구체적인 합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여,

원심을 깨고, 내란음모 혐의는 무죄로 판단하고 내란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이석기에게 징역 9년과 자격정지 7년을 선고하고,

나머지 피고인들에게도 1심보다 형을 낮춰 징역 2~5년을 선고하였다.

2015년1월22일, 대법원이 2심 재판부 판결을 확정지었다.

2014년12월19일,

이 사건의 여파로 통진당은 언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강제해산되었다.

2015년1월22일,대법원은 이석기 전 의원에 대해 '내란선동'으로 징역 9년 원심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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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작성일자; 2020.02.24.월요일,맑음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은

박근혜 정부에서 정식 직위가 없는 정윤회가

비선 실세로서 국정에 개입한다는 의혹이 담긴 청와대 작성 문건이

세계일보와 박근혜의 동생인 박지만에게 유출된 사건이다.

 

2014년11월28일,세계일보의 김준모,조현일,박현준 기자가 

'정윤회 ‘국정 개입’은 사실'이라는 기사를 내보내며,

정윤회가 이재만 대통령비서실 총무비서관,정호성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대통령비서실 제2부속비서관 등 청와대 내부 인사 6명,

정치권에서 활동하는 청와대 외부 인사 4명 등과

서울 강남권 중식당과 일식집 등에서 만나 청와대 내부 동향과

박근혜 정부 동향을 논의한 것으로 파악 됐다고 보도했다.

세계 일보는 이같은 내용은 11월27일에 입수한 청와대 내부 문건에 따른 것이라고 하였다.

 

2014년11월28일,기사가 나온 후

이재만을 비롯한 대통령비서실 비서관,행정관 8인은 허위사실로 인한 명예 훼손죄로

세계일보 기자 등을 검찰에 고소하였고,

2014년12월3일,정윤회도 같은 이유로 검찰에 고소하였다.

 

세계 일보에 의하면

세월호 참사 사건으로 인하여 홍천에 은거 중인 정윤회가

매월 2회 상경하여 강남 J중식당 등에서

안봉근,김춘식 등으로부터 청와대 내부 동향,정부 인사 동향 등을 보고받고

대통령의 국정 운영 청와대 내부에 대한 자신의 의견 등을 안봉근에게 전달하여

시행토록 하고 있다고 청와대 문건에 기재되어 있다고 하였다.

 

검찰 조사에서

정윤회 및 다른 고소인들은 서로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만난 사실이 없다고 하였고,

또한,이재만,정호성,안봉근 외의 고소인들은 정윤회와 전혀 모르는 사이라고 진술하였다.

정윤회는 이재만과 안봉근과 통화 시 본인 명의의 전화를 사용한 것으로 확인 되었다.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해 문건 작성자인 박관천 대통령비서실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은

박동열 대전지방 국세청장으로부터 들은 말을 그대로 문건에 기재 하였다고 주장 하였으며,

박동열은 ‘이정현이 다른 수석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

김기춘 사퇴설이 있다’는 지라시 내용과 국세청 인사에 대한 개인적 소회 등을 말했을 뿐

비서실장 사퇴설 유포 지시 등 정윤회의 언동은 언급한 적이 없다고 진술하였다.

2015년1월3일,

검찰은 박관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을 무고 혐의로 구속기소,

2015년,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불구속 기소,

서울경찰청 정보분실 소속 경위를 불구속 기소했다.

 

정윤회 문건은

박관천에 의해 만들어졌고 이후 유출되어 문건의 내용을 세계일보가 보도 하였다.

이 문건은 정윤회와와 청와대 비서관 등 10인이 매달 강남의 한 중식당에서 모임을 가지며

국정 운영을 논의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으며,

이 문건의 내용을 조사한 청와대와 검찰은 이 문건이 허위라고 결론 내렸으며,

검찰은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과 박관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에 의해 유출되었다며

두 사람을 기소했다.

이후 2016년,

정윤회의 전 배우자 최순실이 국정에 개입했다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이 발생했다.

청와대가 이 의혹을 보도한 세계 일보의 사장을 교체시킨 혐의는

박근혜 탄핵 소추 사유에 포함되었다.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 제26차 APEC 참가                    2020.02.24.월요일,맑음 

2014년11월10일에서 11월11일까지,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제26차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

하였다.

회원국은 21개국이다.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은 환태평양 국가들의 경제적·정치적 결합을 돈독하게

하고자 만든 국제 기구이다.

1989년11월5일부터 11월7일까지,

오스트래일리아의 캔버라에서에서 12개국이 모여 결성하여 21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1993년부터는 매년 각 나라의 정상들이 모여 회담을 열고 있다.


1989년1우러, 오스트레일리아의 총리 밥 호크는 환태평양 지역 국가들 간의 보다 효과적인 경제 협력을 요청했다.

이를 계기로

1989년11월,오스트레일리아의 수도 캔버라에서 제1회 APEC 회담이 개최되었으며,

오스트레일리아 외교부 장관인 개러스 에번스가 초대 의장을 맡았고,

20개국에서 외교장관이 참석하였으며,

2005년,17회 한국과 2009년,제21회 싱가로르에서 연례 회담을 갖기로 결의하고

외교 장관의 회담은 종료되었다.


초창기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 회원국들은 가입 거절 의사를 표했고,

대신에 미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를 비롯한 비아시아 국가들을 제외하고 설립된

동아시아 경제단체 회원국들에게 가입 제의를 하였다.

이 방안은 아메리카 지역 회원국들로 인해 반대에 휩싸였고,

일본과 미국이 강하게 비난했다.


첫 APEC 경제 정상회담은

1993년,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폴 키팅 오스트레일리아 총리와의 회담을 진행한 뒤,

블레이크 섬에 각 회원국 정부 수장들을 초청하여 개최하였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를 통해 고착에 빠진 우루과이 라운드 통상 협의가 다시 정상 궤도에

올리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였다.

회담에서 일부 정상들은 무역 투자 장벽을 지속적으로 줄여달라고 요청하여,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공동체를 구상하고 협력을 통해 번영을 이끌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후 APEC 기구의 활동을 조직화하기 위한 APEC 사무국이 싱가포르에 설치되기에 이른다.

1994년,인도네시아 보고르 정상회담에서 각국 정상은 보고르 선언을 통해 아태 지역의 무역 투자를 자유화하고 개방하기로 약속하였다

2010년까지는 선진국들이,

2020년까지는 개발도상국들이 이행하기로 결정하였다.

 

1995년에는 APEC 기업인 자문위원회(ABAC)를 설치하고, 각 회원국 출신의 기업인 3인으로 구성하여 자문을 맡도록 하였다.

2001년4월,

APEC은 국제기구 다섯 곳 (유로스타트,IEA,OLADE,OPEC,UNSD)과 합동으로 공동 석유 데이터 '엑서사이즈'를 출범시키고,

2005년,공동 기구 데이터 '이니셔티브(JODI)가 되었다.

 

1989년11월,

APEC은 12개국이 창립 회원국으로 참여했으며, 현재는 21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APEC 가입국은 "국가"가 아닌 "경제 주체" 범위로 참여한다.

APEC 회의장에서는 가입국의 국기를 게양하거나 국명 표시를 하지 않는다.

또한 APEC 정상 간의 회의는 정상회의(Summit)가 아닌 APEC 경제 지도자 회의(Economic Leaders' Meeting)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제17회 아시안 게임 개최            작성일자; 2020.02.24.월요일,맑음

 

2014년 9월19일부터 10월4일까지 15일간 인천광역시에서

아시아 평의회 45개 회원국 전원과 9501명의 선수진을 포함한 13,855명의 선수와

임원진이 참가한 역대 아시안 게임 사상 최대 규모의 제17회 아시안 게임이 열렸다.

인천아시안 게임의 개·폐회식 등은

인천시의 서구 연희동에 위치한 인천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진행되었다.

제17회 인천 아시안 게임 결정은 2007년4월17일,쿠체이트 시에서 개최지가 정해졌다.

 

대회 결과는

중국이 금151개.은108,동83,총342개로 종합 우승하였으며,

한국은 금79개,은71개,동84개,총234개로 준우승을 하였으며,

3위는 일본으로 금47개,은71개,동77개,총200개 였다.

그 뒤를 이어 카자흐스탄,이란,태국,북한 인도,대만에 이어 10위는 카다르였다.

북한 고위급 아시아 게임 참석

 

2014년10월4일,

인천 아시안게임의 폐막식에

북한의 노동당 비서 최룡해,총정치국장 황병서,노동당 비서 김양건이 참석을 통보해 왔고

정부는 이를 수용하였다.

인천에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류길재 통일부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남북 고위급 회담이 열렸고,

10월 말에,제2차 남북고위급 회담을 개최한다는 데에 합의하였다.

 

 

 

◑ 제58차 한.미 정상회담                   2020.02.24.월요일,맑음  

2014년4월25일부터 2014년4월26까지,

한국의 박근햬 대통령과 미국의 오바마대통령 간에 정상회담이 열렸다.

전작권 전환 연기 등에 대하여 합의하였다.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 방한           작성일자;  2020.02.24.월요일,맑음

  

2014년8월14일부터 8월18일까지 5일간 방한하여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을 주례하고,

대전 교구에서 개최하는 제6회 아시아 청년 대회에 참석하였다.

 

2013년3월13일 취임한 제266대 프란치스코 교황(1936년12월17일~)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태생으로

화공학자와 나이트클럽 경비원으로 잠시 일하다가 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생이 되었다.

1969년,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1973년부터 1979년까지 예수회의 아르헨티나 관구관을 지냈다.

1998년,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으로 임명되었으며,

2001년, 추기경에 서임되었다.

2013년2월28일,

교황 베네딕토16세가가 스스로 교황직을 사임한 후에 소집된 콘클라베에서

2013년3월13일,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교황에 선출된 그는

교황으로서의 자신의 새 이름을 아시아의 성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따서 '프란치스코'라고 명명 하였다.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다. 

 

 

 

 

 

◑ 2014년 재보궐 선거 실시                          2020.02.24.월요일 

2014년의 재보궐 선거는 상반기 7월30일,하반기는 10월29일에 치러졌다.

6월에 지방선거가 있어서 상반기 재보궐선거가 4월이 아닌 7월에 실시되었다.

하반기에는 보궐선거만 치러졌다.


상반기인 7월30일 선거는 총 16개 선거구에서 국회위원 15명,기초의회의원 1명의 선거가

실시되었다.

선거결과는

국회위원 총 15석 중

새누리당 11석

새정치민주연합 4석

기초위원 1명 중

새루리당 1명

하반기인 10월29일 선거는 총 2개 선거구에서 기초의회의원 2명의 선거가 실시되었다.

선거결과는

기초의회의원 2석중

무소속 2석이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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