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한라산 돈네코 코스     작성일자; 2008.04.16.수요일,맑음

 

 

 

 

 

돈내코 코스; 탐방 안내소(500m)-썩은 물통-살채기도-평궤 대피소(1400m)-남벽 분기점(1600m)

구간거리 ; 7km

 예상 소요시간; 편도 3시간30분    

   

돈내코 유원지 상류에 위치한 탐방안내소에서 시작하여

썩은물통, 살채기도,평궤대피소를 지나 남벽분기점까지 이어지는 총7km의 코스이며,

편도  약 3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윗세오름과 연결된 남벽순환로를 따라가면 어리목과 영실탐방로로 하산 할 수도 있다.

 

탐방안내소에서 평궤대피소까지 완만한 오르막이 계속되며,

평궤대피소에서 남벽분기점까지는 거의 평탄지형으로 한라산 백록담 화구벽의 웅장한 자태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평궤 대피소에서 남벽 분기점 일대는 한라산 백록담 현무암이 넓게 분포하고 있으며,

소규모의 용암동굴과 새끼줄 구조가 관찰되며 한라산 백록담 조면암의 라바돔을 가장 멋있게 조망할 수 있다.


돈내코 코스는 용천수가 없는 곳으로 반드시 여분의 식수를 지참해야 하며,

남벽 분기점 일대는 기상변화가 심한 곳이므로 지정된 코스만 이용하기를 바라며,

고 개인 보다는 소규모의 그룹 산행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리목과 영실 코스로 이어지는 윗세 오름 대피소로 갈 수 있다.

 

 

 

하륜     작성일자; 2008.04.15.화요일,맑음

 

하륜

생졸; 1347(충목왕3)~1416(태종16년)

하륜은 고려말에서 조선초까지의 문신으로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는데 기여했고,

즉위 후에는 태종을 보좌하여 조선왕조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공헌했다.

그는 이색, 정몽주 등과 조선 왕조 건국에 반대했으나 곧 정치적 변신을 했다.

정도전 등에 의해 세자책봉에서 밀려나고 병력마저도 빼앗길 위기에 처한 이방원과 급속히 가까워져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을 적극 지지했다.

태종의 즉위 직전에 정승 반열에 올랐고,

태종 즉위 후에는 공신으로 책록되고 신왕조 초기의 문물제도 정비와 명나라와의 외교 관계에 능했다.

관은 진주. 자는 대림(大臨), 호는 호정(浩亭). 아버지는 순흥부사 윤린(允潾)이다.

 

1360년(공민왕 9) 국자감시에 합격하고,

1365년 문과에 급제했다.

1367년 춘추관검열 등을 거쳐 감찰규정으로 있을 때 신돈의 비행을 공박하다가 지영주사로 좌천되었다.

1371년 안렴사 김주가 그의 치적을 제일로 보고하여 고공좌랑에 승진되었으며,

   그뒤 지평·보문각직제학·대사성 등을 지냈다.

1382년(우왕 8),모친상을 치른 후 부터 우부대언·우대언·밀직제학 등 밀직사 소속의 관직을 역임했다.

1388년 최영의 요동 정벌 계획을 극력 반대하다가 양주에 유배 당했으나,

   그해 여름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으로 최영이 제거되자 관직을 회복했다.

1389년(공양왕 1), 봄에는 영흥군 왕환의 진위 사건으로 광주 등지로 추방되었으나

1390년 윤이·이초의 옥사가 일어나자 풀려났다.

1391년에는 전라도 도순찰사가 되었다.

  그는 이색·정몽주·이숭인·권근 등과 정치적 입장을 같이함으로써 초기에는 조선 왕조 건국에 반대했다.

1393년(태조 2), 권근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변신을 하여 경기좌도 도관찰 출척사가 되었다.

   그러나 초기에는 정도전과의 불화로 그다지 비중 있는 직책을 맡지 못했다.

1394년, 첨서중추원사가 되었으나 부친상으로 사직했다.

1396년, 예문춘추관학사로 임명되었는데 이때 명나라와의 표전시비로 정도전과 정면으로 대립했다.

   이 사건의 발단은 조선에서 명에 보낸 외교 문서에 명나라를 모욕하는 언사가 있다고 하여

   문서 작성자인 정도전을 압송하라는 명나라측의 강경한 요구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때 그는 정도전을 보낼 것을 주장했으며

1396년에는 계품사가 되어 명나라에 가서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왔다.

1397년, 이에 정도전의 미움을 사게 되어 계림부윤으로 좌천되었다.

    계림부윤 재직시에도 박자안 사건에 연루됨으로써 수원에 안치되는 등 정치적 수난을 겪었다.

   이에 당시 정도전 등에 의해 세자책봉에서 밀려나고 자신의 병력마저도 빼앗길 위기에 처한  이방원과 급속히 가까워져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을 적극 지지했다.

   그 공으로 정종이 즉위한 후 정사공신 1등으로 진산군에 봉해졌다.

   그해 대대적인 관직개편이 이루어지면서 정당문학이 되었으며, 이방원의 세자책봉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리하여 태종의 즉위 직전에는 정승 반열에 올라 서서히 정국을 주도해가기 시작했다.

1400년(정종 2), 문하시랑찬성사로서 관제개편을 주도하고 판의흥삼군부사·우정승 등의 요직을 거쳤다.

   그해 태종이 즉위하자 좌명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이어 영삼사사로서 지공거가 되고 관제를 개혁했으며, 영사평부사 겸 판호조사로서 저화를 유통시키게 했다.

1402년(태종 2) ,좌정승이 되었으며, 명나라 영락제의 등극을 축하하는 등극사로서 명나라에 가

   조선 왕조를 승인하는 고명인장을 받아왔다.

1405년 ,좌정승 세자사가 되고,

1406년에는 중시독권관이 되어 변계량 등 10명을 뽑았다.

   그뒤 영의정부사·좌정승·좌의정을 등을 역임하고

1416년, 70세로 치사하여 진산부원군에 봉해졌다.

   치사 후 왕명으로 함길도 선왕의 능침을 순심하고 돌아오는 도중에 죽었다.

 

시문에 능하고 음양·의술·성경·지리 등에 조예가 깊었으며, 문한에 주관하여 '동국사략','태조실록'의 편수에도 참여했다.

신왕조 초기의 한양천도, 문물제도의 정비에 크게 기여했으며 외교정책에 능해 조선 초기 명나라와의 여러 문제를 해결했다.

특히 태종을 보좌하여 조선왕조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문집으로 '호정집'이 있다.

태종의 묘정에 배향되어 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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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색을 멀리한 송반          작성일시; 2008.04.10.목요일,맑음

 

태종 때 송반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여색을 멀리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그는 건장한 데다 미남이었다.

그가 굳이 여색을 밝히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인네들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많은 사람임에도

여자들을 멀리해 오히려 그의 인품을 높이 샀다.

그런데 충청도 진천 출신으로 영의정을 지낸 바 있는 유정현 대감은 송반을 자식처럼 아끼면서 자신의 집에 기거토록 했다.

유대감에게는 송반 또래의 아들이 있었는데 장가간 지 얼마되지 않아 요절을 하였다.

유대감에게는 이제 일곱 살 난 둘째 아들이 있었는데 이 아들을 가르칠 사범이 필요하던 차였다.

마침 송반에 대한 얘기를 전해들은 유정승은 특별 과외 선생격으로 송반을 집으로 들였던 것이다.

송반은 정승의 둘째 아들을 친동생처럼 보살펴 주며 글을 가르쳤고 정승께도 마치 친부모처럼 섬기며 생활하였다.

유정승은 그를 아들처럼 아끼고 사랑했다.

마치 죽었던 큰 아들이 살아온 것 같은 착각을 할 때도 있을 정도였다.송반은 아주 사랑스럽고 소중한 사람이었다.

세월은 빨라 송반이 대감의 집에 온 지도 일 년이 다 지날 무렵이었다.

때는 꽃피는 춘삼월 파릇한 새싹이 돋고 온갖 꽃들이 앞 다투어 꽃망울을 터뜨렸다.

이 파릇한 봄날에 아무리 여색을 멀리한다는 송반인들 심중을 굳게 한다는 것은 의지일 뿐이지 목석이 아닌 바에야

송반인들 무얼할 수가있을까?

그도 인간인 것을.....어느 날 저녁 송반은 마음도 달랠 겸 집 뒷산인 낙산에 올랐다.

십만 인구가 산다는 장안을 둘러도 보았다. 집집마다 살구꽃이 활짝 피었다.

그런데 이 어찌된 일인지 송반이 서 있는 맞은편 멀리 한 여인이 서 있는데 꽃인지 사람인지 분간을 할 수 없이 화사하였다.

그 여인은 몸도 움직이지 않고 곳곳하게 서서 송반만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감히 어느 집 여인이 저리 무례하게 낯 선 남정네를 눈 한 번 깜짝 않고 바라보고 있단 말인가?

미인임에는 틀림없지만 참으로 괴이한 일이로다.

자세히 보니 그 여인이 서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자신이 기거하고 있는 유정현 대감의 집이었다.

바로 유대감의 며느리 였던 것이다.

그 여인도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었다.

남편의 요절 이후 자식 없이 청상과부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비록 한 집에 머물러 있었지만 송반은 그녀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남녀가 유별하고 수절을 하고 있는 여인이니 감히 서로 얼굴을 마주볼 수 조차 없는 일이었고 가까이에도 접근하지 않았다.

송반은 재빨리 눈길을 돌려 버렸다.

그리고 낙산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대감집 며느리는 그게 아니었었던가 보았다.

송반에게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송반은 피곤하기도 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소리가 나서 눈을 떠보니 며느리의 여종인 옥란이 문을 열고는 무언가를 내미는 게 아닌가

"이 밤중에 무슨 일이오?"

여종은 마님이 갖다 드리라고 했다면서 똘똘 말은 한지를 내밀고 총총히 뒤돌아섰다 열린 문으로 새는 달빛을 등 삼아

한지를 풀어보니 7언 절구의 시(詩)가 가슴 떨리게 하였다.

                 '봄바람에 비 내려 활짝 핀 꽃 젖는 밤에 이 어찌 마음을 누를 것이오.
                  오늘 밤 당신을 맞아드릴 테니, 마음 편히 오소서'


송반은 참으로 좋은 사람이었다.

주인집 과부 며느리의 이 같은 마음이 부도덕해 나무라거나 기꺼이 받아들이기 보다는

'젊은 여인이 혼자 살다보니 괴롭고 힘든 것은 당연한 일 얼마나 외로웠으면 이렇게 시를 적어 보냈을까'

이해하려 애썼다.

하지만 결코 여자를 찾아가지는 않았다.

예기치 않았던 사건으로 인해 불편해진 마음을 달래며 어느날 밤 잠을 청하려는데

옥란이가 또 송반을 찾아와 편지를 또 전해주었다.

"여인의 마음을 그리도 헤아리지 못하시는지요? 제 청을 받아들이지 않으신다면 내 오늘밤 자결을 할 것이옵니다"


기가 막힐 일이었다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 송반은 의복을 갖추고 여인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녀에게 이야기하였다.

유정승께서 자기에게 베푼 정과 사랑을 생각하면 절대 그럴 수 없으며 도의에 벗어나는 일은 할 수 없으니 마음을 진정하고

노여움을 풀라며 달랬다.

그때였다.

밖에서는 새벽잠 없는 노인 유정승이 마당을 거닐다가 며느리의 방에서 흘러 나오는 소릴 듣고 며느리 방문 앞으로 가

귀를 기울였다.

밖에서 보아 하니 방 안에 두 남녀가 분명히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 기울여 들어보니 송반과 며느리가 아닌가 유정승은 급히 단도를 들고 와 문을 열고 내리칠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젊은 남자가 하는 말이 들려왔다.

오히려 여인의 마음을 갈아 앉히려고 예의를 지켜 말하는 소리가 역력했다.

역시 자신이 생각하는 송반은 여자를 함부로 탐하거나 도리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는 사람임에 틀림 없었다.

유정승은 감탄하였다.

그리고 이튿날 대감은 두 사람을 불렀다.

먼저 송반에게 간곡히 부탁을 하였다.

죽은 아들 대신 자신의 아들이 되어 달라고 한 것이다.

청상 과부인 자기 며느리를 아내로 받아들여 함께 살자는 얘기였다.

송반은 그의 간곡한 마음을 받아들여 그 여인과 혼인하였다.

유정승은 세상에 다시없는 시아버지요 부형이었다.

자칫 당장 쫓겨날 만한 일을 저지른 셈인데도 그 며느리를 감싸고 여색을 멀리했던 송반을

다시 그의 아들로 태어나게 한 셈이었다.

훗날 송반은 대도호 부사를 거쳐 병조 판서에 올랐다.

그 후에도 그가 지닌 인품 만큼이나 빛나는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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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거창 우두산 의상봉~지남산        산행일시; 2008.04.07.월요일,맑음

 

 

 

 

동영상

 

 

 

 

경남 거창 우두산 의상봉~지남산        산행일시; 2008.004.07.월요일.맑음

 

 

 

 

 

 

 

 

경남 거창 지남산~의상봉     산행일시; 2008.04.07.월요일,맑음

 

경남 거창군 가조면에 위치한 해발 1.046m의 우두산 의상봉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과거세와 현세에서 참선 한 곳이라는 뜻에서 의상대사 이름을 빌려 산이름으로 삼은 산이다

의상봉은 우두산(별유산)의 아홉 봉우리 중의 하나일 뿐이다.

우두산은 산세의 수려하기가 덕유산,기백산에 못지않은 아름다운 봉우리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 의상대사가 참선하던 곳으로 알려진 의상봉,처녀봉,장군봉,바리봉,비계산 등의 빼어나다. 

우두산(별유산) 아래에는 고견사와 선암폭포,쌀굴 등이 있어 볼거리가 많다.

고견사의 세가지 구경거리로 높이 80m 되는 견암 폭포,

최치원 선생이 심었다는 은행나무,

의상대사가 쌀을 얻었다는 쌀굴 등이 있다.

우두산(별유산) 산행 후 가조 온천에서 온천으로 피로를 풀 수 있어서 주말이면 등산객의 발길이 이어진다.

의상봉에서 마장재 까지 바위벽을 타고 넘는 아기자기하고 아슬아슬한 산행길이 등산객을 유혹한다.

산행코스는 고견산장(수월리)주차장에서 계곡을 따라 지남산으로 올라 의상봉-고견사-고견산장(수월리)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산행으로 중식포함 5시간이면 산행을 마칠수 있다.

 

 

경남 거창 지남산~우두산 의상봉

해발; 1,046 m

위치; 경남 거창군 가조면

소개;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과거세와 현세에서 참선 한 곳이라는 뜻에서 의상대사 이름을 빌려 산 이름으로 삼은 산이다. 

   의상봉은 우두산(별유산)의 아홉 봉우리 중의 하나일 뿐이다.

   우두산은 산세의 수려하기가 덕유산,기백산에 못지않은 아름다운 봉우리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 의상대사가 참선하던 곳으로 알려진 의상봉,처녀봉,장군봉,바리봉,비계산 등의 빼어나다. 

   우두산(별유산) 아래에는 고견사와 선암폭포,쌀굴 등이 있어 볼거리가 많다.        

   고견사의 세가지 구경거리로 높이 80m 되는 견암 폭포, 최치원 선생이 심었다는 은행나무,의상대사가 쌀을 얻었다는

   쌀굴 등이 있다.        

   우두산(별유산) 산행 후 가조 온천에서 온천으로 피로를 풀 수 있어서 주말이면 등산객의 발길이 이어진다.

   의상봉에서 마장재 까지 바위벽을 타고넘는 아기자기하고 아슬아슬한 산행길이 등산객을 유혹한다.

산행일시; 2008.04.07.월요일.맑음

산행코스; 고견산장(수월리)주차장-지남산-의상봉-고견사-고견산장(수월리)주차장 (원점회귀 산행)

산행시간; 중식포함 5시간

가는 길;      

   대구 성서 홈플러스-성서IC-남대구IC-옥포JC-88고속도로  가조IC.500m 이동-제2한수교-고견사 방향-월포 마을 회관

  -고견산장(수월리) 주차장    

  (네비; 경남 거창 가조면 수월리 19-1번지-66km,1시간소요,통행료 2,700원)

 

이미지 보기

▽ 지남산을 경유한 우두산 의상봉 산행은 수월리 주차장에서  시작한다.

 

▽ 의상봉이 보이는 북쪽 계단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하산 하는 곳이며

 

▽ 수월리 주차장에서 좌측 남쪽으로 난 등산로는 지남산으로 가는 들머리다.

 

▽ 고견산장(수월리) 주차장에서 좌측 지남산으로 가는 초입 방향으로 보면

    암석으로 이루어진 바래봉 봉우리가 보인다.

 

들머리에서 능선을 올라 계곡으로 내려 서면 0.4km 지점에 이정표를 만난다.

     직진하면 바래봉을 거처 장군봉(2.3km)으로 가는 등산로며,

     우측으로 계곡 등산로는 장군봉(2.2km),지남산으로 가는 등산로다.

     장군봉은 들러지 않고 곧 바로 계곡으로 하여 지남산으로 올라 의상봉으로 산행 할 예정이다. 

 

▽ 계곡을 오르던 중 전망대에 올라

 

▽ 지나온 계곡 방향으로 바라보면

    우두산(별유산)을 지나 마장재로 하여 비계산으로 가는 능선과

 

▽ 비계산 건너 오도산 정상부와 미녀봉이 조망된다.

 

▽ 오도산과 미녀봉,그리고 숙성산이 보이며,

    이 곳 능선 아래는 뽀족하게 생긴 바리봉이 보이며,

 

▽ 장군봉에서 지남산으로 오르는 능선과

 

▽ 계곡 능선 뒤로 보이는 금귀봉과 보해산이 조망된다.

 

▽ 지남산으로 오르는 능선도 조망된다.

 

▽ 조망 바위를 지나 조망터에 올라

 

▽ 비계산과

 

▽ 마장재에서 수월리로 하산하는 능선과

 

▽ 가조 벌판

 

▽ 바리봉과 장군봉으로 오르는 능선이 조망된다.

 

▽ 수직 암벽 아래에

 

▽ 쉴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 조망 바위에 올라 바라보면 비계산과 바래봉과 가조 들녁이 조망된다.

 

▽ 지남산으로 오르는 직벽에 가까운 등산로도 조망되고

 

▽ 의상봉과 우두산(별유산)이 조망된다.

 

▽ 의상봉이 보이는 능선길

 

▽ 지남산에서 의상봉으로 가는 능선길

 

▽ 지남산으로 암석을 오른다.

 

▽ 지남산 정상부에 오른다.

 

▽ 정상석도 표시판도 없는 지남산 정상부다.

 

▽ 정상에서 보는 가조 들녁과 바리봉

 

▽ 지남산 정상부를 떠나 의상봉으로 가는 도중 되돌아 본 지남산 정상부

 

▽ 암벽 옆을 지나는 등산로다

 

▽ 의상봉 아래에 도착한다.

 

▽ 고견사에서 올라오는 삼거리 갈림길에서 0.1km 지나면 만나는 이정표며 의상봉까지는 0.3km다.

    이정표에서 우회길인 좌측 아래로 내려서 다시 오르면 갈림길 삼거리를 만나 우측으로 의상봉으로 오르는 계단을

    만난다.

    의상봉을 오른 후 다시 이 곳으로 되돌아 와 고견사로 하산한다.

 

▽ 급경사 등산로를 오르면

 

▽ 의상봉으로 오르는 가파른 데크 계단이다.

 

▽ 계단을 오르다 우두산으로 가는 등산로가 조망된다.

 

▽ 의상봉에 오르기 전 암벽 구간 등산로가 조망된다.

 

▽ 의상봉 정상으로 가는 바위 등산로

 

▽ 해발 1.038m의 의상봉 정상에서

 

▽ 의상봉 정상부 모습

 

▽ 의상봉 조망 바위에 올라서서 뒤돌아 보면 조금전 지나온 지남산과 장군재,그리고 장군봉이 조망된다.

 

▽ 의상봉 정상에서 보는 우두산으로 하여 비계산으로 가는 능선길이 조망된다.

 

▽ 바래봉과 가조 들판

 

▽ 의상봉 정상에서 하산하는 내리막 목계단이다.

    고견사로 가는 이정표 지점으로 되돌아간다.

 

▽ 고견사를 지나 뒤돌아 보면 의상봉 정상부가 보인다.

 

▽ 일주문을 지나

 

▽ 뒤돌아 본다.

 

▽ 견암 폭포에 도착한다.

 

고견사 의상봉 입석과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 갈림길에 도착한다.

 

▽ 산행 들머리인 고견산장(수월리 )주차장에 도착하여 산행을 종료한다.

 

 

 

 

 

부산 영도 봉래산~절영 해안 산책로        산행일시; 2008.03.20.목요일.맑음

 

 

 

 

 

 

 

 

 

부산 영도 봉래산~절영 해안 산책로     

 

산행일시; 2008.03.20.목요일.맑음

산행코스; 반도 보라 아파트 103동 뒷편-철문-손봉-자봉-조봉(봉래산)-능선길-영선사-절영 해안 산책로-중리 해녀촌

산행시간; 중식포함  3시간30분(봉래산 산행-2시간30분,절영해안 산책로- 1시간 )

가는 길;     

   대구 성서 홈플러스-신천대로-서대구-금호JC-도동JC-동대구 JC- 신 부산 고속도로 수성 IC- 대저IC-삼락IC-백양TG

  -수정TG-성남로 고속화 도로-부두 사거리.태종대 방면-봉래 교차로.송도방면-영선 아래 사거리.태종대 방면

  -영선 윗 로타리 절영로 함지골-반도 보라 아파트 103동 뒷편    

   (네비;부산 영도구 동삼 1124-3번지-135km,1시간 50분 소요,통행료14.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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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래산

해발 ;395m

위치; 부산광역시 영도구 청학 1동

소개;

   부산시 영도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도심속 아름다운 자연 공원 역할을 하는 봉래산은

    절영진의 3대 첨사인 임익준이 산세가 마치 봉황이 날아드는 것 같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산은 본래 도교에서 신선이 살고 있는 산으로, 중국 전설에 나타나는 삼신산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동쪽 바다의 한 가운데 있으며, 신선이 살고 불로초와 불사약이 있다고 한다.

    봉래산이라는 이름은 신성함을 뜻하는데 ,금강산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 시대는 산의 형태가 고깔을 닮아서 고갈산 또는 꼬깔산으로 붙렀다고 전하지만,

    한자명 표기는 목이 마른 산을 뜻하는 고갈산(枯渴山)이다.

    해방 이후 1980년대 초반까지 고갈산으로 불렸으나 봉래산으로 개칭 시기는 확인되지 않는다.

    산 전체가 원추형을 나타내고 있으며,산의 사면은 가파른 편이며,

    특히, 남쪽 사면은 급경사여서 하산할 때 마치 바다에 거의 수직으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할 정도로 인상적이며

    수평선 근처를 바라보면 일본의 대마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일출 및 일몰의 장관을 지켜볼 수 있는 등 태종대와 더불어 자연의 숨결을 체험할 수 있는 도심속의 명소인 봉래산은

    사시사철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산행코스; 반도 보라 아파트 103동 뒷편-철문-목장원 갈림길 이정표-손봉-자봉-봉래산-하산-이정표-임도

산행시간; 중식포함 2시간30분

 

▽ 부산 영도구 영삼1동에 위치한 반도 보라 아파트 103동 뒷편을 산행 기점으로 하여 봉래산을 산행 한 후

    절영 해안 산책로를 탐방할 예정이다.

 

▽ 보라 아파트 103동 뒷편 봉래산을 오르막 등로를 5분 정도 오르다 보면    

     입산 통제 현수막이 있는 철문 통과한다.

 

▽ 급경사 오르막 등산로를 오르다 뒤돌아 보면 들머리인 보라 아파트와 영도 바다가 보인다.

 

▽ 산행이 시작된지 불과 10 여분만에 첫 봉인 암석으로 이루어진 손봉이 보인다.

 

▽ 너럭 지대인 오르막 등산로를 오른다.

 

▽ 이정표가 있는 지점에서 잘 정비된 돌계단을 오른다.

 

 ▽ 너럭지대 등산로를 올라 서면

 

▽ 커다란 암석을 만난다.

 

▽ 암석 위에 올라 조망하는

 

▽ 조망하는 풍경이다.

 

 

▽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

 

▽ 목장원 갈림길 이정표가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하는 바위 위에 다다른다.

    봉래산 정상까지는 0.85km, 목장원까지는 1.47km라고 가르키고 있는 이정표

 

▽ 맞은편 우측에 보이는 통신 시설도 보인다.

 

▽ 왼쪽은 부산 체육 중.고등학교 운동장과 함지 그린 아파트가 전망되고 ,

    그 아래 해변가 금일 종점인 중리 바닷가인 해녀촌이다.

    맨 뒤가 태종대가 있는 곳이다.

 

▽ 산행을 시작 한지 40여분 만에 첫번째 봉인 손봉에 당도 한다.    

     손봉은 돌담장을 쌓아 놓은 곳이다.

 

 ▽ 손봉에서 바라다 본 제7 부두가 있는 우암동 방향

 

▽ 손봉에서 바라 다 본 오륙도.

    조용필의 노래 가사중에서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 마다.......'의 오륙도가 저멀리 보인다.   

    아래 보이는 하얀  돌로는 국제 크루즈 터미널 선착장이다.

 

▽ 손봉에서 7~8분이면 두번째 봉인 자봉에 도착 할 수 있다.

    자봉은 벌거숭이 봉우리다.

 

▽ 자봉에서 바라다 본 조그만 섬은 한국 해양 대학교 아치 캠퍼스가 있는 조도며,   

    공터가 있는 곳은 2017년 완공 예정인 한국 해양 대학교 혁신 지구 캠퍼스가 설립될 예정 지구다.

 

▽ 봉래산 정상으로 오르는 암석이다.

 

▽ 암석으로 이루어진 봉래산 정상이다.

    들머리인 보라 아파트에서 손봉,자봉을 거처 봉래산 정상인 조봉에 이르기 까지는 1시간10분 이면 정상에 도착 할 수 있다.

 

▽ 정상의 조망도판

 

 ▽ 정상에서 바라다 본 부산 항구의 모습.    

     왼쪽은 부산항 국제 여객 터미널과 제4부두,그 뒤로 횡령산,우측 저 멀리 장산이 전망된다.

 

▽ 정상에서 본 7,8부두와 그 뒤로 횡령산.왼쪽 아래 청학동 부두가  보인다.

 

▽ 우측 오륙도와 왼쪽의 오륙도 SK 뷰 아파트가 조화를 이룬다.

 

▽  정상에서 한동안 조망 후 하산을 시작한다.    

     하산길은 다소 느근한 내리막길이기도 하다.

 

▽ 봉래산 정상에서 0.13m 하산하면 갈림길 이정표을 만난다.

    복천사 0.7km 방향과 목장원1.48km,백련사1.35km 방향의 갈림길에서 목장원,백련사 방향 하산하여

    절영 해안 산책로로 갈 예정이다.

 

▽ 정상에서 30여분 하산 하면 넒은 공터가 나온다.    

     이 곳에서  점심을 먹고 잠시 쉬어 간다.

 

▽ 공터에서 뒤돌아 본 봉래산 정상부와 하단부 능선

 

▽ 식사를 한 후 다시 하산한다.

    가파른 내리막 등로다.

 

▽ 하산중 풍경

 

▽ 바위 위 하산길에서 본 풍경

 

▽보라 아파트와 중리 바닷가 해녀촌이 보인다.

 

▽ 하산중 남항동과 남부민 2동을 연결하는 남항 대교가 바다를 가로 질러 달리고 있다.

 

▽ 봉래산 정상에서 40분 이면 산아래 임도까지 도착 할 수 있다.

    부산 영도구 영삼1동에 위치한 반도 보라 아파트 103동 뒷편을 산행 기점으로 하여 봉래산 정상 후

    이 곳 임도까지 중식 포함 2시간30분 소요되어 산행은 종료한다.

 

 

   

 

이 곳 임도에서 봉래산 산행은 종료되고 절영 해안 산책로로 가기 위해 백련사 방향으로 간다.

백련사 바로 앞 건너편으로 절영 해안 산책로로 들어 가는 입구가 나온다.

 

 

 

 

■ 절영 해안 산책로

위치; 부산 영도구 영선동 4가

소개;

   해안을 끼고 걷는 산책로인 절영 해안 산책로는

   영도의 관문인 영도대교,부산대교를 지나 영선동 아랫 로타리에서 제2송도 바닷가쪽으로 500m정도 가면

   봉래산 산행 들머리인 반도 보라 아파트가 나오며, 산책로 입구에 위치한 관리동 및 휴게시설이 산책객을 맞이하고 있다. 

   이곳은 과거에는 지형이 가파르고 험난한 군사 보호 구역으로 접근이 어려웠으나,    

   시민들의 해양 관광 욕구를 충족 시키기 위하여 공공 근로 사업으로 조성한 산책로로서,   

   대마도와 송도 방향 바다 풍경을 배경 삼아 연장 3㎞의 해안 산책로를 조성하였다.   

   바다가에 내려서면 자갈밭과 파도 소리,장승,돌탑,출렁다리,장미 터널,파도 광장,무지개 분수대 등 

   아기자기한 볼거리,즐길 거리가 많다. 

산책코스;

산책시간; 1시간


▽ 절영 해안 산책로 탐방은 백련사 건너편에 있는 '절영 해안 산책로' 입구에서 시작한다.

 

▽ 입구에서 돌로 장식한 내리막길을 따라 해변으로 내려간다.

 

▽ 절영 해안 산책로는 잘 정비되어 있어 탐방하기에 수월하다.

 

▽ 내려가면서 앞으로 바라 본 바다

 

▽ 뒤돌아 본 모습

 

 

 

▽ 내리막길을 내려 도착한 해변에는 첫번째 이정표를 만난다.

    방금 해안 절영 산책로 입구에서 내려온 길은 영선사 365계단이다.

 

▽ 이정표에서 좌측으로 75광장,85광장 방향으로 해안을 따라간다.

 

▽ 해안에서  좌측에서 우측으로 돌아보니 맨 마즈막  다리가 보이는데 남항대교다.

 

▽ 출렁다리를 지나

 

▽ 중리 해녀촌에 도착한다.  

                              

▽ 중리 해녀촌

    중리 해녀촌의 해산물들

  - 해녀들이 직접 물질하여 매일 잡아온 해산물을 팔고 있다. 금일 산행은 이 곳 중리 해녀촌에서 종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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