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티브 잡스 타계                   2020.02.16.일요일,맑음

2011년10월5일,

로널드 웨이와 함께 애플의 창업자이며 애플의 최고 경영책임자인 스티브 잡스

(생졸;1955년2월24일~2011년10월5일)가 2003년 무렵 부터 췌장암으로 투병 생활을 이어오다 건강 악화로 향년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976년 로널드 웨인과 함께 애플을 공동 창업하고,

애플2를 통해 개인용 컴퓨터를 대중화 시켰다.

그리픽 사용자 인터페이스인 GUI와 마우스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내다 보고 애플 리사와

매킨도시에서 이 기술을 도입하였다.

1986년,

경영 분쟁에 의해 애플에서 나온 이후 NEXT 컴퓨터를 창업하여 새로운 개념의 운영 체제를 개발했다.

1996년, 애플이 NeXT를 인수하게 되면서 다시 애플로 돌아오게 되었고,

1997년에는,

임시 CEO로 애플을 다시 이끌게 되었고 애플을 혁신해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게 이끌었다.

2001년,

아이팟을 출시하여 음악 산업 전체를 뒤바꾸어 놓았다.

2006년6월,

스티브 잡스는 애니메이션 영화 '인크레더블'과 '토이 스토리' 등을 제작한

컴퓨터 에니매이션 제작사인 픽사의 소유주이자 CEO였다.

월트 디즈니 회사는 자사 주식으로 픽사를 구입하였다.

월트 디즈니 회사가 픽사를 소유함에 따라 최대의 개인 주주이자 디즈니 이사회의 이사가

되었다.

2007년,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스마트폰 시장을 바꾸어 놓았고,

2010년,

아이패드를 출시함으로써 포스트 PC 시대를 열었다.

2011년8월24일,

스티브 잡스는 2003년 무렵 부터 췌장암으로 투병 생활을 이어오다 건강 악화로

애플은 스티브 잡스가 최고 경영책임자(CEO)를 사임하고 최고 운영 책임자(COO)인 팀 쿡이

새로운 CEO를 맡는다고 밝혔다.

잡스는 CEO직에서 물러 나지만 이사회 의장직은 유지시키기로 했으나,

건강 상태가 더욱 악화되어 사임 2개월도 지나지 않은

2011년10월5일,향년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스티브 잡스는

1955년2월24일, 조앤 시블과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폴 잡스와 클래라 헤고피언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친부모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친어머니인 조앤 시블이 위스콘신 대학교 대학원 시절,친아버지인 시리아 명문 집안 출신인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압둘파타 존 잔달리'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 당시 잔달리는 예수회 기숙학교와 아메리칸 대학교를 거쳐 미국의 위스콘신 대학교 정치학과의 조교로 활동할때 어머니 시블을 만났다.

1954년 여름,

시블은 잔달리와 함께 함께 시리아를 방문하였을때 임신을 하게 되었지만,

시블의 아버지가 잔달리와 결혼하면 부녀의 연을 끊겠다고 위협하는 탓에 입양을 결심하게 되었고 위스콘신을 벗어나 샌프란시스코에서 생활하며 잡스를 낳았다.

어머니 시블은 아이가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부부에게 입양되어야 한다고 믿었지만 고등학교 중퇴자 부부인 '잡스 부부'가 아이를 꼭 대학에 보내겠다고 서약서를 써서 보내자 입양 문서에 서명을 하였다.

시블은 그 당시에 위독한 상태였던 아버지가 죽은 후 결혼을 하면 아이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지만 입양 절차가 비밀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20년 후에야 아들을 만나게 된다.

시블의 아버지는 입양 절차가 끝난 몇 주 후에 사망했으며,

그 후 시블과 잔달리는 결혼을 한다.

잔달리는 졸업 후 시리아로 떠났지만 그린베이로 돌아가 모나 심프슨(여동생)이라는 딸을

낳고 살게 된다.

양부모

스티브 잡스의 양아버지인 폴 라인홀트 잡스는 위스톤신 주 저먼타운에서 자랐으며,

점잖고 얌전한 성격을 가진자로 고등학교 중퇴 후에는 기계공으로 일하였으며,

열아홉살 때에는 해안경비대에 입대하여 기계공으로서의 자질을 인정받기도 했다.

클래라 헤고피언은 스티브 잡스의 양어머니로,

뉴저지 주에서 아르메니아 이민자의 딸로 태어났으며 상냥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비밀스러운 과거가 있었는데, 폴 잡스를 만나기 전에 결혼을 하였으나 남편이

전쟁에 나가 사망했다는 사실이었다.

폴 잡스와 클래라 헤고피언은 폴 잡스가 해안경비대에서 제대하면서 동료들과 한 내기로

인해 만나게 되었고, 1946년 3월 약혼을 하였다.

그들은 위스콘신에 있는 잡스의 부모 집에서 같이 살다가 인디애나주로 집을 옮겼고,

그 후 클래라 잡스의 설득으로 샌프란시스코의 선셋디트릭트로 옮겨 생활하였다.

잡스 부부는 행복한 생활을 하였지만, 클래라가 아이를 가질 수 없어

1955년 아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하고, 아이에게 '스티븐 폴 잡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잡스 부부는 잡스가 어릴 적에 입양 사실을 밝혔으며 혼란스러워하는 잡스를 많이 보듬어

주었다.


잡스는 초등학교 시절 학교를 자주 빼 먹는 비행 청소년이자 사고뭉치였다.

잡스의 4학년 담임이었던 하이 힐 선생님이 돈으로 구슬리는 것으로 겨우 학교생활을 하던 그는 히스키트라는 아마추어 전자공학 키트를 얻는 순간 인생의 전환점에 도착하게 된다.

그는 이 키트 덕분에 어려서부터 전자제품의 작동원리를 익히게 되었다.

잡스는 캘리포인아주 쿠퍼티노에 위치한 쿠퍼티노 중학교와 홈스테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12살이었던 고등학교 시절 전화 번호부를 보고 휴렛 패키드사의 CEO인 빌 휴렛에게 전화를 걸어 주파수 계수기를 만들고 싶다며 남는 부품이 있다면 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빌 휴렛은 그 말을 들어주었으며 결국 잡스는 팰로 앨토의 휴렛 패커드사에서 방과후 수업을 들었고 스티브 워즈나악과 함께 휴렛 패커드사에 여름 동안 임시 채용되기도 했다.

1972년에 리드 칼리지에 다니다 1학기만 수강한 후 중퇴하였으며,

1974년에는 캘리포니아로 돌아와 아타리에서 일을 하였다.

후에 워즈니악의 권고로 홈브루 컴퓨터 클럽에 나가게 된다.


◑ 2011'대구 세계 육상권 대회 개최              2020.02.16.일요일,맑음

2011년8월27일 부터 9월4일까지

대구시 대구 스타디움에서 세계 203개국 1,945명(남자1,046명,여자899명)의 선수가 남자 24개,여자 23개 등 47개 종목에 출전하여 열린 제13회 2011' 대구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가 개최되었다.


개최지 신청 국가는

2006년4월4일에,

국제육상 연맨(IAAF)은 미국,한국,오스트레일리아,스웨덴,스페인,러시아,아랍에미리트,

크로아티아,모로코 등 9개국이 유치 신청을 하였다고 발표했다.

2006년12월1일까지

신청 마감한 결과 브리즈번(오스트레일리아),대구,모스코바,예테보리(스웨덴) 등4개 도시가 등록을 마쳤다.

브리즈번은 7월이나 8월에 선수권 대회를 열겼다고 발표했다.

   퀸즈랜드 수포츠 츅상센터 경기장은 1982년 코먼웰스 게임과 2001년 굿윌 게임이 개최된

   곳이었다.

   2009년 대회 때도 유치를 신청했었지만 실패했었다.

대구는 2009년에 이어 두 번째 유치 신청을 했다.

   2002년 FIFA 월드컵 의 세 경기와 2003년 하계 유니버시아드를 개최했었다.

러시아도 모스코바의 루즈니키 스타디움을 개최 경기장으로 내세웠다.

   모스크바는 1980년 하계 올림픽과 2006년 세계 실내 육상 선수권 대회를 개최했었다.

모르코의 카사블랑카,

크로아티아의 스플리트도 개최 후보 도시였으나,

2007년3월27일,

국제 육상 연맹은 몸바사에서 열린 총회에서 대구가 개최지로 선정되었다고 발표했다.


대회 결과

미국이 25개(금 12, 은 8, 동 5)로 가장 많은 메달을 획득하여 우승하였고,

뒤를 이어 케냐가 18개(금7,은8,동3)로 준우승하였다.

3위는 자메치카가 9개(금4,은4,동1)로,

4위는 독일이 8개(금3,은4,동1),

5위는 영국으로 8개(금3,은3,동2)를 회득하였으며,

한국은 동1개로 35위를 차지하였다.


대회 상금으로 총 733만6000달러가 걸려 있다.


개인종목:

   금메달; 6만달러,은 3만달러,동 2만달러,4위 1만5000달러, 5위 1만달러,6위 6000달러, 

              7위 5000달러, 8위 4000달러

계주팀:

   금메달; 8만달러,은 4만달러,동 2만달러,4위 1만6000달러,5위 1만2000달러,

              6위 8000달러,7위 6000달러,8위 4000달러

마라톤

  단체전: 1위 2만달러,2위 1만5000달러, 3위 1만2000달러,4위 1만달러, 5위 8000달러,

             6위 6000달러

세계 신기록: TDK와 토요타의 후원으로 세계신기록자 건당 10만 달러 상금을 받는다. 



◑ 네이트 개인 정보 유출 사건                    2020.02.16.일요일,맑음

2011년7월26일의 네이트 개인정보 유출 사건은

네이트의 데이트 베이스에 저장된 가입자 3500만 명의 개인 정보가 중국 발 해킹으로 인해

돈을 노린 해커가 SK커뮤니케이션즈 내부 개발자PC를 해킹해 유출한 사고다.

네이트를 운영하는 SK커뮤니케이션즈 측에서는 사고 발생 이틀만에야 해킹 사실을 파악

하였다.


사건 이후,

네이버와 다음 등 각 포털 사이트에는  SK커뮤니케이션즈에 보안상 관리 책임을 묻고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집단 소송 카페가 잇따라 개설됐다.

하지만,이번 해킹 사건과 비슷한 옥션 개인 정보 유출 사건이나 GS칼텍스 개인정보 유출

사건의 집단소송의 경우에도 법원은 기업 측의 손을 들어줬던 선례로 기각했다.

2011년8월4일,

경찰청 사이버테러 대응센터는 해커들이 악성코드 유포지로 이용한 곳을 이스트소프트로

지목하고 압수 수색을 실시하였다.

이스트소프트는 한국에서 2번째로 이용자가 많은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 알약을 제공하는 업체로 알려져 있다.

2014년,

대전지법은 423명이 제기한 손해배상소송 판결에서 SK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              2020.02.16.일요일,맑음

2011년7월7일,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열린 123차 IOC 총회에서

한국의 강원도 평창을 개최지로 결정하였다.


한국에서는 최초로 개최되는 동계 올림픽이며,

1988년의 서울 하계 올림픽을 개최한 지 30년 만에 개최된 두 번째 올림픽이기도 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2009년7월31일 까지,

IOC는 2018년 동계 올림픽 개최 후보 도시 신청을 받았으며,

2009년12월에는,

스위스 로잔의 위원회 본부에서 각 신청 도시들의 세미나를 진행하였다.

2010년6월21일,

IOC는 2018년 동계 올림픽 후보지로 한국의 평창,독일의 뭔헨,스의스의 안시를 선정하였다

2011년 부터,

후보 도시 프로필과 증빙서를 제출하였고 IOC 대표단의 해당 도시 방문 평가가 이뤄졌다.

한국의 경우 2010년 동계 올림픽,2014년 동계 올림픽에 이어 세 번째로 동계 올림픽 유치

신청이었다.

2011년7월7일,

IOC는 한국의 평창을 2018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하였다.



◑ 농협 전산망 마비 사태                     2020.02.16.월요일,맑음

2011년4월12일의 농협 전산망 마비 사태는
농협 전산망에 있는 자료가 대규모로 손상되어 수일에 걸쳐 전체 또는 일부 서비스 이용이 마비된 사건이다.

협력 업체에 의한 사고 가능성이 제기되었으나,

농협 측은 내부 전문가의 사이버 테러일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2011년4월26일,

검찰은 북한의 소행이라고 발표했으나 여러가지 부분에서 의문점이 지적되었다.

농협 측의 사건 처리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있었으며,

2011년4월13일,오후,

농협의 일부 업무는  재개되었으나

2011년4월30,

모든 업무가 정상화되었다.


조사 결과에 의하면,

2010년9월4일,

서버 유지보수를 맡은 외주업체 직원 한국IBM 직원 한모 씨가

한 커피숍에서 받은 웹하드 사이트 무료 다운로드 쿠폰으로 서버 관리 업무에 쓰는 노트북에 영화를 내려 받다가 컴퓨터가 감염된 것이다.

이 노트북이  북한 정찰총국이 심은 악성 코드에 감염되었고,

범인들은 노트북을 마음대로 들락 거리며 각종 악성 프로그램을 심고 다음 공격 실행까지

 7달 동안 최고위 관리자의 비밀번호 등 전산망 관리를 위한 각종 정보를 빼냈고,

도청 프로그램을 설치했다고 발표했다.




◑ 아덴만 여명 작전              2020.02.16.일요일,맑음

2011년1월21일의 아덴만 여명 작전은 

한국 해군 청해부대가 소말리아 해적들이 몸값 지불을 요구하며 피랍한 한국의 삼호해운

소속 선박 삼호 주얼리호를 소말리아 인근의 아데만 해상에서 1,2차에 걸친  구출 작전으로 구출한 사건이다.


1차 구출 작전은

2011년1월18일,20시 9분,

해적들이 소말리아로 귀환하는 과정에서 최영함(구축함)이 해적들을 뒤쫓는 도중 해적들이 몽골 선박을 추가로 피랍하기 위해 자선을 내리는것을 포착하고 작전을 시행했다.

헬기로 자선에 위협 사격을 가한 뒤,

청해 부대 소속 해군 요원들이 고속정으로 삼호 주얼리호에 접근했고 해적과의 교전이 벌어졌다.

해적들은 흰기를 들고 항복 하는 척 하다가 소총을 발포하여 특수부대원 3명이 부상을 입고 작전을 중지하여 최영함으로 복귀했다.

2차 구출 작전은

2011년1월21일,

이명박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에게 구출 작전을 최종 승인하였고,

'아덴만 여명작전'이라고 불리는 작전이 개시되었다.

최영함과 해군 특수전 여단은 약 5시간의 교전을 거쳐  해적들을 제압하고 21명의 선원들을 전원 구출했다.

8명의 해적을 사살하고 5명을 생포했으나 한국 해군의 사망자는 없었다.

인질 중에 사망자는 없었으나 해적이 발사한 총탄에 석해균 선장이 복부에 관통상을 입었다.

석해균 선장은 응급 처치 후 오만의 제2도시 살랄라에 위치한 술탄카부스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이후 석 선장은 오만 살랄라 공항에서

2011년1월29일,태국을 거쳐 11시간 만인 22시 30분경 서울 공항에 도착했다.

이후 아주대학교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석선장은 작전 과정에서 목숨을 걸고 기지를 발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한국 정부는 생포한 5명의 해적을 제3국에 인계하여 국제 공조를 통해 대리 처벌하도록 할 예정이었으나,인접 국가들이 대리 처벌을 거부함에 따라 최초로 본국으로 송치하게 되었다.

한국 선원들이 피랍되어 있는 금미호 선원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해적들과 맞교환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나,이 역시 현실적으로 어려운점이 있으며, 소말리아 해적들도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에 따라 이명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에 송치하여 처벌하도록 지시했다.

한국 정부는 사망한 해적들의 시신들을 수장하는 방안을 검토하였으나,

소말리아 정부에 시신을 인계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2011년5월27일,

재판부는 1심에서 석해균 선장을 쏜 것으로 지목된 해적 아라이에게 무기징역을,

나머지 3명에게 징역 13년에서 15년을 선고하였다.


◑ 국방장관 김관진       2020.02.16.일요일,맑음

국방부 장관 김관진은 2010년12월4일부터 2014년6월29일까지 

이명박 정부및 박근혜 정부에서 제43대 국방부 장관을 지냈으며,

박근혜 정부에서 국가 안보 실장을 역임하였다.


김관진(생졸; 1949년8월27일~현존) 국방부 장관은 전북 임실군 성가리에서 태어났다.

전주 중앙초등학교,전주 북중학교,서울 고등학교를 졸업 후

1972년,군사 학교 28기로 임관하여 수도 보병 여단장,보병 사단장,육군 본부 기획관리참모부장,제2군단장,합참 작전 본부장,제3야전군 사령관,제33대 합동 참모 의장 등을 지냈다.


2010년11월23일의 이명박 정부 하에서 일어난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인하여

김태영 국방부장관이 사임하고 김관진이 임명되었다. 



2010년12월4일,

이명박 정부에서 제43대 국방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김병관 국방부 장관 내정자가 장관으로 내정된 지 38일만에 자진 사퇴하게 되어

2013년3월22일,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헌정사상 전 정부의 국방부 장관으로서는 최초로 유임되었다.

2014년6월1일부터 2017년5월까지,

박근혜 정부에서 김장수의 후임으로 제2대 국가 안보실장을 역임하였으며,

2017년11월11일,

이명박 정부 시절 군 댓글 공작을 지시하는 등 불법적 정치 관여를 한 혐의로 구속되었으나,

2017년11월22일,

서울 중앙 지방법원은 김 전 장관의 석방을 결정함으로써 11일만에 풀려났다.

이후 '군 정치 공작'에 대한 국방부 조사를 축소·은폐한 혐의로 3개월여 만에 다시 구속

기로에 놓이게 되었으나,

2018년3월7일,

김 전 장관에 대한 검찰의 두 번째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하였다.

2019년2월21일,

서울중앙지법은 군형법상 정치관여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여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다만 별도의 재판을 받고 있다는 점과 구속 적부심을 통해 풀려났다는 점을 고려해,

법정구속을 하지는 않았다.




◑ 연평도 포격 사건           2020.02.16.일요일,맑음

2010년11월23일,오후2시30분 경,

연평도 포격 사건은 북한이 남한의 연평도를 향해 포격을 가하여

해병대원 전사자 2명,군인 중경상 16명,민간인 사망자 2명,민간인 중경상 3명의 인명 피해와 각종 시설 및 가옥 파괴로 재산 피해를 입힌 사건이다.

 

피격 직후 남한의 해병대는 대응사격을 가하였으며,

국군은 서해5도에 진돗개 하나를 발령한 뒤,곧 전군으로 진돗개 하나를 확대 발령하였다.


이 사건은 한국전쟁의 휴전 협정 이후 북한이 남한의 영토를 직접 타격하는 최초의 사건으로

국제 사회의 큰 관심을 끌었으며,당시 국제 사회는 북한을 규탄했으나,

북한은 정당한 군사적 대응이었으며 전적인 책임은 남한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천암함 침몰 사건에 이어 8개월 만에 다시 벌어진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2010년11월23일,오후11시부로 민간에서 주도하던 대북 전단 살포를 경기북부,강원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군에서 직접 살포를 시작하는 한편,

북한의 도발이 계속 된다면 확성기로도 대북 심리전을 하겠다고 밝혔다.

또한,이 사건을 계기로 김태영 국방부장관이 사임하고 김관진이 임명되었다.


◑ 2010년 서울 G20 정상 회의                   2020.02.16.일요일,맑음

2010년 서울 G20 정상 회의가 2010년11월11일부터 11월12일까지 2일간

아시아 최초로 한국의 서울에서 열렸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G20 정상 회의 개최국과 의장국을 겸함으로써,

아시아의 변방에서 벗어나 세계의 중심 국가로 도약하게 되었다.

즉 회의 개최뿐만 아니라 의제 설정,토론,결론 도출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 다양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 경제 질서의 수동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주도적으로 역할을 짜는 나라가 된 것이다.

 

주최측인 한국 정부는

각국 정상들의 경호와 신변 안전에 가장 큰 노력을 기울였고,

곳곳에서 한국인을 비롯해 외국인들이 참가한 G20 반대 집회가 열리기도 하였다.

정부는 자율적 2부제를 시행하였다.


핵심 의제였던 환율 문제는 해결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각국은 환율 절상을 통해 수출 증대를 계획하여 갈등을 빚었으나 시장경제에 맡기자는

결론에 합의했다.

그러나 경제 규모 1,2위에 해당하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과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이

환율 문제와 관련해서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해 논란의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 국무총리 김황식               2020.02.16.월요일,맑음


김황식(생졸; 1948년9월11일~)은 2010년10월1일부터 2013년2월28일까지 

이명박 정부에서 41대 국무총리를 지냈다.

또한 대법관을 지낸 정치가다.


김황식은 전남 장성군에서 태어나

광주 제일고등학교와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사법시험 합격 후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광주지방법원장,법원

행정처 차장을 거쳐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대법관으로 재직 중,

2008년9월부터 2010년9월까지,

제21대 감사원장으로 임명되어 역임하였다.

2010년10월1일,

김태호 국무총리 내정자의 자진사퇴 후 총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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