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부 지방에 내린 폭설      2020.02.16.일요일,맑음

2010년1월4일,

새해가 시작하는 시점인 1월4일에 전국에 내린 눈은

서울을 중심으로 강원도를 비롯한 중부 지방 대부분 지역에 폭설이 내렸다.

특히,서울에는 1월4일,오후2시에 25.8cm의 눈이 쌓이면서 1937년 적설 관측 이래 최대

적설량을 기록하여 많은 피해를 속출했다. 


기상청은 폭설이 있기 하루 전에,

중국에서 한반도를 향해 발달한 저기압 영향으로 전국에 눈이 오겠다고 예보했다.

특히 경기 남부와 충청 북부,강원 북부를 중심으로 많은 눈이 오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대설 예비특보 조차 내려지지 않은 서울과 경기 북부,강원 북부에 20cm 안팎의 많은 눈이 내려 당초 서울에 5cm 안팎의 적설량을 예상한 기상청의 예보가 빗나가 많은 비판이 이어졌다.


2010년1월4일에 내린 눈은

주로 수도권과 강원도에 집중되어 이들 지역에 평균 20cm 안팎의 기록적인 적설량이 관측되었다.

특히 서울에는 하루 동안 최대 25.8cm의 눈이 쌓였다.

1969년1월28일의 종전 1위 기록인 25.6cm 보다 0.2cm 많은 25.8cm로 적설 관측 사상

최대 신적설로 기록되었다.

경북과 대구,경남 내륙지방에 한하여 눈이 내렸고, 부산,울산 등 대부분의 경남 지역은 비나 진눈깨비가 내렸다.


폭설로 인하여

김포 국제공항 항공기 운항이 9년 만에 전면 중단되었고,

이 여파로 김해 국제 공항과 다른 지역의 공항에서도 국내선 항공기가 무더기 결항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출근길 또한 교통 대란이 일어났으며,

지하철 1호선과 2호선 일부 구간에서 열차 운행이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KTX와 일반 열차 운행도 지연되었다.

그러나,인천 국제 공항은 수많은 비행편이 결항되었으나 제설 작업으로 항공기 운항 전면

중단은 피할 수 있었다.

 

◑ 시진핑 부주석 한국 방문         2020.02.16.일요일,맑음

2009년12월16일,

중국의 시진핑 부주석이 한국을 방문했다.

시진핑(생졸; 1953년6월15일~현존)은 중국의 최고 지도자로 공산당 총서기,중앙 군사 위원회 주석,중화인민공화국의 주석 등의 직책을 맡고 있다.

제17,제18기,제19기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이다.

2008년3월부터 중화인민 공화국의 부주석이 되었다.



2007년,17기 1중 전회에서

제17기 중국 공산당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중국 공산당 중앙서기서기처 제1서기,

중국 공산당 중앙 군사위원회 부주석,중국 공산당 중앙당교 교장으로

권력 서열 6위로 올랐으며,

2008년3월부터 중화인민 공화국의 부주석이 되었다.

2012년11월,

후진타오 주석으로부터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와 함께 중국 공산당 중앙 군사위원회주석직을 승계하였다.

2013년3월14일,

시진핑은 중화인민 공화국의 주석에 선출되었다.

2018년3월11일에는

중화인민 공화국 국가 주석 임기 제한을 철폐하는 통치 체계를 수립하였다.  




 

◑ 대청 해전 발발                2020.02.16.일요일,맑음

대청해전은 2009년11월10일,11시27분,

남한 해군과 북한 해군간에 간에 일어난 소규모 전투로 남한 해군의 승리로 끝난 해전이다.


북한 경비정 한척이 대청도 동쪽 NLL을 1.2해리나 침범하여 남하하자 5차례 경고 방송을

하였음에도 불구하여 침범하자 경고 사격을 가하였다.

이에 북한의 해군 경비정이 조준 사격하면서 교전으로 이어졌다.

북한의 해군 경비정이 반파되어 8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여 다른 함선에 예인되어 북상했다.남한 해군은 함선 외부격벽의 파손을 입었다.

이후,

2009년11월17일,남한의 합동 참모본부에서 공식적으로 '대청 해전'이라 명명하였다.


제1연평 해전(1999년6월15일,서해 연평도 부근 해상에서 일어난 교전)과

제2연평 해전(2002년6월29일,서해 연평도 부근 북방한계선에서 일어난 교전)는

대청해전과는 교전이 다르다.








 

인천 대교 개통                  작성일자; 2020.02.16.일요일,맑음

인천대교는 2005년6월16일,기공식을 한 후,

2009년10월16일,완공되어 2009년10월19일0시부터 차량 통행이 시작한 교량이다.

인천대교는 국내외 전문가들이 '세계 3대 아름다운 다리'로 꼽는다.

세상에서도 가장 야경이 아름다운 다리를 꼽는다면 바로 인천대교를 꼽는다.

"인천대교 앞에 있는 청량산 꼭대기에 올라 인천대교를 바라보는 S코스 경치와 석양은 단연 세계 최고"라고

극찬을 하고 있다.

인천시에 위치한 중구 운서동 영동 나들목과 연수구 송도동 연수분기점을 연결하는 다리로

제2경인 고속도로를 구성하는 고속도로 교량이다.

 

2005년6월16일,노무현 정부 때 기공식을 한 후,

2005년7월1일, 민자 구간 본공사 착공하여 2009년10월16일 완공되고

2005년12월26일, 국고 구간 계약 및 착공에 들어가 2009년8월 완공되고

2009년10월16일, 민자,국고 구간이 완공되어 2009년10월19일0시부터 차량 통행이 시작되었다.

총 연장 21.38km에 교량 구간 18.35km며 사장교의 경간은 800m로 높이는 238.5m이다.

사장교 중에서 세계 7위, 한국 1위의 길이의 교량이다.

 

 

 

◑ 국무총리 정운찬                       2020.02.16.일요일,맑음

정운찬(생졸; 1957년3월21일~현존)은 서울대 교수를 지낸 경제학자이며,

제23대 서울대 총장과,

2009년9월29일 부터 2010년8월10일까지,제40대 국무 총리를 지냈으며,

2018년 제22대 KBO 총재가 되었다.


충남 공주 출신인 정운찬은 경기 고등학교를 졸업후 서울대 경제학과를 학위 후

1970년,한국은행에 재직한 후 미국으로 유학하여 마이애미 대학교,프린스트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8년,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2002년7월부터 2006년7월까지,제23대 서울대 총장으로 취임하여  총장으로 지냈다.

이명박 정부에서 헌법재판소 자문위원과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공동위원장을 거쳐

2009년9월29일,국무총리로 국회 인준을 받고 부임했다.

진보적 경제학자이자 한때 이명박의 대항마로 떠올랐던 터라 정운찬의 총리 취임을 놓고

반발이 있었다.

2010년8월10일,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 부결 후 사퇴 여론이 거세지자 총리직에서 중도 사퇴 했다.

2017년11월29일,제22대  KBO 총재로 추대되었다.

 

나로호 1차 발사 실패         작성일자; 2020.02.16.일요일,맑음 

 

2009년8월25일,오후5시,

전남 고흥군의 나로 우주센터에서 첫 발사가 시도되었으나

페어링의 나머지 한쪽의 분리가 실패하여 궤도 진입에 실패하였다.

 

 

나로우주센터와 KAIST 인공위성 연구센터에서는

나로호가 이륙 9분 뒤 고도 306km에서 과학기술 위성 2호와 분리됐어야 했지만,

이보다 약 36km 높은 고도 342km에서 분리된 것으로 분석했다.

 

2009년8월,

나로호 발사 조사위원회가 구성되어 총 13차례에 걸친 회의를 개최하고

2010년2월8일,최종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이륙 후 216초에 관성항법 유도장치에서 페어링 분리 명령은 정상적으로 발생했고,

분리 장치 구동을 위한 고전압 전류도 정상적으로 출력됐다고 밝혔다.

첫번째는,

고전압의 전류가 공급되는 과정에서

전기 배선 장치에 방전이 발생해 분리 화약이 제시간에 폭발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고,

두번째는,

분리 화약은 정상적으로 폭발했으나 기구가 불완전하게 작동해 기계적 끼임 현상 등이

발생해 분리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 전 대통령 김대중 서거                      2020.02.16.월요일,맑음

2009년8월18일,

2009년7월13일 폐렴 증세로 병원에 입원하였다가 병세가 악화되어 장기부전으로

2009년8월18일에 서거하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는 6일장 국장으로 정해졌고,

북한을 비롯한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11개국에서 조문 사절단이 들어왔으며,

42개국에서 조전을 보내왔다.

장지는 국립 서울 현충원으로,

국가유공자 제1묘역 하단부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 사이에 위치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2월25일부터 2003년2월24일까지 제15대 대통령을 역임하였다.


1924년, 신안군 하의도에서 태어난 그는 1943년 목포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인이 운영하던 목포상선에 취직했다.

그후 제6·7·8·13·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군사 정권에 항거한 그는 2000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현대 그룹 회장 현정은 방북          작성일자: 2020.02.16.일요일,맑음

 

 

현정은(생졸; 1955년1월26일~현존) 현대 그룹 회장은

2009년8월16일,현대 그룹 회장 신분으로 북한의 김정일과의 면담을 위해 방북하였다.

새누리당의 전 대표인 김무성은 그녀의 외삼촌이다.

 

현대 그룹의 회장인 현정은

1955년1월26일에 현대 상선의 회장인 아버지 현영원과

학교 법인 용문 학원의 이사장인 어머니 김문희 사이에서 4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1976년,정몽주의 다섯번째 아들인 정몽헌과 결혼하여 1남2녀를 두었다.

이후 오랫동안

2003년8월4,전업 주부로 살오다 남편 정몽헌이 대북 불법 송금 사건과 관련해 조사를 받던 중

  사망하면서 뒤를 이어

2003년10월21일,현대그룹의 새로운 회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이후  정상영 KCC 그룹 명예 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벌여 승리하며,

경영난을 겪고 있던 현대 그룹을 다시 정상화 시켰다.

2009년8월16일,현대 그룹 회장 신분으로 북한의 김정일과 면담하였다.

새누리당의 전 대표인 김무성은 그녀의 어머니인 김문희는 이복 형제며 

현정은 회장의 외삼촌이다.

◑ 2009' 인천 세계 도시 축전 개최                  2020.02.16.일요일,맑음

2009' 인천 세계 도시 축전은

2009년8월7일부터 10월25일까지 80일 간

인천광역시 연수구 송도동에 위치한 '송도 켄벤시아'에서

주제는 '내일을 밝히다'로, 슬로건은 '빛나는 내일'을 내걸고 개최된 도시 박람회다.


당시 엑스포로로 개최하려 했으나,

2010년, 중국의 상하이에서 개최되는 엑스포와 주제가 같고,

기간이 공인 엑스포와 같아 국제 박람회 기구 측이 행사 명칭을 변경할 것을 한국의 정부에 요청하여 조직위원회는 명칭을 엑스포에서 축전으로 바꾸고,

세계 주요 도시들과 함께 다국적 기업도 유치하기로 하였다.

2009년10월25일에 폐막식을 거행하면서 이 행사는 종료되었다.


◑ 쌍용 자동차 농성 사태        2020.02.16.일요일,맑음

쌍용차 사태

2009년5월22일부터 8월6일까지 약 76일간 쌍용자종차 노조원들이,

사측의 구조 조정 단행에 반발해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인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민주노총 쌍용차 지부의 지부장인 한상균을 비롯한 64명의 노조원들이 구속

되었다.


쌍용 그룹은 본래 1970~80년대에 10대 재벌에 속할 정도의 대기업이었으나,

1997년의 IMF 구제 금융 사건 사태 이후 쌍용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인 쌍용 자동차

그룹 정상화를 위한 구조 조정 과정에서

2004년10월28일,

최종적으로 중국의 상하이차가 5,900여 억원에 쌍용차의 지분 48.9%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채권단과 상하이차 간 쌍용차 매각 본계약이 체결되었다.

이후 지속되는 판매부진과 경기 악화로 악화되자,

노조와 경영진은 주택 융자금.학비 보조금 등 일체의 복지 혜택을 사측에 반납하는 한편,

2008년12월17일부터 약 2주간 공장 가동을 중단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2008년12월23일,

상하이차가 돌연 노조 측의 구조 조정 거부를 명분으로 철수를 시사하면서 상황이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쌍용차 경영진은 2대 주주인 산업은행과 정부에 유동성 공급을 요청했으나,

산업은행과 정부는 상하이차의 지원이 우선되어야 한다며 거절했다.

2009년1월9일,

쌍하이차는 쌍용자동차의 법정 관리를 신청하고 쌍용차의 경영권을 포기하였다.

상하이차는 경영권을 인수한 4년간 단 한 푼의 투자도 하지 않았으며,

애초 매각 협상 시 합의한 기술 이전료 1200억원 중 절반인 600억원만 지불한채 ,

쌍용 자동차의 라이브리드 엔진 기술 및 핵심 연구원들을  중국 현지 본사로 빼돌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09년4월14일,

인력 감축안이 발표되자 쌍용차 노조는 조합원 84%의 찬성으로 부분 파업에 돌입했고,

2009년5월21일,

공장을 점거하고 총파업에 돌입하게 된다.

2009년5월5월31일,

사측이 노조가 점거중인 쌍용차 평택 공장의 직장 폐쇄를 감행한다.

이후 노조와 사측은 대화와 협상을 거듭했으나,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2009년7월6일,

법원이 평택공장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했고,

2009년7월20일,

경찰이 공장을 점거중이던 노조원들의 강제 해산 방침을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공권력이

투입이 되었으나 공권력 투입에 반발한 공장 내 노조원들의 불법 무기 사용에

경찰이 최루액과 테이저건 등을 통하여 대응하는 등 대치 상황이 지속되었다.

2009년8월4일과 8월5일,

이틀동안 경찰이 진압 작전을 펼치면서 거의 모든 공장을 장악했고,

2009년8월6일,

노조와 사측이 마지막 협상을 타결하게 되면서 77일간의 공장 점거 총파업이 끝나게된다.

 

이 사건으로 노조원 90여명이 경찰에 연행되거나 구속되었으며,

경찰관 1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측은 파업으로 인하여 3000억원의 손실액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노사간 타협을 통해 48%는 무급 휴직,순환휴직,영업직 전직으로 구제하고,

나머지 52%는 희망 퇴직,분사 등을 하기로 했다.

파업에 참여한 인원 중 400여명은 무급 휴직을 받았으며,

마지막까지 농성을 이어간 200여명은 해고되었다.


2009년9월8일,

쌍용자동차 노조는  민주노총을 탈퇴하였다.

2010년11월,

쌍용자동차는 기업 회생 절차를 거처서,

매각 협상 우선 협상 대상자인 인도의 자동차업체  마힌드라&마힌드라와 인수 협상을 채결하면서 2011년에 쌍용 자동차의 기업 회생 절차가 종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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