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연차 게이트           2020.02.16.일요일,맑음

박연차 정관계 로비 사건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 홍기옥 세종 캐피탈 사장 사이의 세종 증권 매각 사건을 조사하던 중 박연차가 노무현 대통령 일가를 비롯한 수많은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제공해온 것이

밝혀진 비리 사건이다.

박연차는 검찰 조사에서 노무현이 직접 전화를 걸어 자녀들의 집 장만을 위한 100만 달러를 요구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하였다.

이 외에도 박연차가 정상문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통해 요청을 받고 차명계좌에서 노무현의 아들 노건호와 조카 사위 연철호가 동업하는 기업에 500만 달러를 송금한 사실도 밝혀졌다.


2008년7월,국세청이 태광실업 세무조사 시작

2008년11월 중순,정화삼의 사위인 이모 전 청와대 행정관 소환조사

2008년11월22일, 홍기옥 구속

2008년11월24일,정화삼 형제 구속.노건평 출국금지 조치.

2008년12월8일,노건평에 대한 영장발부·구속.

2008년12월12일, 박연차 구속

2009년4월21일,정상문 전 비서관 구속

2010.1월8일,박연차에게 징역 2년6월, 벌금 300억원 (정·관계 로비, 탈세)

2010.1월14일,노건평에게 징역 2년6월, 징금 3억원 (세종증권 인수 관련 뇌물수수),

    이후 8월15일,광복절 특별사면

관련자

천신일 불구속 기소,한나라당 박진·김정권 의원,민주당 서갑원·최철국 의원, 박관용·김원기 전 국회의장, 김종로 부산고검 검사,이택순 전 경찰청장 등 20여 명 기소.

김태호 경남도지사,이종찬 전 청와대 민정수석,민유태 전주지검장,박00 부산고법 부장판사,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 등 무혐의.


 

◑ 2008'베이징 하계 올림픽 개최           2020.02.16.일요일,맑음

2008년8월8일 부터 8월24일까지,

중국 베이징(북경)에서 29번째 개최된 하계 올림픽이다.

이로써 2008년 올림픽은

1956년 멜버른 하계 올림픽에 이어 두 개의 국가 올림픽 위원회가 주최하는 사상 두 번째

올림픽이며,

1964년의 일본의 도쿄 하계올림픽,1988년의 서울 하계 올림픽에 이어 세 번째로 20년만에 아시아에서 열리는 대회이기도 하다.

2008년에 들어서 중국은 티베트에서의 탄압,성화 봉송을 둘러싼 갈등,각지에서의 폭동과

테러 등이 국제적으로 문제화 되었으나,

개회식엔 한국 대통령 이명박,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부시 미국 대통령,러시아 부틴 총리,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 등이 참석하여 외교적으로는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대회장소는

축구,요트,10킬로미터 마라톤,수영은 중국의 다른 도시에서 행해졌으며,

승마 종목은 검역 상의 이유로 홍콩에서 치뤄어졌다.


참가국은

회원에 소속된 205개 국가 중 브루나이를 제외한 204개 국가가 참여했다.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가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유고슬라비아)에서 분리하여 처음으로 참가하였으며,마셜 제도,트발루 2개국이 처음으로 하계 올림픽에 출전하였다.

무루나이는 개막식 직전까지 선수 등록을 하지 못하여 불참하였다.

아시아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 중 처음으로 북한이 출전하였다. 

 

대회 결과

중국은 미국의 금메달 36개를 넘어서는 51개를 획득하여 처음으로 1위가 되었고,

2위 미국,3위 러시아,4위 영국,5위 독일,6위 오스트레일리아,

뒤를 이어 한국은 금메달13개,은메달 11개,동메달8개 합계 32개를 얻어 7위가 되었다.


2008'베이징 하계 올림픽 개최는

개회식의 과도한 연출과 엄격한 경비 태세 등이 논의를 불렀고,

기자 폭행을 포함한 미디어 규제,시위에 대한 과잉 규제,티베트와 동누르키스탄의 탄압 등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 박왕자 피살 사건           2020.02.15.토요일,맑음

2008년7월11일,오전 4시 50분경,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은

북한의 금강산 관광지구에서 53세의 남한의 여성 관광객 박왕자 씨가 새벽에 산책을 하던 중

조선 인민군에 의해 피살된 사건이다.

북한은 피살자가 군사 경계 지역을 침범하였다고 주장했다.

시신을 부검한 의료진은 인민군 초병이 무방비 상태의 민간인인 피해자를 등뒤에서 조준

사격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피해자가 산책하던 구역은 군사 지역과 가까운 지점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엉성한 철조망

만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민간인이 군사 지역인지 민간인 지역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

이었다.

사격 직전 피해자에게 경고를 하였다는 북한측의 주장이 있으나,

아직까지 확인된 바는 없다.

◑ 한.미 정상회담       2020.02.14.금요일,맑음

2008년4월18일부터 4월19일까지 2일간,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부시 미국 대통령 공식 별장인  캠프 에이비스에 도착,

1박 2일간의 일정으로 제46차 한미 정상 회담을 시작하였다.


이 정상회담은

2008년4월18일,

소고기 수입 타결한 직후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 직전에

2008년4월18일의 광우병 소고기 수입이 타결된 점을 들어 졸속으로 협상이 진행되었다는 의혹이 있다.


최초의 한.미정상 회담은

정부가 구성 된 후 한국 전쟁 중인 1952년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방한으로 이승만 대통령과 최초의 정상 회담이 이루어진 후

2008년4월19일까지 총46차에 한미 정상 회담이 열렸다.

 

◑ 한.미 소고기 협상 타결           2020.02.11.화요일,맑음

2001년, '소고기 수입 자유화' 이후 미국산 소고기는 한국 시장에서 1위를 점유하였으나 ,

2003년 부터 미국내 광우병이 확인되면서 수입이 전면 금지되었다.

이후 수년 동안 광우병이 나타 나지 않자 미국은 한국에 재수입을 요구했고,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수차례에 걸친 한.미 정부간 소고기 수입 조건 협상 끝에

2008년4월18일,

'30개월 미만'의 소고기 수입 재개가 타결되었다.


합의 내용은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연령 30개월 미만 소는- 편도와 소장 끝부분을 제외한 모든 부위

30개월 이상 소는-뇌,눈,척수,창자 등 을 제외한 모든 부위(뼈 포함)의

수입을 전면 허용하게 되었다.

쇠고기 전면 수입은 한미 FTA 과정에서도 의견 충돌이 있었으나,

결국 합의하지 못한 채 한미FTA 최종안이 작성되었다.

미국의 축산 협회및 관련 기업에서는 미국산 쇠고기의 세 번째 주요 수입국인 한국의 쇠고기 시장 개방을 강하게 요구하여 왔으며,그간 한미 FTA 비준의 선결 조건으로 주장해 왔다.

2008년5월5일에 공개된 합의문에 의하면

축산 농가의 피해,광우병의 위험성에 대한 국민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것이 지적 되어

각계각층으로부터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2008년5월2일과 5월3일,5월4일,

청계 광장에서 대규모 촛불시위와 반대 운동이 열리기도 하였다.

2008년6월26일,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했다. 


 

◑ 제18대 국회위원 선거 실시               2020.02.11.화요일,맑음


2008년4월9일,

2008년5월30일부터 2012년5월29일까지

4년 임기의 제18대 국회위원 총 299석(지역구245석/비례대표54석) 명을 선출하는

선거가 실시되었다.

전국 선거인수 37,796,035명 중 17,415,667명이 투표하여,

투표율은 46.1%를 기록하였으며,

17대 총선의 투표율 60.6 % 보다 낮은 수치다.


선거 결과

한나라당 153석(지역구131/비례대표22석)을 확보,

통합민주당이 81석(지역구66석/비례대표15석)

자유선진당이 18석(지역구14석/비례대표14석)

친박연대 14석(지역구6석/비례대표 8석)

창조한국당 3석(지역구1/비례대표 2석)

친박 무소속 연대가 12석(지역구12석/비례대표 0석)

무소속 13석(지역구13석/비례대표 0석)


보수 정당들이 개헌 저지선을 위협할 정도의 대승을 거둔 것 뿐만 아니라,

통합민주당 또한 친노계,김근태계 등 진보·개혁 인사들은 대거 낙선하고,

손학규계,김한길계 등 중도·보수 인사들이 당선자들의 8~90%를 이루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과연 국회에서 보수 정권인

이명박 정부에 대한 제대로된 견제가 이루어질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하였다.


 

◑ 이소연 우주인            2020.02.11.화요일,맑음

이소연(생졸;1978년4월27일~현존)은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 비행 참가자로

2008년4월8일 오후8시16분39초,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 기지에서 소유스 우주선을 탑승하여 우주로 출발하여,

2008년4월10일 오후9시57분,

국제 우주 정거장과의 도킹에 성공하여 157번째 국제 우주 정거장 탑승자가 되었다.

국제 우주 정거장에서 9박10일간 체류 기간 동안 우주 임무를 수행한 후

2008년4월19일 오후5시 28분경,

카자흐스탄 국경 부근의 오르스크 시 남동쪽 초원 지대에 착륙하여 귀환했다.


한국은 36번째 우주인 배출 국가가 되었다.
이소연은 전 세계적으로 475번째,여성으로서는 49번째 우주인이 되었다.

또 2명의 아시아계 미국인의 이중국적자를 포함하여 4번째 아시아 여성 우주인이 되었다.


이소연은 광주 과학고등학교를 졸업 후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 공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2008년3월,

바이오시스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0년12월,

교육과학 기술부가 러시아와 공동으로 우주 여행자 양성 계획을 수립하고,

2006년4월,

우주 여행자 모집 공고에 응모하였다.

2006년12월,

9개월간의 총 4단계 선발 과정을 거쳐 한국 최초의 우주인 후보자 2인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남자 후보인 고산과 함께 우주 비행사 후보가 되었다.

2007년3월부터,

1년 여 동안 모스크바 유리 가가린 우주인 훈련 센터에서 기초 훈련을 받았다.

2007년9월5일,

고산이 우주 여행자로 먼저 선정되고 이소연은 예비 우주 여행자로 선정되었으나,

2008년3월,

고산의 관련 보안규정 위반으로 인해 이소연이 우주 여행자로 교체되었다.

2008년4월8일 오후8시16분 39초,

이소연은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 기지에서 소유스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출발하여

우주정거장에서의 도킹을 성공 후 우주 임무를 수행하고,

2008년4월19일 오후5시 28분경,

카자흐스탄 국경 부근의 오르스크 시 남동쪽 초원 지대에 착륙,귀환하였다.


이후 이소연은 한국 항공 우주연구원 선임 연구원으로 2년간의 의무 복무 기한을 끝내고

2012년8월, 미국으로 건너가 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그로부터 약 2년 뒤 한국항공 우주연구원을 공식 퇴사했다.

260억이라는 금액을 써서 훈련 시킨 우주인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국가 기관과 당사자의 사명감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2013년, 한국계 미국인과 결혼하여 미국 시애틀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정부 출범           2020.02.11.화요일,맑음

2008년2월25일,

2007년12월19일에 치러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은

2007년2월25일 부터~2013년2월24일까지 임기로,

취임과 함께 제6공화국 5기 정부인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게 되었다.


1987년10월29일,직선제 개헌을 통해 제6공화국이 탄생한 이후

1993년2월25일의 김영삼 정부는 '문민 정부',

1998년2월25일에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국민의 정부'

2003년2월25일에 출범한 노무현 정부의 명칭은 '참여정부'.

2008년2월25일에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명칭은 '이명박 정부'란 명칭을 내세웠다.


이명박 정부의 과제는

섬기는 정부(36개)

활기찬 시장경제(50개)

능동적 복지(42개)

인재 대국(18개)

성숙한 세계 국가(47개 ) 등을 네세웠다.

 



제17대 대통령 이명박           작성일자; 2020.02.11.화요일,맑음

 

대통령 이명박(생졸; 1941년12월19~)은

일본 오사카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채태원 사이 4남 3녀 중 3남으로 1941년 태어났다.

다른 형제들의 이름은 모두 상(相)자 돌림이지만 혼자만 ‘명박’인 이유는

어머니가 보름달이 치마폭에 들어오는 태몽을 꾸고는 ‘밝을 명(明), 넓을 박(博)’자를 넣어 지었기 때문이다.

1935년,포항 흥해가 고향인 아버지는 일거리를 찾아 일본으로 건너 갔다

해방이 되자 다시 귀국해 포항에 안착하였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고등학교를 졸업 후 서울로 이사하였다.

청계천 헌책방 주인에게 얻은 책으로 대입 준비를 하였고,

어머니가 좌판 일을 하던 이태원상인들 도움으로 등록금을 마련해 고려대 상대에 입학했다.

이태원 시장에서 환경 미화원으로 학업을 이어가던 중 생활고를 피해 군대에 입대했으나

기관지 확장증으로 훈련소에서 강제 퇴소당됐다.

 

상대 학생회장으로 한일 협정을 반대하는 6.3 시위를 주도 했다가 체포돼 

징역 3년,집행유예 5년형을 선고받고 6개월간 복역했다.

대학은 졸업하였으나 학생 운동 전력으로 인하여 취업이 되지 않자

박정희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어렵게 '현대 건설'에 입사해 5년 만에 이사가 됐다.

1970년12월19일,6살 연하인 김윤옥과 결혼하여 1남 3녀를 두었다.

1977년,입사한지 12년 만인 37세 나이로 현대 건설 사장이 되면서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렸다.

1992년,현대 건설 회장직을 떠나 민주자유당에 입당해 정계에 입문했으며,

1992년3월24일,14대 전국구,1996년4월11일,15대 지역구 국회의원을 지내던 중,

1997년9월,공직선거및 부정선거 방지법 위반 협의로 피소되어 1심에서 벌금형을 받았다.

1998년2월,항소를 진행하던 중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경선 출마 위해 의원직을 사퇴했다.

1998년4월,항소심서 벌금형이 선고되자 대법원에 상고했다.

이후, 서울시장 후보 경선 출마를 포기하고

미국 조지 워싱턴 대학으로부터 객원 연구원으로 초대를 받아 미국으로 건너갔다.

1999년4월,대법원이 벌금형을 확정지었으나 2000년8월에 광복절 특사로 사면 복권 된 후,

200년7월1일부터 2006년6월30일까지 임기인

민선 3기 32대 서울특별시장에 당선돼 뉴타운 사업 기반 마련,

청계천 복원사업,대중교통환승체계 구축,서울광장 설치,서울 숲 조성 등의 업적을 남겼다.

 

2007년12월19일,제17대 대선에서 통합 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2008년4월18일,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결되고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사태가 발생하자 사과하고

30개월 이상 소고기의 수입을 금지하는 재협상을 약속하면서 시위는 스그러 들었다.

2008년9월,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여 4분기 들어

미국과 일본,유럽 등이 GDP 성장률이 일제히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2008년10월이 들어서자 한 달 만에 아이슬란드,파키스탄,우크라이나,헝가리,벨로루시 등

5개국이 외환 위기를 맞아 IMF 구제 금융을 신청했다.

5개국의 뒤를 이어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제일먼저 국가부도를 맞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의 부도 위험은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미국,일본,중국 등과 통화 스와프 체결,매주 비상 경제 대책 회의 주재,

확장적 재정 정책 등을 통한 위기 극복에 나섰고,

G20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글로벌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국제 공조를 이끌어 낸 결과,

한국은 OECD 국가 중 가장 성공적으로 글로벌 금융 위기를 극복하였다.

2010년4월,유럽발 재정 위기가 발생하면서 또 한 번 세계 경제는 대침체에 빠졌다.

2011년8월에는,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이 강등되면서 세계 경제는 또 한 번의 충격에 빠졌다.

한국은 중국,일본과 맺은 통화 스와프를 확대하고 위기극복에 나섰다.

2012년 8월,한국은 무디스,피치,S&P등 3대 신용평가사로부터 사상 최고의 국가 신용등급을 받았고,

피치로부터 받은 국가 신용등급은 사상 처음으로 중국과 일본을 앞섰다.

2015년에 가장 논란이 된 것은 4대강 살리기 사업과 병행하여

4대강 보의 물을 가뭄 지역에 공급하는 사업이 추진되기도 하였다.

대법원은 한강,낙동강,금강 영산강에서 진행된 4대강 사업 모두 적법 판결을 내렸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에 있어서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천안함,연평도 포격사건,북핵 문제 등 북한의 도발에 대해 

금강산 관광 중단, 5.24조치 실시 등 강력한 대북경제제재를 취하며 대북압박에 나섰다.

이에 북한이 대북지원을 요구하며 수차례 집요하게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요구해 왔지만

원칙 있는 대북정책을 위해 이를 거부했다.

이명박 정부의 외교정책은

2009년,UAE 원전을 수주하면서 세계 6번째로 원전 수출국의 반열에 섰으며,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소말리아 해적을 소탕한 아덴만의 여명작전 등 안보적 업적을 남겼다.

2010년의 서울 G20 정상회의, 2011년의 부산 원조개발총회,

2012년엔 서울 핵안보정상 회의 등을 개최하면서 한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함양했다.

미국에 대한 외교정책으로 한미FTA 발효를 통해 60여 년간 이어진 한·미 군사동맹을 진일보 시켰다.

한·미 간 미사일지침 개정을 통해 미사일 사거리를 연장하고,

미국 비자 면제 프로그램에 가입하는 등 한미관계는 강화됐다.

일본에 데한 외교 정책으로 일본 총리로부터 과거사 반성을 담은 나오토 총리 담화를 이끌어내고,

조선 왕실 의궤를 돌려받는 등 과거사 문제에도 큰 진전이 있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했으나 일본 총리가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등

일본 정부가 점차 우경화 되면서 한일 관계는 악화됐고,

일본정부는 이병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발언 등으로 책임을 돌렸다.

퇴임 이후 2018년10월5일,다스를 비롯한 각종 비리에 관련해 뇌물수수,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되어

1심에서 징역 15년,벌금 130억 원을 선고받았다.

역대 대통령들 중 전두환,노태우,박근혜 이어 4번째로 구속되었다.

 

 

 

 

 

 

 

 

◑ 숭례문 방화 사건           2020.02.11.화요일,맑음

2008년2월10일 오후 8시40분 경,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4가 29번지에 있는 위치한

국보 제1호인 숭례문 2층 누각에 방화로 석축만 남긴체 전소된 사건이다.

방화범은 경기도 고양시에 거주하는 채종기로 

자신이 소유한 부지가 신축 아파트 부지로 수용되면서 토지 보상 문제로 불만을 품고

숭례문에 시너를 붓고 불을 지른 사건으로,

누각을 받치는 석축만 남긴 채 대한민국 국보 1호가 전소되었다.


그는 화재 발생 후 23시간 만인 2월11일 오후 7시40분경,

인천광역시 강화군의 이혼한 전처 집에서 검거되었으며,

2008년4월25일,

서울 중앙 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이 선고 된 뒤

2008년10월9일, 대법원에서 10년형이 확정되었다.

사건 직후 숭례문 복원 작업은 착수하였으나,

기술적으로 원형을 복원할 수는 있으나 주요 부분들이 불에 타버렸기 때문에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는 어렵다.

 2층 정면의 숭례문 현판도 안전하게 떼어내는 과정에서 지면으로 떨어져 전체에 크고 작은 금이 가는 등 심하게 손상되었고 일부 파편은 유실되었다.

목재를 건조하여 사용하는 데만 3년 이상이 소요되기 때문에 복원하는데만 5년3개월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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